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인가?

 

  1.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에서 사는 마리아로서 7귀신 들려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은 여자로

(눅 8:2, 막16:9)

▷그녀는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수종을 들었으며 (마27:56)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먼 곳에서 지켜보았고(막15:47)

▷예수님이 거의 숨이 넘어갈 즈음에 십자가 곁에 서 있었으며(요19:25)

▷예수님이 묻힌 무덤이 어딘가를 보고 갔으며(마27:61)

▷안식 후 첫날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찾아갔으며(마28:1)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한 향품을 기지고 갔으며(막 16:1)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사도들에게 알리기도 했다.(눅 24:10)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마리아 가운데 예수님의 사역을 도운 막달라(Magdalene)출신의 마리아를 일컫습니다

  1. 나사로 누이 마리아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 여자에 대하여 마태와 마가는 그냥 “한 여자”라고 하였다. 요한만 그가 바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두 번이나 언급하였습니다. 첫 번째 언급이 요한복음 11장 1,2절입니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다음이 바로 12:1~3입니다. 향유를 붓던 그 자리에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다 있었습니다 .

누가는 예수께 기름 붓는 장면(눅7:36-39)을 고난의 유월절 주간 사건 중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성경을 기록할 때에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복음서 전체를 살피면 같은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고 느껴집니다. 마태, 마가, 요한의 기록에서 그 잔치에 시몬이 있었는데,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자리에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이 시몬(눅7:40)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밝혀져 있습니다.

마태, 마가복음에는 여자가 기름 붓는 사실과 제자들의 반응과 예수님의 대답이 기록되었고 누가복음에는 죄 많은 여자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마태, 마가에는 문둥이 시몬이라고 주인을 소개하였고, 누가는 한 바리새인이라고 하였는데, 예수께서 비유를 베푸시면 그의 이름을 부를 때 시몬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가 시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요한은 향유 부은 여자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놓았습니다. 요한은 그 잔치하는 곳이 시몬의 집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래전에 시몬도 죽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그 이름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1. 막달라 마리아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그러나 향유를 부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인데,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을, 예수 사건을 근원부터 미루어 자세히 살핀(눅1:1~3) 누가가 빠뜨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타당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누가나 다른 세 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보면, 장소는 시몬의 집이고, 사건은 여자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제자들의 불평 대신 집 주인인 시몬이 예수를 속으로 의심하는 것을 예수께서 빚진 자의 비유로 사랑의 실상을 가르치는 것을 기록하였고,(눅7:36~59) 다른 세 복음서는 향유를 허비한다는 제자들의 불평과 예수께서 그 여자가 한 일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장소와 향유를 부은 것과 장소의 주인이 시몬이라는 것, 향유를 부은 것이 여자라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바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또 요한의 기록에서 나사로의 식구들이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3에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했고, 5절에서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했으며,  35, 36절에서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했습니다.

마가복음에 11:12장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는 종종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십자가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사복음서 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사람들의 이름을 쓰지 않았고(눅 24:49), 마태와 마가는 세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며 요한은 네 사람의 신분을 밝혀 놓았습니다.

마태복음;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마태복음 27:55-56).

마가복음;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막 15:40).

위의 대조에서 살로메가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모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야고보에게는 요세, 또는 요셉이라는 형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25)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상 복음서들을 대조하여보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가 글로바의 아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또 작은 야고보를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글로바의 다른 이름이 알패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의 이모가 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는 인간관계로는 예수님과 이종(姨從)간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십자가 아래까지에 남자제자들의 이름은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이 거기 있었던 것은 확실하고, 그 외에는 다 예수를 핍박한 사람들과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주동자들이 웅성거린 것을 보게 됩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례할 때 나타난 것은 기록되었습니다.

여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빠지지 않고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아무튼 예수를 핍박한 사람들은 내어놓고,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생각해봐도 남자들은 요한 외에는 없는 것 같고, 예수께서 그렇게 사랑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준 나사로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되는 것은 당국자들이 나사로도 죽이려했기 때문에(요12:10) 위험을 느끼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니의 일의 도움의 손길도 주지 않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나사로가 죽었을 때 나흘이나 늦게 나타난 예수님을 찾아서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부활의 날에 오라비가 살아날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던 부지런한 마르다도 거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나사로 때문에 위험을 느꼈을까요? 두 사람이 다 나타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을까요?

상식적으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마르다와 마리아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거기 꼭 나타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그처럼 열렬히 따르고 사랑했던 여자, 나드 향유를 붓던 마리아를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십자가 주위에는 그 식구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또 부활 후에도 그들이 예수님과 만난 기록이 없습니다. 이때쯤이면 나사로도 나타날 만한데 말입니다. 평소의 예수님과 그들의 관계를 보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은 참 이상한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추리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태와 마가와 누가복음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이 세 복음은 다 60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록에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초기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여성 지도자로 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에게 그의 과거의 죄인이었던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요한은 기원 90년이 넘은 시기에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나사로도 마르다도 마리아도 다 잠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교회와 후대를 위하여 그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을 밝힌 것이 아닐까생각합니다 .

그러나 나사로의 누이라는 것보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초대교회에 잘 알려졌기 때문에 그 이름을 막달라 마리아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해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그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 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 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여자도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다른 사람이 빈 무덤만 보고 다 떠난 후에도 혼자 남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그를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를 부은 그 여자에게 예수님은 부활한 생명의 향기를 제일 먼저 맡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인 줄 모르고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의 시체를 주면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할 정도로 예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향유를 붓는 심정과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부활한 예수님인 줄 알았을 때에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려고 한 것은, 아마도 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은 그 발을 그때 그 심정으로 붙들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복음서에 기록된 특별히 요한복음에 기록된 나사로 식구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그 식구들 중에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고, 부활한 후에도 그들 중 누군가가 예수님을 반갑게 만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가장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뿐입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시몬이 향유를 붓는 여자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누가는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죄인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왜 마리아를 죄인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누가복음 8:2에 보면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고 언급함을 통해서 볼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이 들었을 때에 얼마나 행패를 부렸으며 그 귀신들이 온갖 나쁜 짓을 다 시켰을 것이기에 그것을 기억하는 시몬은 이 마리아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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