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으뜸이 되는 원리

마태복음 20:20 -28

여러분은 머리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꼬리가 되고 싶습니까? 성경에는 머리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28:13, 14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했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에도 너희가 으뜸이 되고자 하면이라 했습니다. 성경역사를 통해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다니엘, 다윗왕, 요셉 등 하나님께서 높이 세우신 인물들이 많이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살 때에 당신의 자녀들이 어느 분야에 있든지 으뜸이 되고 머리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말씀에 으뜸이 되고자 하면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으뜸이 되는 원리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으뜸이 되어야지 세상사람들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방법대로 따라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본문 말씀에도 요한 야고보 예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제 이인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를 제자들도 그들의 야심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직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요 어떤 사람이 높은 사람이요 어떤 사람이 큰 사람입니까? 그런데 세상에서 정의하는 큰 사람과 하나님께서 정의하시는 큰 사람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이 생각하시는 으뜸인 사람, 주님이 생각하시는 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보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본문 26, 27안에 으뜸이 되는 원리 세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의 자세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큰 사람이 되는 자의 자세는 섬기는 자세입니다. 세상에서는 섬기는 자세를 비천하게 생각합니다. 섬기는 자를 업신여깁니다. 세상에서 정의하는 큰 자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섬기느냐를 따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섬기고 있는 상태를 큰 자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를 큰 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너희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큰 자라고 생각하는 정의가 아닌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큰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유진 피터슨이란 기독교 작가가 이야기하기를 모든 진실된 일은 섬김과 다스림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다스리는 것은 목적이고, 섬기는 것은 방법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는 진정한 주권이 있습니다. 섬김이란 방법 외에는 주권을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 합니다. 섬길 때에 주권이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주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 이것을 해 하면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웃 동네 아이에게 이것, 저것을 하라고 하면 그 엄마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엄마의 주권이 행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그 아이들을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섬기면 주권이 생깁니다.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섬기는 자에게 이런 영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섬기지 않고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11:13,14에 보면 예수님께서 입만 무성한 한 무화과 나무를 보고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뿌리부터 말라버립니다. 잎은 나무 자신의 성장을 촉진시킵니다. 잎사기가 무성하면 햇빛을 많이 받아 광합성작용을 하여 나무가 자라게 합니다. 태양이 비추는 빛과 공기와 비의 은총이 잎에 임함으로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다시말하자면 나무 잎의 기능은 철저히 나무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는 아무리 그 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렸다 하더라도 그 열매는 나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요 타인을 위한 것입니다. 영양분을 모아서 열매를 가지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시킬 뿐입니다. 열매는 철저히 타인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나무가 정성스레 열매를 키우면 타인이 와서 그 열매를 다 먹어버립니다. 나무 입장에서 볼 때에 열매는 나무 자신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잎은 많고 무성하면 합성작용을 해서 나무 자신에게 더 많은 성장을 이루게 합니다. 왜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겠습니까? 이 무화과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것에 대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 나무가 풍성하도록 하나님께서 비와 바람과 햇빛을 보내 주신 것은 열매를 맺어 타인들을 섬기기 위해서인대도 불구하고 주님이 보실 때에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사귀는 자기만을 무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은 이기적인 자세를 주님은 저주하신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이 나무를 우리에게 비유하면 잎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입니다. 시간과 돈과 명예와 건강과 병고치는 은사와 중보기도하는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은사를 주신 것은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계속 강화시키고 성장만 시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타인을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잎이 없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면 우리는 얼마나 초라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많은 잎사귀를 주십시오. 더 많은 은사를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구하는 것은 잎사귀가 무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열매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열매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우리에게 많은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을 섬기게 하기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잎사귀만을 끊임없이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잎사귀만을 구합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고 주님은 저주하셨습니다. 타인을 섬기기 위한 삶을 살지 않고 끊임없이 잎사귀만을 강화시켜서 자신 만을 거대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마음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가 맺은 열매를 통해 풍성해지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주와 선생된 내가 너희를 섬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힘이 있으신 분이지만 평생 종처럼 사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 28절 말씀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빌립보서 2:5에 땅 위에 있는 자나 땅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 무릎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큰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큰 힘으로 잎사귀만을 풍성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윤택하게 하게 하도록 그들을 섬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 나와 무릎을 꿇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 본문에 나오는 으뜸이 된 자입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잎사귀만을 강화시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섬김의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했습니다. 종은 이미 낮아질래야 낮아 질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종은 노예입니다. 크게 되고자 하는 자의 자세는 섬김이고 섬김의 방법은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자만이 섬길 수 있습니다. 낮아지는 자 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자가 되고 으뜸이 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 :5, 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했습니다. 야고보서 4:10말씀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히시리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면 하나님께서 영향력 있는 자로 만들어 주시겠다. 큰 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조건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7-14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했습니다.

으뜸이 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에너지가 있는 사람인데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그 높은 위치에서 빨리 내려와서 종의 자리,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위치에 까지 낮아지면 그 때에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고 성경에서는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낮아질 만큼 낮아지는 그 현장 속에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큰 폭포수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떨어질 수록 낙차가 크면 클 수록 그것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낮아지셨는가 하면 빌립보서 2:5-11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큰 자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나왔는데 언제 이런 영향력이 그에게 돌아왔는가 하면 낙차가 클 때에 이런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를 볼 때에 큰 자입니다. 그 엄마가 자식들을 섬길 때에 자식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낙차가 크서 그 에너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옛날 평양의 산정현 교회를 시무하셨던 고당 조만식 장로님의 겸손은 너무나 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는 장로님께서 마산에 있는 문창교회를 찾아가셨 습니다. 그 당시 그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주기철 목사님을 자기교회로 청빙해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었습니다. 고당 조만식 장로님께서 오산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주기철 목사님은 그 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노 장로님은 젊은 목사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장로님, 편히 앉으십시오.” 목사님의 말에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치도 않으신 말씀입니다. 전에는 목사님이 학생이셨고 제가 교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의 귀하신 종이 되었고, 저는 그 종을 받들어 섬기는 장로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편좌하라 말씀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노 장로님의 믿음에서 나오는 겸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의 겸손에 너무나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의 권유에 따라서 평양 산정현 교회를 담임하게 되셨습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장로님께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잠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만 예배시간에 늦어졌습니다. 장로님은 부랴부랴 교회를 뛰어왔지만 이미 예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조용히 자리를 찾아서 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다 마시고 장로님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 드리십 시오.” 노 장로님에게, 그것도 옛 스승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고 생각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그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설교가 끝났습니다. 목사님께서 다시금 장로님에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앞으로 나오셔서 기도하십 시오.”장로님께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울먹거리면서 이렇게 기도했 습니다.”하나님, 이 죄인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 니다. 이 죄인이 애국운동을 한답시고 사람을 만나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에 늦고 말았습니 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 설교하던 도중에 이토록 책망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용하여 주시고, 은혜스러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은혜 받는 것을 방해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울먹거리는 장로님의 기도를 듣고 모두가 울었습니다. 목사님도 울었습니다. 성도님 들도 울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똑같이 칭송을 했습니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요, 그 목사에 그 장로로다.”

우리가 누구를 존경합니까?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온 자들을 존경합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오는 자를 사람들이 존경하고 이런 자가 사람들을 움직입니다.

세번째로 섬김의 대상이 누구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6에 너희 중에 큰 자가 되려고 하면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27절에도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했습니다. 같은 본문이 마가복음 10:44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했습니다. 마가는 섬김의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 했습니다. 섬기는 사람의 크기가 그 사람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섬김의 대상의 크기가 그 사람의 크기입니다.  요셉의 삶은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노예로 있을 때는 보디발을 섬겼고 감옥에 있을 때는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섬겼고 총리로 있을 때는 애굽 온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섬기는데 한 집안을 섬겼고 감옥 안의 모든 죄수들을 섬겼고, 나중에는 온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에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 안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사람은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 마음 속에 나를 괴롭게 한 원수, 나를 망하게 한 그 인간,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은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은 다 섬기겠지만 그 사람만큼은 절대로 안된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불편한 사람, 내게 상처를 준 사람, 내게 피해를 준 사람들은 제외해 놓고 그 나머지 모든 사람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편인 사람, 내 말을 잘들어 주는 사람, 내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 내게 유익을 주는 사람들만 ‘모든’에 포함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모든’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미워하고 내가 싫어하고 내 눈에 그슬리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사람안에 내가 미워하고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괴롭힌 사람까지 다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입니다. 다윗이 왜 큰 사람이냐하면 자기를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사울왕의 자손들까지 다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왜 위대하냐 하면 모든 사람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대로 말입니다. 원수까지도 섬겼습니다. 요셉이 왜 위대하고 큰 사람이냐 하면 자기를 죽이려하고 노예로 애굽에 팔아버린 자신의 형들과 그 자손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를 섬겼습니까?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제외해 버렸던 세리와 창기까지 섬겼으며 가난한 자 병든자 약한 자를 섬겼으며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까지 용서해 다라고 섬겼던 주님이십니다.

짐 엘리어트이야기 1960년 대에 희튼 대학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그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은 짐 엘리어트가 에콰도르에 있는 아우카족속들을 섬기기 위해 동료 다섯명과 함께 떠났다가 그곳에 도착하자 말자 그 족속에게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몇달 후에 찾아가니 유품들과 시신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너무나 참혹한 그 상황을 루커라는 잡지에 게제를 했는데 그 일로 온 세계사람들이 경악했었습니다. 그 후 일년 반 후에 짐 엘리어트의 아내가 간호공부를 해서 남편을 죽인 그 족속에게 찾아가서 섬겼습니다. 그 후 6년 후에 안식년을 가지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그 족속의 추장이 짐 엘리엍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도대체 누구길래 이 긴 5년 동안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우리를 섬겼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그 때에 처음으로 이 여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5년 전에 당신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려 왔던 그리고 당신들이 무참하게 창으로 찔러 죽였던 짐 엘리어트의 아내입니다. 그 부족이 그이게서 다 무너져 버리고 그 부족 전체가 다 예수믿게 되고 짐 엘리어트를 창으로 찔렀던 그 청년이 그 부족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왜 짐 엘리어트의 아내가 위대합니까? 남편을 죽인 원수입니다. 남편을 잃어버린 상처를 준 사람들입니다. 섬겨양 할 대상 속에 그 살인자를 내 가슴 속에 다시 품었습 니다. 우리는 조금만 상처를 준 사람을 내 마음에서 지워버립니다. 내 섬김의 대상인 모든 속에 나를 미워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지워버립니다. 천국에서 큰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 배반한 그 사람을 품고 섬기는 사람을 위대한 사람, 큰 사람, 으뜸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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