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35년 간의 꿈 이야기

 

나에게는 평생에 나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두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35년 동안 꾸는 일년의 특이한 꿈입니다. 다른 하나는 40여년 동안 부르짖는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하는 기도입니다. 먼저 꿈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990년 쯤에 어떤 여전도사님을 통해 예언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8년 동안 특별훈련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특히 무슨 훈련을 시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훈련을 받고 있었던가 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시험을 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산수 시험을 치는데 계산이 안되어 열 손가락, 열 발가락까지 동원하여 끙끙거리며 산수 시험을 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데 헛발질만하고 한번도 제대로 공을 차지 못해 답답해하는 꿈이었습니다. 이번에 오는 공은 잘 차리라고 정신을 차리고 찼는데 역시 헛발질 등등.  시험 시간에 시험지를 놓고 쩔쩔매는 꿈, 빵점 맞은 시험지 답안…….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중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열등생을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백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의 상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험 때마다 10점, 빵점 등 그런 꿈을 꿀 때마다 곤혹스러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에 다니는 꿈도 마찬가 지였습니다. … 그런데도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더욱더 엉망 진창이었습니다. 학과목의 교과서도 가지지 않고, 시험 날짜도 알지 못하고, 시험 준비도 없이 시험장에 들어가고, 시험장소를 찾지 못해 쩔쩔매고 다니고, 시험지를 받아 놓고 하나도 답을 쓰지 못해 낭패스러워하고, … 그 학기의 공부 스케줄도 모르고, 무슨 요일에 무슨 시간에 무슨 수업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해 허둥지둥하곤 합니다.

35년 동안 연속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요즘 와서는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꿈을 꿉니다. 꿈에서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꿈에서 인지 아니면 비몽사몽인지 생각하기를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대학을 다니고 있는가 하고 답답해 한 적이 많습니다. 새학기가 시작되었는데 등록을 해야 하는데 다른 학생들은 등록을 마쳤는데 나만은 아직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 이번 학기는 꼭 매주 매일 학교 수업 일정을 알아야 하겠는데 교무부에 가서 등록도 하고 학사과정도 알아야 하는데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꿈에는 친구가 내게 한 학기 수업일정을 적은 종이를 주었습니다. 그것을 카피 머신으로 카피를 할까 해서 카피 머신을 찾아도 없어 손으로 베껴야 할지 하다가 꿈을 깨었습니다. 2024년까지도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학교 파킹장에 파킹을 했는데 공부를 끝내고 자동차를 타려고 왔는데 파킹한 그 장소에 차가 없어졌습니다. 그 차를 찾아 이곳 저곳 찾아 다니다가 바디삽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디 삽에서는 그 차가 언제 수리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밤에 잠잘 때에 거의 꿈을 꾸지 않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아침에 일어나고 혹시 소변을 보기 위해 한 두번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데 한달에 한 두번, 일년에 한번 이런 형식으로 이런 학교에 대한 꿈을 35년 동안 꾸어 왔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시는 훈련과정을 꿈으로 보여 주셨구나 생각이 듭니다. 요즘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세우신 것은 책을 쓰게 하시기 위해서 였구나 깨닫습니다. 왜 학교입니까? 왜 공부를 하는 꿈입니까?

하나님께서 엘파소에서는 기도, 금식, 성경읽기(1백독 이상), 그랜드종합주석책 한 질을 완독하게 하셔서 영적인 훈련을 하시고 이제 엘파소 교회를 떠나게 하시면서 지적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 때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8년째가 되었습니다. 8년 훈련하신다 했는데 내게 무슨 일이 일어 날 것이며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7년 까지는 성도님들이 어린양같이 순하고 잘 따랐는데 1998년 초부터 성도님들이 억세지고 염소 같이 뿔로 받고 하더니 어느 주일날 제직회를 하는데 집사님들이 내가 떠나가 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고 실망스러워 제직회 자리에서 땅에 굴며 엉엉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떠날 수는 없고 준비를 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갈 곳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기에 떠날 준비하는 기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다 떠날 때가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나를 떠나게 하시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떠날 수 없을 태니까요. 그러나 나는 내가 진짜 하나님 종인가 항상 생각하던 자이기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 섭섭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려 먹고는 이제 쓸데없다고 버리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이들과 아내를 한국의 동생에게 보내고 나도 6개월 후에 짐을 싸서 한 방에 쌓아 놓고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한달을 지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정착할 돈을 1만불 주어  LA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목사 노릇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북미주 대륙횡단을 하기로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LA에서 오래곤 주, 워싱톤 주로 해서 캐나다 국경 넘어 캐나다 서부 주들인 부루티 시 콜롬비아의 밴쿠버를 들려 록키산맥을 넘어 알버타 주, 사스카치완 주, 마니토바 주, 온타리오 주로 해서 캐나다 몇 개 주를 지나 토론토에 도착해서 누나를 만나고 친구들을 만난 후 다시 시카코, 뉴욕, 플로리다 마이에미, 미국 최 남단인 키웨스트를 둘러보고, 루이지애나 주, 택사스 주의 본래 목회지였던 엘파소에 도착해서 이삿짐을 챙겨 LA로 오는 동안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되고 다시 주의 일할 마음이 생겨 어떤 교회 부목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엘파소 교회 성도 중에 LA로 이사 간 성도가 엘에이에서 살다가 달라스로 이사 가게 되어 자기가 살던 아파트를 우리에게 물려 주게 되어 여행 중에 거처도 정해저서 LA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13,000 마일, 한달 이상 기간 동안이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낙제 점수 받는 종이지만 훈련받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다른 차원의 사역을 위해 옮기셨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증언 상하권을 출판할 때에 깨닫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종말을 외치는 종으로 쓰시기 위해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셨 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엘파소에서는 영적훈련을 시키셨고 엘에이에서는 지적 훈련을 시켜셨습니다. 일반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셨습니다. 제 요한계시록 증언은 1세기 사람인 사도 요한께서 환상 중에 21세기 문명을 보고 1세기 문명식으로 기록한 것을 21세기 사람들이 보고 연구하도록 하게 하신 것이 요한 계시록인 것입니다. 문명이기에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과학, 전쟁, 기후, 환경 등등의 책들을 읽게 했습니다. 부목사로 15년 동안 사역하는 동안 10여년간 1천권 이상의 책들을 읽게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8년 훈련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 가서 관계자들을 만나고 강의도 들어 보고 입학하겠다고 하니 토풀 점수 85%이상 받아야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토풀 공부를 하여 8개월쯤 89% 성적이 나와 보냈더니 입학허가증을 보내 주었습니다. 웨스터민스터 대학교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공부를 하게 되면 생활비가 필요하기에 아내가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 생업을 하고 나는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간호사 자격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엘에이 남가주 간호협회가 주최하는 간호사 시험 준비반에서 공부하다가 추운 기후 때문에 가벼운 스트로크에 걸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입학허가는 받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직접 가르치시고 훈련하셨는데 신학교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어떤 해에 금식기도원에 갔었는데 그 기도원 원장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김목사는 말씀이 너무 전문적이고 깊어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고 평범하게 쉽게 말씀을 전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 전에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고자 하는 방식대로 행하여야지, 인간방식, 내 욕망으로 사역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불러 쓰시는 두 부류의 종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직접 훈련하셔서 세우시고 쓰시는 종들입니다. 모세, 엘리야 , 바울사도, 요셉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맨토에게 맡겨 훈련시키시고 세워서 쓰시는 경우입니다. 여호수아, 엘리사, 엘리야와 엘리사의 선지자들의 선지학교 학생들, 누가, 열두 사도들입니다. 제 경우는 하나님이 직접 훈련시키시는 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   40년 동안,  65세까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하나님께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 하고 질문했었습니다. 그 질문이 지금 생각해 보니 65세 정도에서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증언 책을 출판하면서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10년 동안 도망치던 나를 불러 목사로 세우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을 책으로 출판하도록 부르셨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4년 6월 8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하이웨이 91번 서쪽 방향으로 운전을 하다가 어이없게도 차사고를 당했는데 폐차가 되고 말았습니다. 몸도 조금 다쳤습니다. 몸이 회복되자 8월 17일 토요일부터 일주일 간 하루 8시간씩 기도하며 금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금식하는 이유가 항상 몸이 둔하다고 느낄 때에 영을 맑게 하기 위해 금식해왔습니다. 40일 금식, 두번의 21일 금식의 동기가 영을 맑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단지 그 이유 하나였습니다. 이번에도 영을 맑게 하기 위해 금식하는데 이제까지 금식할 때는 금식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금식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금식할 때에 기도는 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식이 목적이 아니고 기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8시간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금식이 힘들지 않았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풋삽 20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네권의 책을 쓰는 것과 나의 인생 여정을 쓰는 것입니다. 첫번째 책은 천년왕국의 실체이며, 둘째는 요한계시록 강해와 셋째는 오 주여, 사람이 무엇이 관대이며, 넷째는 사우디 아라비 아에서 발견된 시내산이었습니다.

금식을 마친 후 둘째 날부터 천년왕국의 실체를 쓰기 시작하여 두달 만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10월 달에 6400마일을 운전하여 여행을 했는데 이 차를 폐차케 하신 것은 더 이상 돌아다니지 말고 글을 쓰라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이런 경우가 전에도 한 번 있었습니다. 3종경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전거 연습하느라 엘에이 강뚝길을 따라 하루에 80마일 이상씩 달릴 때였습니다. 얼마 후 그렇게 튼튼하던 자전거 바퀴가 자꾸만 펑크가 납니다. 어떤 때는 3마일, 5마일을 자전거를 끌며 걸어왔습니다. 어떤 때는 지나가던 다른 바이커가 자신의 타이어 리페어 키트로 내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해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타이어에 펑크가 나므로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않기로 했습니다.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더니 그 때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이 ‘창세기원역사의 비밀과 그 영광’이었습니다. 2달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나의 삶을 뒤돌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책으로 펴내서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계시록 책을 출판할 무렵에 꿈을 꾸는데 내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 갔는데 조금 분위기가 잡힌 상태에 있고, 실험도 하기도하고, 자신감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강의실에 시간이 되었는데도 학생들이 많이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이 들어 오셔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칭찬을 하시는 것입니다. 20여년이 지난 후에 겨우 칭찬 한번 받아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가 그 책출판이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시고,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목회를 할 때에 큰 교회, 많은 성도들을 목회하는 것 보다 책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수십만(40만)의 성도들이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큰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다.

엘파소 교회의 사역은 떠나 보내는 사역이었습니다. 성도들과 정들면 그들은 떠나갑니다. 항상 교인 숫자에 신경을 쓰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때는 전 세계적으로 교회성장이 붐이었습니다. 떠나보내는 사역은 교회성장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사역입니다. 답답했습니다.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철야기도를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나 혼자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교회의자에 밤 새도록 눕지 않고 앉아서 졸다가 다시 깨어 기도하면서 40일을 지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땡깡을 부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0일 철야기도 끝나는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끝내고 강대상 앞에서 기도하는데 장에서 쪼로록 소리를 내면서 무엇인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항문을 압박했습니다. 이상하다 우유도 마시지 않았는데 왠 설사냐 생각하면서 화장실에 갔는 데 피가 쏟아 내렸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아내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잘 보내고 월요일 아침 새벽예배를 마치고 강대상 앞에서 기도하는데 토요일 아침에서와 같이 다시 쪼로록 소리를 내면서 피가 항문으로 내려가 압박하기에 화장실에 갔습니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피가 쏟아져 내리면서 머리가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와서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가면서 방언으로 기도를 했더니 피가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걸어 들어 갔습니다. 그랬더니 멀쩡한 사람이라고 입원을 시켜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여 줬더니 응급실에 입원시켜 주었습니다. 응급환자실에서 사흘동안 있으면서 각종 조사를 받았지만 병원에서는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퇴원시키면서 피가 나면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고통을 당하기만 했지 영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1994년과 1995년에 Vineyard Movement가 한창이었습니다. 나도 저 movement에 동참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리라 결심했습니다. 먼저 에너하임 빈야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은혜를 받았지만 내 심령을 충만케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의 토론토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에 갔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하고 기뻐하는데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런 영적체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의 브나드 목사님 교회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 후에  940마일을 자동차로 달려가 켄사스 시티 그레이스 빈야드 교회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풀로리다의  펜사콜라 순복음 교회들을 찾아다녔는데 그때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 내 마음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 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외면하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를 대하는 하나님의 얼굴의 표정을 보는듯 한데 너무나 무관심하고 싸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곳 저곳 찾아가는 곳마다 점점 실망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너무나 무정하십니다. 마치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처음에 대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처음에 개 취급을 받았 지만 기어코 하나님의 축복을 끌어당겼지만 저는 어느 곳에 가서도 하나님의 따뜻한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자비와 축복을 주시는 것을 목격했지만 저를 대하시는 태도는 너무나 싸늘하게 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집회를 마치고 떠나 올 때 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혹시나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을까 하고 또  여기 저기 찾아 가곤 했습니다 만 최종적으로 다시는 안 가겠다고 결심 했었습니다. 그리고 내 때가 오기까지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기다려야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한번쯤 그런 곳에 가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 만이라도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펜사콜라에 빌 해이먼 목사님이 운영하는 예언자 학교가 있는데 그곳에서 기도를 해주는데  ‘네가 가는 곳에서는 너를 영접도 하지 않을 것이요, 인정도 아니 하리라 그 일로 네가 고통을 당할 것이나 끝까지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꿈에 보트 한 척이 물가에 메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 저곳 싸돌아 다니지 말고 한곳에 머물러 있어라’ 하셔서 그때부터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정적이고 들뜬 기분이 아니고 차분하고 예리한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으로 책을 쓰게 하십니다. 40년간의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기도인 ‘나는 누구입니까’의 해답과 35년간의 나를 이끌어 온 특이한 꿈의 목적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빈야드 성령운동에 대한 한 마디

이 빈야드 운동 때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몰려 올 때였습니다. 한국 성도의 대부분이 장로교인입니다. 장로교 목사님들이 에너하임 빈야드, 토론토 빈야드, 펜사콜라 순복음 교회 집회 등 3백명, 5백명의 장로교 목사님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만큼 영적으로 목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 장로교는 그 당시까지 말씀중심의 성령의 열매를 강조했고 순복음교회는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언급한 갈라디아서와 성령의 은사를 언급한 고린도전서는 한 저자이신 바울사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를 함께 소유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빈야드 성령운동을 통하여 한국의 장로교회가 성령의 체험,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된 것같습니다. 그 일로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빈야드운동의 아쉬운 점은 부흥운동은 회개운동, 회심의 운동이었어야 했는데 이점에 있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체험에 너무 치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께서 그 때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했기에 허락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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