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4

요한복음 17:1-26

 

누가복음 9:51절에서 인류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신 후 이제 하 루 밤만 지나면 겪게 되실 십자가의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최종 성취하시기 전날 밤인 고난주간 5일째인 목요일 밤에 최후의 만찬을 전후하여 행한 고별설교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장 에서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랑의 행동을 통하여 서로 섬기며 사랑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 승천 이후에 세상에 남게 될 제자들을 향한 내세에 대한 보장과 위로의 약속과 복음전도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박 해에 대한 교훈과 이 박해를 이길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실 약속을 하십니다.  이제 요한복음 17장 에서는 십자가에 죽음을 앞두시고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과 장차 성립될 모든 교회들을 위해 이 세상 의 구속주로 오신 대제사장적인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찬 기도를 하시는 장면 을 기록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죽음 후 부활의 승리를 예견하여 이 겟세마네 기도를 생략하고 있습 니다. 요한복음 17장은 13-16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 이후로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 동안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사랑의 새 계명과 핍박 박해에 대한 성도의 자세와 승리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명심해야 할 구속사적 진리들을  교훈한 것에 대한 결론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제자들과 전 신약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 라서 십자가의 고난을 바라보는 침통한 분위기 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신약 성도의 중보 자로서 대제사장적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의 승리와 기쁨의 분위기가 넘치는 장엄한 기도입니다.

첫째로 성부와 성자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요 17:1-5)

요한복음 16장을 끝으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고별설교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 서 십자가 수난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겟세마네 동산에 근접한 지점에서 하나님께 드린 일명 ‘대제사장 의 기도’라고 불리워 지는 중보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공관복음서에서 공통으로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략하고 겟세마네로 가는 도중 에 드린 중보기도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겟세마네 기도가 십자가 고난을 목전에 둔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를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17장의 중보기도는 이 땅에서의 공생에 사역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메시야적 사역의 완성을 확신하면서 드린 기도로 하나님의 아 들이시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더욱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제자들과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까 지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는 자신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사 완전한 인간이 되심으로 스스로 포기했던 창세 전의 영광을 이제 십자가의 사역을 다 이룸으로 다시금 그 영광을 누리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영광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아버지여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하신 모든 기도 가 운데 십자가 위에서 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란 외침 외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그 호칭했습니다. 구약시대의 기도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유 대교 문헌에도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통용어인 아람어의 구어체에서 사용되던 호칭은 아바입니다. 이 아바는 어린 아이가 사용한 아버지에 대한 애칭입니다. 따라서 당시 유대교에서는 이 말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무례한 것이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이 말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뿐 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주기도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했는데 갈라디아서 4:4에도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으며 요한복음 13:1 에서도 때가 찼다고 했으며 요한복음 17:1에서도 때가 찼다고 했습니다. 이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찼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자신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요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을 통한 인간들의 구원이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하는 권세도 가지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믿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아버지 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라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 동안 하신 모든 일과 십자가에 죽으실 모든 일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모든 일을 이루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창세 전 즉 성육신 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 께 가졌던 영광을 다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성부와 성자 그리 고 성령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영화로우실 뿐 아니라 상호 영화롭게 하심으로 성도가 하 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세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 자체였습니다.  주님 의 성육신과 각종 사역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이르기 까지 어느 하나라도 예수님 스스로의 뜻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며 이미 오래 전부터 정해 놓으신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영광은 인간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과 함께 소유했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입니다.

셋째로 영생의 비결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인격적 만남을 통한 체험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제자들을 위한 기도(요 17:6-19)

예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선택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신약 선민인 세계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 이 승천하신 후 재림하시기까지 지상에서 생활할 동안 신앙과 생활의 중심이 될 교회의 창설자로 세 우신 자들입니다. 이들을 위한 주님의 중보기도는 이들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이 세울 신약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종을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약복음의 핵심내용들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전수 받은 자 들이기에 이들이 믿음 가운데 온전히 서야만 신약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 내용을 세 가지로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기도 제목은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을 때에 세상을 피하거나  악한 자들에게 빠지지 않 도록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해주실 것과 계속 그 믿음이 보존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6-10절).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창조주이시면서 구원자 되신 하나님의 본질을 보여 주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께 받아 들려질 수 없고 또한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과 모든 믿는 자들의 성숙 한 믿음을 통해 드러날 영광에 초점이 있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 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 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 옵나이다. 9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 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온 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둘째기도 제목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신 것 같이 제자들 또한 진리와 사랑 안에서 연합되게 해 달 라는 것 입니다(11-16절).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의 길을 떠나 가셔야 할 시간이 임 박했음으로 남아 있는 제자들의 시급한 필요에로 관심을 돌리십니다.  또한 이렇게 제자들을 위해 기 도하시는 것은 단순히 열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모든 신자들도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 실은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시급한 필요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제자들과 성도들도 거룩하게 보존되게 해 달라는 것입 니다.

제자들을 비롯해 모든 성도들이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죄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보존하심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제자들을 보존하는 중요한 일에 하 나님의 거룩성을 의지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성을 통해서 만 제자들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간구는 세상의 악과 오염으로부 터 제자들을 굳게 보호하며 안전하게 보살펴 주실 것을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간구의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입니 다. 성육신 하신 아들과 아버지의 존재론적인 연합은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연합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악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서 연합된 유기체적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에게 요구하는 공동체는  어떤 단위들의 연합이 아니라 철저한 통일성이 강조되는 연합입니다.  그러 나 이것은 장래에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파가 되어 맘모스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명령은 성도들이 세상에 대항할 때에 항상 하나로 연합해야 할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13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 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에서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자들 앞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가 아 버지께로 가신 후 제자들만 남게 되었을 때에 세상으로부터 받을 환난과 핍박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 입니다. 그 핍박을 견디기 위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충만히 채워주실 기쁨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 다. 즉 세상적인 측면에서는  근심이 가득할 수 밖에 없지만 제자들은 이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는다면 세상의 역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충만한 기쁨을 소유하고 그 가운데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와 성도들은 위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서 난 하나님의 소유임을 요한복음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선택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전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그 사실을 말씀하셨으나 지금은 동일한 사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제자들 은 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 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 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 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 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 니 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셋째 기도 제목은 제자들을 하나님 말씀, 즉 복음의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님의 기도는 장차 복음을 증거할 자들인 자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저들을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전하여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17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 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거룩이란 본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해 사람이나 사물을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거룩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제자들의 미래의 사역을 위해 적절한 은혜를 구하기 위해 세상이나 악의 세력 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거룩케 하는 수단이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는 작용하고 활동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진리는 거룩케 하는 집행자이기도 하지만 거 룩케 된 제자들이 머물러야만 할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질과 계시는 진리입니다. 존재 자체가 진리이신 하나님의 계시만이 참된 성결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이신 진리의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말 씀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를 행하는 기준으로서 절대로 무오하므 로 말씀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맞게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성결케 되 는 것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성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선교로의 성별을 나타냅니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 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성자 하나님은 선교 사명을 위해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또 그들을 위해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한다’는 말씀은 인류의 죄를 위 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함으로써 스스로 구별된 제물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십자가 를 바라보시면서 그 구속을 통해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 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 스스로 거룩하게 하심은 제자들의 성결함의 근본적 동인이 됩니다. 이 제자들의 거룩도 세상으로 부터 분리되고 사명에로 성별된 것으로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기인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내어주심으로 거룩하여 지지만 제자들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이 제사의 효력을 힘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요17:20-26)

이제 그 기도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여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장차 자신을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는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당대의 유대인들만을 구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의 오고 오는 세대에 걸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궁극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도는 성도들 간의 일치와 연합입니다(요17:20-23)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합뿐만 아니라 먼 훗날의 성도들도 연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는 제자들 이나 성도들의 연합에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0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 니 21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예수님 께서 말씀하신 성도들 간의 연합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의미합니다. 몸은 하나인 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으나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성도들 간의 연합이란 결국 몸의 머리되신 주님 안에서의 일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앙과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닌 세상적 이해 관계 나 기타 인본주의적 요소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과 일치를 외면하는 현상은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요구하 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성도의 온전함과 하나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아버지께로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수여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성자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사랑하십니다.

‘22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 려 함이니이다. 23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둘째 기도 내용은 저들이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들이라 것입니다(요17:24-26).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 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26내가 아버지 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제 중보기도를 끝내실 시점에서 예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3에서 제자들을 위한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려 가셔서 예비되면 다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로 내 나라에서 내 상에서 먹고 마실 것이라 했습니다. 선택되지 못한 자들에게는 철저히 배제되고 성도들에게는 보장된 그리스도와의 영 원한 교제를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며 영원한 빛이신 주 하나님의 은혜의 광채 아래서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들을 사랑하 셨고 이 사랑은 이제 사람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능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있게 된다는 것은 특히 모든 성도들의 마음 속에 개인적으로 임재하실 것이요 특히 성도들 서로의 연합된 관계 가운데에도 계실 것을 강조하십니다.

결론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성도가 연합되었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합일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리스도가 우리 죄인들이 받을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심으로써 법적으로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는 뜻입니다. 따라서 법적 연합을 이룬 성도는 실상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죽으 심과 그의 부활에 함께 연합하여 동참함으로써 본래의 죄값을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다 치르고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남으로써 의인이 되었다는 법적 인정을 획득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 들이 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와 법적 연합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 고 이로써 성도와 성도들 간에도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와 성도, 또 성도와 성도 간의 연합은 생명체요, 인격체의 연합인 고로 참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나 사람의 신체의 비유에서 보듯이 단순한 법적 연합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유기적이고 생동적인 연합입니다. 이러한 신약의 모든 성도들의 연합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오늘날 그리 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인간적인 편견이나 이기심으로 인해 다툼과 분열만을 일삼는 현대교회로 하여금 깊은 반성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교회의 연합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기에 그 기도가 반듯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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