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8-21
- 젖과 꿀이 무엇인가? 어디에서 젖이 나오고 꿀이 나오는가?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닌 것은 ?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어느 곳인가?
- 젖과 꿀이란 무엇인가?
이제 질문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농사 짓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들의 논이 물 걱정할 필요 없는 강가나 큰 저수지가 있는 곳에 있는 논을 갖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저 산 기슭을 깎아 만든 천수답을 갖기를 원합니까? 강가의 논이지요. 그런데 말입 니다. 오늘 우리 본문 말씀에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단 말입니다. 10절 말 씀에,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 땅에 살던 곳은 고센 땅입니다. 나일 강의 하류입니다. 삼각주들이 복잡하게 펼쳐진 지역입니다. 나일강의 범람이란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일강의 범람으로 상류에서 씻겨온 영양분들을 이 하류의 논과 밭에다 뿌려 줍니다. 나일 강의 하류 지역인 고센 땅은 물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물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일강 에서 물을 퍼 올려서 논이나 밭에 물을 대면 되니까요(Google Earth로 고센 땅을 보일 것).
인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히브리사람들이 살던 애굽의 고센 땅이야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젖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양이나 젖소 등 목축, 낙농에서 젖이 나옵니다. 낙농을 하려면 목초가 많아야 합니다. 목초가 많어려면 물이 넉넉해야 합니다. 이 조건이 갖추어지면 많은 젖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꿀은 어 디에서 나옵니까? 양봉입니다. 꿀벌을 키우려면 풀이 많은 곳이어야 합니다. 풀이 많으면 꽃이 많습니다. 그런데 풀이 많어려면 역시 물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사람들은 고센 땅에서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면서 젖과 꿀이 풍부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사람들이 애굽에 살 때에 요셉 이후 거의 350년 동안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애굽의 통치자는 히브리 백성들과 마찬 가지로 셈족의 힉소스 왕조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으로 붙어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겠지만 출애굽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박해와 같은 박해는 350년 동안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고센 땅에서 생육이 중다 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시작이 70여명이었는데 400년 만에 남자 장정이 60만에서 전체 인구가 2 백만 이상으로 팽창한 것은 인구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숫자를 안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기 때문이요 또한 고센 땅이 그렇게 풍요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단백질과 우유 속에 있는 그 풍부한 칼슘을 쭉쭉 빨아댔으니까 얼마나 강건하고 튼튼했겠습니까? 꿀은 열량을 공급합니다. 에너지를 주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건강해서 아이 들을 쑥쑥 뽑아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태어날 무렵 힉소스 왕조가 쇠약해 지면서 함족인 애굽 사람들이 그 들을 지배하던 셈족인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애굽의 제 18왕조를 세웠는데 이들 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이방민족인 히브리사람들이 너무나 번식하고 강대해졌다 는 사실에 놀라고 위기 의식을 느꼈던 것입니다. 자기 민족이 거의 400년 이상이나 이방 민족에게 지배당하면서 착취와 굴욕을 당했는데 이르다가는 히브리 족속들 한테 또 당할런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는 이렇게 출애굽기 1-2장에서 박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 말은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바로 고센 그 땅이란 말입니다.
반면에 11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 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산과 골짜기니까 강물도 없고 저수지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농사를 짓는다는 곳이란 말입니다. 말하자면 천수답이라는 말입니다. 농사를 짓는데 순전히 하늘만 바라보고 하늘만 의지하는 농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10절과 11절 중에 어느 곳이 더 좋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1절을 더 낫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10절의 고센 땅이 아니라 11절의 천수답이 더 좋다고 말씀하고 있 으며 10절의 고센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11절의 천수답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맞습니까? 성경을 찾아 봅시다. 먼저 창세기 12장은 히브리백성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고 있을 때입니다. 10절에 보면 아브라 함이 살고 있던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 려 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하고 있습니다. 또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도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했음으로 애굽으로 이주해 가려고 했습니다. 1절에,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 3절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는 말씀에 보면 가나안은 자주 기근이 드는 땅임을 봅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 때마다 가나안 사람들이 애굽으로 이주해 가는 것을 보면 애굽 은 기근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피난지는 가나안 땅에서 가까운 애굽의 고센 땅이었습니다. 요셉 때에도 가나안에 기근이 들매 사람들이 애굽으로 왔었고, 엘리야 시대 아합 왕 시대에는 무려 3년이나 기근이 있었고, 엘리사 선지자 시대 때는 열왕기하 8:1절에 보면 무려 그 땅에 7년의 기근을 내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명기 11장 9절에서는 ”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셨는가 말입니다. 이렇게 기근이 자주 생기는 땅이 어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에 실제적으로 애굽의 고센 땅이 진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은 진짜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가나안 땅을 두고 수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8에,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 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광대한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도대체 헷갈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기근이 심한 땅이 어찌 아름답고 광대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의 관점에서는 죽어도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적 성공관의 잣대로서는 도저 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는 틀림없이 애굽 고센 땅이 아름답고 광할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성경은 그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 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나안 땅도 보니까 젖과 꿀이 흐르기는 커녕 맨날 기근, 기근이 연속하는 땅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근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엘리야 시대의 3년 반 기근도, 엘리사 선지자 시대의 7년 기근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 밀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비밀이요 수수 께끼입니다. 이 문제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고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풀리 는 비밀인 것입니다. 고센 땅도 가나안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어는 곳인가?
실제적으로는 고센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 성들이 오래 머물기를 원하시지 않는 땅입니다.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땅은 지옥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입 니다. 고센 땅에서의 히브리인은 하나님이 필요 없는 땅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데 하늘에 비를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가 발로 물을 대기 만하면 되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 속에 하나 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일 강이 그들의 신이었습니다. 나일 강이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마시게 한 다고 생각했습니다. 애타게 하늘을 바라보고 간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늘에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삼가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는 데로 하려고 힘쓰고 애씁니다. 교만해지 거나 자만할 여유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불순하거나 다른 우상에게 관심을 보이거 나 곁눈질을 할 수 없습니다. 당장에 비를 내리지 않으면 기근이 들어 고통을 당하게 되니까 정신 바짝차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통제하 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센 땅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지 않아도 얼마든지 등 따시고 배부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치를 볼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센 땅의 히브리백성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악한 애굽 왕을 세우시고 지옥 같은 고통을 당하게 하니까 그때야 히브리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시사 하나님을 알고 배우게 하 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지 않아도 사업도 잘 되고 자식들도 잘되고 건강하고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인데 그래서 천년 만년 풍요롭게 살기를 바랬는데 왠 날벼락이냐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믿을 수 없습니다. 오늘 잘 되다가도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 이 인간입니다. 진정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해서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이 진정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이요 그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바로 신명기 11:13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 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는 데 그렇게 되면 천수답에도 물이 철철 흘러 넘쳐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풍성하게 될 것이고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풍성하니까 젖이 흘러 넘치고 들에 풀이 많으니까 꽃들이 많이 피므로 꿀도 풍성하게 될 것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6절에,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 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 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 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 때나 엘리사 선지자 때에 3년 반 기근, 7년 기근이 생긴 것입니다. 신명기 11:13의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그 곳이 사막이든 광야이든 가나안 땅이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 나 아무리 실제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 나면 그곳이 지옥의, 고통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2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농 사 짓지 않고 행진하여 가는 곳마다 샘을 파지 않아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공급하여 먹이시고 반석이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강물과 같이 물을 쏟아 주므로 목마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 니겠습니까? 세상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2백만의 사람들이 40년 동안 지낼 수 없는 환경인데도 그렇게 풍성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셨기 때문입 니다. 이것이야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습니까? 목말라 기갈로 죽었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1세대들은 두 사람만 빼고 다 죽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들은 고센 땅에서 살면서 생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자기 재주로, 자신 노동으로 발로 물 대며 살면서 하나님 이 자신들의 삶에 필요를 느끼지 않고도 풍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박 해가 심해서 출애굽 할 때는 정신없이 나왔지만 광야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기들이 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거저 하늘만 처다 봐야 하는 것입니다.
40년 광야에서의 생활 방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저 하늘만 바라봐야 하고 하늘 만 의지하며 산다는 것이 신경질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왔지만 내일은 그 만나가 정말 내릴지, 만약 만나가 내려오지 않으면 자기들은 당장 죽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충만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의 훈련이 되지 않았기에 광야생활이 불만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불평 불만을 내뱉는 것입니다. 끄떡하면 만나 가지고 시비를 합니다. 민수기 11:5에,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 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하니”라고 불평합니다. 애굽 맛을 못 잊는 것입니다. 애굽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것이 너무나 불편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맙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 만은 빨리 애굽 맛을 잊어버리고 애굽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사람들은 2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렸을 때에 애굽을 나왔기 때문에 애굽 맛이 들 든 사람들이기에 쉽게 애굽 맛, 세상 맛을 잊을 수 있었던 자들 입니다. 또한 아예 광야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만나를 먹고 하나님이 운전 하시는 물차인 따라다니는 반석에서 쏟아내는 물을 마시면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서 구름기둥을 보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낮의 구 름 기둥이 불기둥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24시간 하나님의 임제와 하나님의 공급하 시는 것으로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통제 아래 사는 것이 익숙하게 된 그런 2세들 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명기 11장 10절(같이 읽자)은 신자와 불신자가 똑같이 길을 갑니다. 누가 신자인지 누가 불신자인지 판 가름나는 분기점이요, 인본 주의와 신본주의가 갈라지는 지점이요, 세상적 관점과 성경적 관점과 세상적 사고방식과 성경적 사고방식, 세상적 생활방식과 성경적 생활방식이 갈라지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1:13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젖과 꿀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 장소가 아니라 13절의 말씀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기만 하면 이 세상 어는 곳에 있든지 그곳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른 곳이란 말입니다. 그 기근이 많은 가나안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으며 40년의 광야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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