노아집안의 여인들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시조입니다. 그 이후로 노아세대까지 지구상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구가 물로 다 멸망되고 지구상에 8사람만 살아 남았습니다. 이 8 사람들로부터 지구 역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만약 21세기에 70억의 인구가 핵폭탄으로 다 소멸되고 8 사람만 살아 남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8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노아에 대해서만 조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부인이나 그의 아들들이나 노아의 자부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부인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겠습니까? 샘과 함과 야벳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입니까? 그리고 그들의 부인들 역시도 인류의 시조 하와 만큼이나 인류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제 노아 집안의 여인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은 노아의 집안의 여인들에 대해서는 그저 노아와 함께 방주에 들어 갔다고만 말했지 따로 설명하거나 조명한 일이 없습니다. 먼저 노아의 아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아의 아내는 셈과 함과 야셋을 믿음으로 잘 교육시켰습니다. 남편 노아는 방주짓는데 여념이 없었을 것이요, 자신은 남편을 도우면서 어린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비전에 대해 주입했습니다. 그렇게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노아의 아내의 믿음이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남편 노아가 받은 계시이지만 남편 만큼이나 강한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120년이란 세월을 통하여 오직 남편의 방주짓는 일을 도우면서 남편에대해 세상이 비난하고 소외시키는 그런 상황에서 남편을 격려하고 협력하는 강력한 성격의 소유자 였습니다.
다음은 노아의 세 자부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들 세 여인들 역시 대단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이 그들의 남편들인 셈과 함과 야벳을 만나는 시대는 그들의 시아버지 되는 노아가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너무나 황당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치부되고 있을 때입니다. 120년 후에 내릴 큰 비를 대비하여 배를 짓는다고 비난하면서 노아를 믿지 않습니다. 또한 높은 산위에서 배를 짓고 있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산 위에 지어지고 있는 배를 바라보면서 혀를 찼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 유독 노아의 자부들은 어떻게 노아의 아들들과 결혼했을까요? 이들은 자유결혼을 했습니다. 이들의 부모들이 미친 자식들과 결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멀건 하늘에 큰 비가 내려 인류를 멸망시킬것이라고 믿어 그것을 대비하여 온 생애를 바쳐 배를 짓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이라고 해서 딸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현장에서 먼 거리에 살고 있었던 자들로서 그 당시 노아와 그가 만들고 있는 방주에 대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노아의 방주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톱뉴스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산한 의도였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방주 짓는 소문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꿈을 추구하는 자들이요 비전을 품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노아의 방주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히려 노아와 그가 하던 일을 마음으로 동경하던 소녀들이었습니다. 이 세 여인들은 노아에 대한 소문과 노아에게 계시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뜻을 믿었습니다. 노아의 일이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었던 자들이 었습니다. 언젠가 자신들이 장성하면 노아의 방주짓는 현장을 방문하리라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방주가 건설되는 것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보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이 세 여인들은 그들의 출신배경이나 출신 지역이 다 다르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알고 계셨고 보고 계셨고 그들의 영에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몰래 집을 뛰쳐나와 먼길을 걸어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었던 그 현장에 도착한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현장에 와서 웅장하게 지어져 가는 방주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신들의 시어머니가 될 노아의 아내를 도왔습 니다. 남편이 될 노아의 세 아들들과 노아와 그리고 방주를 짓는 일을 돕는 인부 들을 위해 밥짓는 일과 설거지, 빨래 등 여인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들의 부모들은 그 딸들이 밤 사이에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세 소녀들이 노아의 이 방주 짓는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찾아와 그들을 기어코 데려 갔을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기까지 그 부모들과 형제 친척들은 이 세 여인들의 행방을 전혀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방주가 완성 되었을 때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부모, 형제, 친척들을 불러 방주에 같이 들어 가자고 설득하였지만 그들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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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이야기에대해서 말할 때 애녹과 므두셀라를 뺄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방주사건은 노아시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거슬러 올라가 1000년 전의 에녹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5장 21-24에 에녹과 므두 셀라의 출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기 전까지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므두셀라를 낳는 것 을 계기로하여 그의 삶이 변화됩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하나님으로 부터 므두셀라와 관련된 어떤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이 하나님과 온전한 동행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계시의 내용은 장차 큰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내용인 것입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았을 때에 홍수 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사전에서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을 찿아 봅니다. ‘창을 던지는 사람’, ‘던지는 무기’, 투창, 기본어근으로 ‘보내 버리다’ (이것은 수많은 경우에 적용된다함), 도중에 가져가다, (멀리, 밖으로) 인도하다, 되버리다, 주다(포기하다), 남겨두다, 떼어 놓다, 가게하다, 보내다, 내던지다 등 여러가지 많은 뜻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 중 ‘창을 던지는 자’란 의미를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기능적인 이름입니다. 옛날의 전쟁은 먼저 적군과 아군이 마주 서서 항오를 벌리고 두편에서 대표자를 내보내어 서로 싸우게 하는데 자기들의 대표가 이기면 사기가 충천해저서 그 날의 전쟁은 대표자가 이기는 쪽 군대가 그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스라엘 군대가 불레셋 군대를 이겼던 것처럼 말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는 대표자로서 이 자가 이기면 자신의 군대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창 던지는 자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는 말입니다.
또한 ‘보내버리다’라는 뜻을 골라 봤습니다. 무엇을 보내 버린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을 보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세대를 보내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입 니다. 이 사람이 죽고나면 세상에 큰 물이 임하고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뜻이라 고 합니다(머튜 헨리의 창세기 주석 번역본 상권 P192).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여 죽음으로 보내버리고 새 시대가 올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입 니다. 특히 에녹이 하나님께로부터 홍수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때에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을 때, 이 세상이 이 아들을 떠나보내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의미가 이 사람을 놓치면 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을 떠나 보내면 이 세 상에 큰 물이 임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지었다면,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만으로 종말에 관한 멧세지를 듣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므두셀라의 부모들이 ‘므두셀라야 점심먹자’라고 밖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큰 비가 와서 세상을 심판 하리라는 뜻으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므두셀라의 삶은 예언적 삶이요, 969년 동안 긴 삶을 살게된 것도 심판을 예고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렇 다면 노아시대의 큰 홍수 심판은 노아시대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에녹시대 때부터 계산하면 1000년 이상 동안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물심판을 예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마지막 심판은 불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2천년 전부터 예고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할 때에 1000년은 길게 느껴집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생각할 때에 고려시대 5백년, 이조시대 5백년입니다. 그러나 므두셀라 당시의 인간 수명이 평균 1000년이기 때문에 므두셀라 시대의 천년은 당대입니다. 므두셀라가 살고 있던 그 당시 세대의 사람들에게 직접 해당되는 1000년입니다.
두번째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물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증 거로써 유다서14말씀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 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 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리라.’에서 에녹이 선지자로서 먼 훗날 우리 세대에 일어날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과 불심판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께로부터 먼 훗날에 있을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 사건과 불심판의 사실을 보았다면 그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물 심판을 왜 보여 주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는 일을 계기로 그의 삶이 완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은 이렇게 먼 훗날의 불심판과 성도들의 부활과 주님의 재림과 당시의 물심판을 보고 알게 됨으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년수를 계산해 보면 므두셀라의 969 세가 되는 해가 노아의 600세가 되는 해입니다. 창세기 7장 4절에,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 10-12절에,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 졌더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시작된 날짜는 2월 17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7일 후부터 홍수가 시작될 것이라 했으므로 방주에 들어 가라고 지시한 날짜는 2월 10일입니다. 아마도 2월 10일부터 7일간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지면의 모든 동물들과 사람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노아와 식구들과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가기 시작된 날이 2월 10일이고 그 기간이 7일이고 방주에 들어가는 일이 끝나는 날이 2월 17 일이 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문이 닫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에 노아의 600세 되던 생일은 그 해의 1월 1일에서부터 2월 10일 사이의 어떤 날이었을 것입니다. 므두셀라의 나이도 1월 1일이나 2월 10일 사이의 어떤 날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노아와 므두셀라의 생일이 같은 날이었 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노아와 므두셀라의 나이가 1월 1일과 2월 10일 그 사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므두셀라가 969세 되던 해가 노아의 600세 되던 해요 므두셀라가 969세가 되면서 그는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2월 10일(머튜 헨리 창세기 주석 번역본 상권 P192)이나 그 이전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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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기로 하겠습니다. 므두셀라가 죽어서 그 장례식을 하는 날이 2월 10일이었다고 합시다. 므두셀라는 969세나 살면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 큰 홍수가 나서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예고를 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대 관심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가 높은 산 위에 방주를 짓는 것과 관련을 짓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역시 므두셀라 할아버지의 삶을 주시했을 것입니다. 그가 방주를 짓는 것은 므두셀라의 예언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고 므두셀라 할아버지의 죽음은 하나님의 방주 계시가 성취되는 큰 사건인 것입니다. 아마도 노아가 그 장례식을 집전했을 것입니다.
그 장례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그 장례식을 이용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권했을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큰 비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방주는 완성되었고, 천년동안이나 살면서 ‘내가 죽으면 큰 비가 와서 세상을 심판하리라’고 예고하던 할아버지가 죽어 이 자리에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제게 말씀하시기를 오늘부터 칠일 후에 40일간 비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경고요 권고입니다. 우리와 함께 그 방주에 들어가서 물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읍시다’ 라고 노아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한 사람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노아의 세 자부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 친척들도 장례식 에 초대되었습니다. 그 세 자부들은 마지막으로 그들의 부모들과 형제, 자매들을 붙들고 방성대곡, 애원하면서 자신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받자고 하였건 만 미친 소리라고 하면서 거절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긴 이야기를 끝내려고 합니다. 끝내기 전에 창세기 5장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실을 풀어놓겠습니다. 창세기 5장은 셋의 후예들입니다. 셋은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후 아담이 아벨 대신에 낳은 아들입니다. 셋의 후예는 경건한 집안의 후예들입니다. 그런데 이 셋의 후예들인 마할랄렐, 야렛, 에녹과 므두셀라와 라멕들(이들은 하나님께서 홍수 전에 거둬 가셨음)은 거의 900년 이상 살면서 무수한 자녀들을 생산했습니다. 예를들면 창세기 5:15에, ‘마할랄렐 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했고 창세기 5:21-22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 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고,’ 했으며 25-27에 ,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서 이들은 성경에 언급된 아들들 외에도 수많은 아들들과 딸들과 그리고 이 아들들의 자녀 들과 손자, 증손자나 고손자들이 많았을 텐데 이들은 다 어디 갔느냐 하는 것 입니다.
이들은 노아의 홍수가 시작되기 전까지 다 살아있었습니다. 물론 이들 중에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물심판하시기 전에 하늘로 먼저 데려가신 자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예들도 같이 살았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이야 노아의 물심판을 믿지 않고 거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경건한 계열인 셋의 후예들은 왜 물심판 예고를 듣고도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패했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6:5-6). 아무리 경건한 집안이라 하더 라도 각자가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경건한 집안의 자녀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노아의 홍수계시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노아의 500세 이전에 태어난 자녀들이나 에녹과 심지어 므두셀라의 자녀들도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의롭다 칭함을 받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10억 정도 되지만 그 중에 천국에 들어갈 자가 많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7:26, 27에서 주님이 재림할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암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23-24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길에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묻기를,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했습니다. 노아 시대나 이 시대나 구원받을 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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