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5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마태복음을 1장부터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장을 배웁니다.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사건을 다룹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사건에 이상한 점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 동안 메시야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나타나셨는데도 정작 한 사람도 메시야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마태복음 2장에 등장하는 각 방면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 먼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메시야는 무엇보다도 종교 지도자들에게 연구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메시야에 관해서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어디에서 탄생하실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이며, 어떤 동물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자주 듣는 율법사야 말로 평생을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선생들입니다. 그러니 메시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 것이며 메시야를 잘 알고 있으니 얼마나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메시야가 탄생했는데, 그리고 그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들이 성경을 찾아보고, 자신들이 동방박사들과 헤롯 왕에게 가르쳐 주기까지 했으면서도 메시야를 환영하기 위해 한 사람도 베들레헴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몇천년 동안 기다리던 메시야가 분명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알아보고도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야가 왔으면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계획하고 추진했었야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다못해 한 사람이라도 갔어야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한사람,
동방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를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헤롯왕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유대 땅 베들레헴일고 대답했습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5:2에,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성경을 펼쳐서 왕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사람들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입니까? 이들이 한 사람이라도 베들레헴에 내려갔습니까? 메시야 환영식을 거행했습니까? 환영하기는 커녕 한 사람도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무슨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무언인가 눈치를 보고 있는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그렇지요? 모든 종교 지도자들, 즉 레위인들, 제자장들, 대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이런 사람들을 다 모으면 그 당시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이 메시야의 도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내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헤롯 왕입니다.
헤롯왕은 깜짝 놀랬을 것입니다. 자기가 왕인데 또 무슨 왕이 나타났단 말이냐 하는 놀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헤롯 왕은 출신이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에 이스라엘 사람들 외에는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헤롯 왕은 로마 황제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가 자기 민족을 지배하는 것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에돔 사람 헤롯을 자신들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은 어찌 하든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성전 공사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성전을 자랑스러워했고 좋아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헤롯 왕의 노력이 적중했습니다. 그렇지만 헤롯 왕은 자기의 왕의 위치를 해치려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처단했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데 자기의 왕좌에 관심을 보이는 자는 아들이고 왕비고 할 것 없이 죽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을 왕이 되게 한 로마 황제 쪽에서 헤롯 왕을 두고 말하기를, ‘헤롯 왕의 자식이 되기보다 차라리 돼지의 새끼가 되는 것이 났다’라고 빈정댈 정도로 헤롯 왕은 자기 왕 자리를 지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외에 다른 왕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따라 왔다고 하니 헤롯 왕이 얼마나 황급했겠습니까?
그래서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사실에 대해 보여준 반응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은 마태복음 2:3에 말하기를,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했습니다. 아니 헤롯 왕이사 자기 대신에 다른 왕이 나타났다고 하니 두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살기가 등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왜 소동합니까? 또 다른 한 곳은 마태복음 2:4에서, 왕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소집해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겟느뇨 하고 질문을 합니다. 여기 이 구절을 잘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하고 질문을 합니다. 그리스도란 메시야란 말입니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메시야가 어디서 나겠느뇨 하는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헤롯이 이 아기가 메시야인 것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메시야가 누구입니까?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몇 천년 동안 대대로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 메시야 아닙니까? 헤롯 왕이야 에돔 사람이니까 그렇다치고 그 외의 이스라엘 사람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고 바리새인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메시야를 영접하려 와야 하지 않았을 까요? 헤롯 왕은 메시야를 죽이려는 음모를 합니다. 동방박사들을 엄밀히 불렀다고 했습니다. 왜 가만히 불렀습니까? 아마도 에돔 출신의 왕 자신에 대해 불신하고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추대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 왕이 만약에 있을 그런 사람들 먼저 선수를 처서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베들레헴 근처의 두살부터 그 아래 연령의 모든 아이들을 모두 살해 합니다. 사탄은 이 헤롯을 시켜 바로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후손이 사탄 자신의 머리를 깨뜨리리라 하신 말씀을 방해하여 여자의 후손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세번째로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입니다.
이들 역시도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온 백성들을 모아 베들레헴으로 일차 환영행사를 치루러 왔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소동은 왠 소동입니까? 메시야를 환영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소동을 떨었습니까? 4절 말씀에 보면,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을 했다고 합니다. 무슨 소동이며 왜 소동을 떨었겠습니까? 아마도 예루살렘 사람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무서운 헤롯 왕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들고 서기관들과 마찬 가지로 이들도 헤롯 왕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 전부가 아무리 헤롯 왕이 무섭다기로 서니 왕의 눈치만 보고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행위입니까? 조상 대대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다는데 아무리 헤롯 왕이 무섭다기로 서니 이렇게 비겁할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으며, 이렇게 저주 받을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그 시대에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여러분들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한 번 가슴에 손을 넣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목숨 걸고 메시야를 환영하러 왔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끈질기고 반항적이며 통제하기 어려운 민족으로 로마황제나 로마정부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메시야를 반기는 이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무기력합니까? 물론 이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바라는 그런 메시야인 줄 모릅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려 오신 메시야라는 사실도 모를 때입니다.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분명히 확인한 바 메시야가 오셨다면 목숨 걸고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자신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로마군대를 뒤엎고 전 세계를 다르실 영웅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메시야가 왔는데도 무관심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 불행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그 메시야를 잡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네번째로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복음서에서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의 사건이 마태복음의 사건보다 시간적으로 앞섭니다. 누가복음 2:6에 보면 아기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려 왔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입니다.
남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 잠도 자지 못하고 양들을 돌보아야만 하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득권 인사들인 왕이나 대 제사장들이나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에게, 그리고 예루살렘 도성에 사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동방박사들에게 알려 주었건만 이들은 메시야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에게 천군천사들을 보내서 메시야가 탄생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온 우주의 오케스트라로 그들에게 메시야 탄생을 알려주시면서 어서 가서 경배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8-15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사람들이 메시야를 환영하지 않으니 천군천사들이 찬양하고 있음)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다섯째로 마태복음 2장에 나타나는 인물은 동방박사들입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입니다. 메시야가 탠생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경비를 아까와 하지 않고 메시야 별을 따라 왔는데 갑자기 그 별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동방박사들은 할 수 없이 에루살렘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면 왕으로 나신이를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왕이 탄생한 사실을 다 알고 있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이 왜 예루살렘 앞에서 없어져 버렸습니까? 동방박사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깨우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메시야가 오셨는데도 무관심한 자들을 분발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메시야갸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가 시험하기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시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무관심으로 돌려버렸습니다.
멏 전년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놓쳐버렸고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메시야가 세상에 오셨음을 영접하려 갔습니다. 박사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을 소동을 일으키고 나니 다시 별이 나타나서 이들을 인도하는 것을 봅니다(마2:9). 마태복음은 누가복음보다 시간적으로 좀 후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2장에서는 아기가 마굿간 말구유에 눕혔다고 했는데 마태복음 2:11에 보면 집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기가 태어난 후 호적하려 왔던 사람들이 호적을 하고 떠난 후에 여관이나 집들을 빌리는데 여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산모가 요양을 해야 하겠기에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 길을 온 동방박사들의 발걸음을 헛되지 않게 했습니다. 아기를 보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도렸습니다. 마태복음 2:11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그 집에 들어갔을 때에 아기의 모친과 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기에게만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요셉은 시야에도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경배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사건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메시야의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메시야를 배척했습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인 동방박사에게 주심으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먼저 전해지게 되고 복음이 2천년 동안 전파되고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우리에게도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 메시야를 배척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1:25,26에서 보면 이방인의 마지막 사람이 구원받게 될 때부터 유대인들도 집단적으로 2천년 전에 저희들의 조상들이 배척했던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회개 하고 돌아 올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초림 때에 메시야를 가장 잘 알던 종교인들이 메시야를 배척했던 것과 마찬 가지로 메시야께서 재림하실 때도 메시야와 가장 가깝다던 종교인들,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이 재림하시는 메시야의 재림을 무관심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살펴보십시오. 메시야의 재림을 무관심하고 있지는 않는지? 메시야의 재림에 무관심한 오늘날의 교회와 교인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자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사 말할 것도 없지만 재림예수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도 무관심한 상태를 보게 될 것입니다. 깊은 밤과 같이 영적 잠을 자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도적 같이 오시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고 읽는 여러분들은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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