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천년왕국에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위와 삶 -9-

 

  1. 여기서 나는 좀 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태초에’라는 말이 두번 나옵니다. 창세기 1:1과 요한복음 1:1입니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며 요한복음 1:1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입니다. 여기의 이 태초들은 각각 다른 시점니다. 요한복음 1:1의 태초가 창세기 1:1보다 더 먼 태초입니다.

 

요한복음의 태초에 삼위 하나님이 계셨는데 하나님께서 한가지 중요한 결정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골라내서 영원히 함께 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그후에 하나님은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욥38:7). 그후 이제 창1:1에서 천지를 창조하십니다. 천지는 우주(하늘들) 땅(지구)을 말합니다. 창세기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창세 기 1:1절과 1:2-31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과 창1:2-31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시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창1:1에서 우주를 완전히 창조하셨습니다. 우주 창조를 끝냈습니다. 그 우주 속에 지구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창1:2-31은 땅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즉 지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창세기 1:1-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 구절들에서 1절은 우주 창조이고 2절부터는 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절과 2절 사이에 큰 시간의 흐름(Gap)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백년 혹은 천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시간 차가 있으며 그 기간 동안에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 합니다. 그런데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 단번에 완전하게 하시는데 지구에 이런 일이 있었고, 이 일을 교정하시기 위해 창세기 1:2-31을 시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의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지구와 지구에 사는 동식물들을 경작하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과일은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아 ! 이상하다. 에덴동산에 왜 사탄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용하셨을까? 에덴동산 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어쨌든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게 되고 그 결과로 인간은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가 됩니다. 아담과 하와와 사탄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창 3:15 에서 원시복음인 여자의 후손을 이 세상에 보내어 인간을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잠깐 사탄이 왜 에덴동산에 도사리고 있었는가를 알아 보겠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1의 기나긴 시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창1:1에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지구를 창조하셨으며 그 가운데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에덴동산을 그룹천사(Guardian Cherub)로 당분간 지키고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에 덮는 그룹이라고 거듭 말씀하시는데(에스겔 28:14,16) 덮는 그룹은 영어로는Guardian Cherub입니다. 보호하고 수호하고 감시하고 관리하는 그룹 천사입니다. 무엇을 보호하고 관리합니까? 그것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에스겔 28:13-17,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 … … ….’

에스겔28:13에 의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의 에덴동산은 각종 보석으로 단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에덴동산을 임시로 가꾸고 지키고 관리하도록 그 그룹천사에게 맡겼습니다. 말하자면 에덴동산의 주인이 오기까지 가꾸고 지키도록 임시로 에덴동산을 맡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룹이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이라 했습니다.  천사들 중에 우두머리였습니다. 그 세력이 대단했습니다.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왕래하고 그가 아름답고 영화롭고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욥기38:7에서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했습니다. 욥기 1:6, 2:1, 창세기 6:2, 4, 시편 89:6에도 언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들이 나기 전에는 천상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통하였습니다. 이 지키는 그룹이 생각하기를 자기가 에덴 동산의 주인이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이 에덴동산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인이란 앞으로 태어날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천상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그리고 지구는 혼돈과 흑암으로 덮히게 되고(창1:2), 그 지키는 그룹은 하나님의 성산에서 쫓겨나고(에스겔 28:16), 세월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지구를 다시 단장하시고, 그 안에 에덴동산을 다시 창설하셔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역한 사탄과 그 졸개 천사들을 당장 불못 심판을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영원 전에 염두에 두셨던 참 아들들을 골라 영원세계에서 함께 살고자 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사탄을 사용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골라 낸다는 말은 사탄이 지구의 왕인 상태에서 죄의 종이 된 인간 중에 사탄의 핍박과 박해와 죽음도 이기고 끝까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승리한 인간들을 골라 내어 참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사탄 처형을 유보하시고 에덴동산을 맴돌고 있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창3:1).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준비해 오셨는데 그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창세기 12).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되고 하나님은 이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만민의 제사장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고민을 하시다가 이들의 마음의 완악함과 불순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십니다.

그 결과가 이사야 6장에 나옵니다. 천상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인류구속사역을 위해 이스라엘을 사용하실 것에 대한 중대한 선포를 하시기로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인류에게 엄청나고 굉장한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실 때 주로 성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데 이 계시는 삼위 하나님께서 합동으로 선포하시는 크고 놀랍고 엄청난 선포입니다. 성경 말씀에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고 나타난 3구절이 있습니다. 첫 구절은 창세기 1:26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였으며, 두번째는 창세기11:7에서 인생들이 바벨탑을 쌓는 배반적인 일을 할 때에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자 하실 때였으며, 세번째는 이사야 6:8입니다. 그 만큼 이일이 중요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하나님 존전으로 불러 올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누구를 보낼꼬 하십니다.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하고 이사야가 그 일을 자청합니다. 그 일이 무엇이냐 하면 이사야 6:9-13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 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우선 여기서 강조할 구절들은 9절에서 10절입니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 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너희가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메시야를 보낼탠데 너희가 그 메시야를 보아도 알지 못하고 그 메시야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가 막히고 눈을 감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야를 메시야로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그 메시야를 죽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창3:15의 여인의 후손으로서 예언대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헤롯이 사탄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이라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헤롯과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 이사야6:9-10말씀을 계속 인용하셨습니다. 이사야 6:9-10말씀이 나와 너희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마13:14, 15, 막4:12, 눅8:10, 행 28:26, 27, 롬11:8).

마태복음 13:14, 15,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구절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사복음서에 3번 언급되고 사도 바울에 의해 두번 언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죽으려 오셨습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피를 흘리려 오신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 하신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누가 죽여야 합니까? 만약 유대인들이 귀가 멀지 않았고 눈이 감기지 않고 마음이 완악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복음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 은 유대인들이 순간순간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에 예수님이 죽도록 계획하셨는데 오히려 유대인들은 명절에는 죽이지 말자. 혹시 그 일로 민란이 일어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4:1-2). 아, 이사람들이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아 !, 이 때에 가롯유다가 등장합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유대인들에게 큰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가롯유다를 이용해서 이른 아침에 체포해서 자신들이 예수를 직접 죽이지 않고 로마정부를 통해 로마법에 의해 처단해서 유대인들의 불만을 로마정부에 떠맡겨 버린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는 죽일 죄가 없다고 세번이나 말하는데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협박하기를 우리들의 황제는 가이사 한 분 밖에 없는데 예수는 자기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데 당신이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가이사의 반역자이요 라고 협박하니 빌라도가 저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어 예수님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일로 유대나라는 로마장군 디토에 의해 AD70년 망하게 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 때부터 유대인들은 세계전역에 유랑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6:11-12,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 유대인들의 유랑생활

유대인들은 유럽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들은 그 나라 지역사람들에게 미움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나라, 땅이 없이 다른 나라 민족에게 얹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활하는 곳마다 특출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19세기 초 (1812 년) 독일 베를린의 최상위 은행 32개 중에 17개가 유대인 소유였으며 7개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소유였다고 합니다. 또한 베를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거의 유대인, 대학들의 교수들이 유대인, 변호사, 의사들이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큰 회사에 독일청년이 취직을 했는데 그 위에 높은 사람들이 다 유대인들입니다. 회사 안의 괄세가 심했다고 합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 버리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뿐만이었겠습니까? 유럽 전역의 나라 민족들의 마음이 유대인들로 인해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 줄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 사람이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인류의 기생충, 유럽의 유행병, 청소해야 할 인류의 쓰레기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인류에게 공헌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국민들과 부하들에게도 그렇게 믿도록 했습니다.

 

  1. 유대인 박해 역사와 그 이유

구약성경과 인류사에 유대인을 상대로 한 큰 살육 시도가 3번 있었습니다.

그 첫째가 출애굽기1:8-22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조가 세워지면서 이스라엘사람들을 살육합니다. 너무나 그 삶이 괴로웠는데 모세가 나타나 나가자 하니까 사막에서 무엇을 먹으며 물은 어떻게 조달 받을 지에 대한  앞뒤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 나섰다가 사막생활이 힘들어지니 그 때야 정신을 차리고 애굽의 고기가마 옆에 있었더면 좋았을 것을 하고 불평합니다.

두번째 민족 살육 시도가 에스더 3:1-15입니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는 시도를 하다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해 실패하고 자신들이 오히려 죽게 됩니다.

세번째 시도는 히틀러에 의해서입니다. 그 때에 유대인 6백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만약 2차 대전이 제 때에 끝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유대인들이 살육당했을 것입니다. 히틀러는 자기 관할에 있는 유럽의 유대인들을 모두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이사야 6:12-13,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 세번의 유대민족 말살정책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고토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출애굽시에 바로왕의 그 극악한 민족박해 정책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400여년 정든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에,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했습니다. 그들이 오래 살던 고센 땅은 요셉이 자기 종족들을 위해 고르고 고른 땅입니다. 나일강 하류로서 삼각주로서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기에 생육하고 번성했던 것입니다. 그런 땅을 두고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땅으로 이들이 옮겨 가기로 결정했을까요?

두번째 에스더서는 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해 유대민족이 해방되고 고토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는데 고토로 돌아간 사람들은 고작 5만명 정도였습니다. 에스더 사건은 1차 포로귀환 이후 2 차, 3차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땅에 머물지 말고 고토로 귀환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에스더 사건으로 2차, 3차 귀환의 자극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 차, 3차 때도 사람들의 귀환이 너무 적었습니다.

셋째 시도의 히틀러에 의한 살육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없는 것을 한탄하며 어찌하든지 고토로 돌아가야 하겠다 생각합니다. 1897년 데오도르 헤즐은 스위스 바젤에서 제 1차 시온주의 회의를 주최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민족을 위한 나라 건설’이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첫째로 대부분의 랍비들이 세속주의적 시온주의를 강력이 반대했습니다. 랍비들의 질투였습니다. 두번째로 유럽 사회에 동화된 세속적인 유대인들의 반대였습니다. 시온주의를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계혁파 유대인들은 미국 땅이 바로 우리의 시온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강력한 반유대주의자(Antisemitism)들이 시온주의를 강력히 환영했습니다. 독일의 빌헬름 2세, 오스만 터키의 술탄, 심지어 러시아 유대인학살을 주도한 내무장관은 헤즐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러시아에 있는 700만의 유대인들을 흡수할 수 있는 독립된 유대국가가 탄생하기를 매우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초창기 시온주의 운동에 열광적 지지를 보낸 사람들은 동유럽의 가난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헤즐은 4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이 유대인의 시온주의에 동조하게 된 비하인드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 하임 바이즈만입니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베를린 종합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스위스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였습니다.

멘체스터 대학 생화학 교수가 된 그는 그곳에서 유대 민족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대영제국을 이용해야 한다는 필생의 사명을 발견합니다. 열렬한 시온주의자이던 바이즈만은 2차 시온주의 대회부터 참석해 시온주의 의장을 두번이나 역임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과학자였지만 노련한 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정치력과 과학자로서의 연구가 밸푸어 선언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탄약의 재료가 되는 아세톤을 녹말에서 대량생산해 내는 기술을 개발해 1차 대전에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일로 윈스톤 처칠, 아서 밸푸어, 로이드 조지와 같은 영국 정계의 거물들을 시온주의의 강력한 지지자로 개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밸푸어 선언은 영국 전쟁성 장관이었던 로이드 조지의 부탁을 받고 아세톤 대량생산 기술을 개발해 낸 바이즈만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이루어진 면이 많습니다. 1917년 11월 2일에 그 당시 영국의 외무부 장관이던 밸푸어가 영국내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인 로스차일드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영국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향토 수립을 지지하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란 것이었습니다.

한편 2차 대전이 일어나고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유대인 대학살 운동이 일어나면서 유대인들은 꼼짝 없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후 1948년 5월 14일에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독립국으로 인정했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유대인들로 유대인국가를 건설해야 하겠다는 열심의 불을 더욱 지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토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에스겔, 예레미야, 스가랴 서에서 하나님 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고토로 돌아갈 것과 그 길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국가 형성과 그 의미

이스라엘백성은 AD 70년에 백성들이 온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되고 1948년에야 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약 2천년 만에 국민과 국토와 주권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한 국민이 한 국토에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남의 나라에 각각 흩어져 살면서 2천년이 지났는데 어찌 그 민족이 주변 나라 민족에게 흡수 동화되지 않고 자기말을 가지고 있으며 2천년이 지난 후에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며 국토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각 나라에 살면서 게토(Ghetto)라는 자신들 만의 동네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유대민족과 함께 살을 맞대고 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Gerald Green이 쓴 Holocaust에 의하면 폴란드에서는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사는 게토가 있었습니다. 그 게토는 성으로 싸여 있으며 성문을 통해서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 성 안에서 유대인 자신들 끼리 결혼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살아 갑니다. 히틀러 때는 그 성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성안에 갇혀 먹을 것도 공급받지 못하고 죽음의 개스 공장으로 끌려가기만 했습니다.

유럽의 각 나라 사람들은 유대인과는 결혼도 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에 붙여 살면서 온갖 멸시와 조롱과 박해와 핍박과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나는 1975년에 캐나다 토론토에 이민와서 살았는데 지금까지 내 뇌리에 남아 있는 생각은 어느 공원에 팻말이, ‘개와 유대인은 이공원에 출입을 금한다’ 였습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그리고 어디서 그 정보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내 기억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미움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따돌림을 받았었기에 자신의 신앙과 민족성과 언어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만약 이들 소수 민족이 각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환영받고 존경받은 위치에 있었다면 이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흡수되어 동화되어 민족 자체가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것도 이스라엘사람들을 고토로 모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책략이 아니었을 까요?

 

  1. 하나님은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시고 국가를 형성하시고 한 왕에 의해 통치를 받게 하실 것이라고 수 없이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에서는 만민의 제사장 민족으로 삼으실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년왕국을 이 땅에 형성하신 또 다른 이유로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상을 하시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메시야를 이 세상에 모셔 들인 민족입니다. 그 이유로 인해 사탄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들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해,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피를 흘려 죽으려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여야 할 운명을 가진 민족입니다. 또 예수님을 죽인 이유로 인간들에게서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만약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죽으려 오신 예수님을 어느 민족인가는 죽여야 했습니다. 그 임무를 담당함으로 인해 이스라엘백성들은 사탄에게 그리고 인간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당한 민족입니다. 창3:15에서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원수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이 원수를 세상에 모셔들인 이스라엘이 얼마나 저주스러웠겠습니까? 최상의 노력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로마인들에게, 히틀러에게, 유럽의 모든 민족들에게, 그리고 에스더 시대의 백성들에게 몰살 당할 번도 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 장군 디토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당하므로 그때로부터 2000년 동안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나라 없고 민족 없는 서러움을 엄청나게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이스라엘 민족들을 보상하시기 위해 천년왕국을 이룩하신 것입니다. 메시야를 이 세상에 모셔들이고 예수님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인류구속 사역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한국백성 혹은 미국민 혹은 중국이나 일본인들의 조상이 되어 메시야께서 한국민족 혹은 그들에게 오셨다면 우리 한국사람이 메시야를 죽여야 했고 그 일로 온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되고 다른 민족들에게와 사탄에게 유대인들이 받은 박해를 받아야 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스가랴 8:21-23에,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역사 상에 이런 일이 언제 있었습니까? 이 일은 천년왕국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61:2-9에,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들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누가복음 4:16-19을 이사야 61:1에서 인용하셨고 그리고 이사야 61:2절은 절반만 인용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61:2절의 ‘주님의 은혜의 해’까지만 읽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주님이 초림하셔서 하신 사역까지만 말씀하시고 천년왕국에 될 일들은 읽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 61:6에서 이스라엘을 천년왕국에서 만민의 제사장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했습니다.

에스겔 37:21-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 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여기 다윗은 천년왕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구절들을 읽을 때에 천년왕국 때의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의미가 깊어질 것입니다.

이사야 49:5-26,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 그들이 주리 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사람들의 천년왕국에서의 위치에 대해서 독자들이 혼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천년왕국이 이룩된 시점에서는 우리는 부활해서 영체가 된 자들입니다. 천년왕국에 육체로 들어간 자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예수님을 믿은 메시아닉 쥬들도 부활해서 영체로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됩니다. 육체로 천년왕국에 들어온 이스라엘백성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는 유대인들입니다. 우리는 천년 왕국에 육체로 들어가지 말고 영체로 들어 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의 영원 시점에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참 아들들로 삼으셔서, 우리는 영원세계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살게 됩니다.

 

여기서 잠간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사야 6:9-10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와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구원을 받을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허락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사도는 심각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1, 2 (상반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잠간 동안 내버려 두었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11:11-13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 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에서 이스라엘에 넘어짐으로 이방인이 구원받게 되고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이방인들에게 풍성함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1:25-27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 라.’

 

이 구절들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찰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6:8-13,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의 미래 운명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하시기 위해 이사야를 하늘 보좌 앞에 세웠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메시야를 배척하고 믿지 않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때에 이사야가 너무 안타깝고 놀라워서 하나님께서 물었습니다. 그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입니까 했을 때에 하나님의 대답은 12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기간은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하셨기에 이스라엘의 영토 주권이 회복되고 국토에 백성들이 돌아오게 될 때(1948년 5월 14 일)로부터 그 저주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구주로 메시야로 영접할 때요 그들의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 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 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 터기니라 하시더라.’

저는 이 말씀을 음미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아침 출근시간은 버스에 만원 또 만원과 충만입니다. 차장이 버스가 터질 정도로 사람을 태우고 문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태운 후 자신은 겨우 버스문을 닫고 ‘올 라잍(All right)’하면 버스가 떠납니다. 여기서 버스는 구원을 상징하고 버스 운전사는 하나님, 그리고 일반승객은 이방인, 버스차장은 이스라엘의 구원받을 사람들이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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