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라사인 상육작전 누가복음 8:22-40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꽃이 나비를 찾아 갑니까,나비가 꽃을 찾아 갑니까? 나비가 꽃을 찾아 간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런데 꽃이 먼저 나비를 찾아 갑니다. 왜냐하면 꽃이 향기를 발하여 나비를 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물들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추우나 더우나 바람이 부나 눈이오나 비가 오나 그 자리에서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하면 식물이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들은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아 가고,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불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식물과 같이 너무나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죄로 인해서 병들고 늙고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 께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마귀들에게 온갖 해를 당해도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서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무능하고 무지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식물들이 꽃을 통해 향기를 보내어 나비를 부르듯이 인간들은 기도의 향기를 발해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게 하셔서 이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낮고 천하고 더러운 세상에 인간들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소경이라서 예수님께 올 수 없었던 바디메오에게 찾아가셔서 눈을 띄워 주셨습 니다. 38년 동안 중풍병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병자에게 찾아가셔서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셨을 때에 이 사람의 병이 물러가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에 살던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리인이라해서 죄인 취급 받기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키도 작고 해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멀리서 한 번이라도 보고싶다고해서 뽕나무에 올라가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지나가실 줄 알았던 예수님이 난데 없이 뽕나무 위를 처다 보면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삭개오야 내려 오느라 오늘 내가 너희 집에 머물 것이라 했습니다.
또 어느 날 예수님은 멀리서 부르짖는 한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찾아 가기로 작정하시고 배에 오르사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예수님 이 배에 오르시자 배 뒤편에서 주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35에서는 그날 저물 때라고 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제자들과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을 만큼 바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셔서 피곤하신 데도 불구하고 지금 또 다른 가련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루 종일 일하셨기에 피곤하심으로 사람들을 떠나 좀 쉬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배를 탓다고 하 는데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일을 또 하시기 위해 바다 건너로 가고 계셨던 것입 니다. 본문 누가복음 8:40은 본문의 시작 절인 8:22과 연결이 됩니다. 40절에, ‘ 예수께서 돌아 오심에 무리가 다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배에 오르시니 잠시 동안 이었지만 일없이 앉아 계시니 곧 잠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광풍이라 했으니 얼마나 심한 바람이었던 가를 짐작합니다. 그 바람으로 인해 파도가 거세게 치고 물이 배 안으로 들어 오므로 제자들이 물을 밖으로 퍼 내고 바람과 파도로 인해 배가 뒤집힐 지경입니다. 제자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 렀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아룁니다. 예수님이 그만큼 피곤하셨고 또 깊이 잠드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사 바람과 파도를 향해 꾸짖 었다고 했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 파도야 잔잔하라고 명령하시자 마자 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도 잔잔해졌습니다. 더디어 거라사인의 땅에 상육하셨습니다. 이곳에 오기까지 한바탕 해전이 있었습니다.
이 해전은 예수님이 거라사인에 오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귀신들이 벌린 작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인에 오시면 자신들의 운명이 끝장나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를 치게 하여 배를 뒤집어 엎을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온 천 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온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신데 하찮은 귀신들이 작난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앞길을 감히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귀신들이란 예수님께서 찾아 가시는 그 가련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귀신들이 벌린 작전에서 쉽게 승 리하시고 거라사인에 상육하셨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귀신들린 사람이 달려 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달려 오고 있으나 실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이 달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달려 오면서 부르짖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합니다. 귀신들이 너무나 예수님 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귀신들이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무엇합니까?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데 말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하고서는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잘안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예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합니 다. 요한복음 13:8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고 하자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예수님이 절대로 씻을 수 없다고 말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발을 씻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 귀신들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해놓고는 나는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귀신들은 어떤 자입니까? 한 사람 속에 들어가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속에 2천마리의 귀신들이 이 한 사람 속에 들어있어 이 사람의 의지를 완전히 제압하고 귀신이 원하는데로 이 사람을 조종했습니다. 이 사람을 벌거벗기고 밤낮 무덤에서나 산에서 늘 고함을 지르게 하며 제 몸을 상하게 합니다.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고 있으며 사람들이 이 사 람을 제어해 보려고 쇠사슬을 채우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랑도 깨뜨려 버립니다. 인간으로서 는 통제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고 귀신이 시키는 말만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는 갈 수 없고 오로지 귀신이 가자고 하는 데로 만 갈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귀신들린 사람들을 치료했습니까?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도 예수님께 데려 가고 싶어도 데려 갈 수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귀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얼마나 말을 많이 햇겠습니까? 예수님께만 데려가면 귀신을 쫓을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런 말을 귀신들린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말은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께 마음으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야만 하는데, 가야만 하는데 갈 수 없었습니다. 귀신들에게 묶여 있기에 그리고 자기 의지까지도 귀신들이 자신을 장악하고 있기에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이 사람이 너무나 불쌍해서 예수님께 데려가기 위해서 쇠사슬로 묶어 데려 가려고 했는데 그 속에 있는 귀신들이 쇠고랑을 끊어버립니다. 고랑을 채워 예수님께 데려 가려고 했는데 그 속에 있는 귀신들이 고랑도 깨뜨렸 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 불쌍한 영혼을 구하시려고 거라사인을 향해 뱃머리를 돌린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거라사인을 향해 나아 가 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불쌍한 영혼에게는 찾아가지 않으면 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죄로 묶인 인간들이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께 찾아 올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 버리시고 인간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을 향해 배를 타고 오실 때에 일어난 그 광풍은 물론 기후 변화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그 바람을 이용한 것은 거라사인을 향해 오시는 예수님을 공격한 것은 이 사람 속에 있던 2천마리나 되는 귀신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귀신 바부랭이들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다니. 그러나 이들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인가 발악을 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한 마디 명령 앞에 여지 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향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바람과 파도의 배후에 있는 귀신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라사인에 상륙하자 말자 멀리서 귀신들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릅 끓어 빕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때가 되기 전에 우리를 무저갱에 가두시기 위해 오셨느 냐고 하면서 무저갱으로 빠뜨리지도 마시고 이 지방에서도 자신들을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합니다. 귀신들도 자신들이 지옥에 들어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과 함께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발광을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귀신들이 분명히 무저갱, 지옥으로 들어갈 것을 알고 자신 스스로 발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귀신들을 따라 가는 사람들을 볼 때에 참으로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디어 귀신들의 속박에서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에게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고 자신의 이름은 군대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은 수가 많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을 그냥 내 쫓지 마시고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랬더니 산기슭에서 풀을 뜯던 돼지 떼 2천마리가 바다를 향해 돌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할 것은 어떻게 그 한 사람 때문에 돼지 이천마리를 죽게 하셨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한 사람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돼지에게 아니라 그냥 쫓아 버리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본래 귀신들은 사람 속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이유는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을 제어 해서 말도할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데로 그 사람을 통해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속에 있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냥 내 쫓으면 그 사람 속에 다시 들어오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귀신의 요구대로 동물 속에 들어가면 자기 들이 요구한데로 주님이 들어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얼씬도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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