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고 시대

 

(할아버지가 자신의 일생을 손자, 손녀(Darren, Madeline, Annabelle, Dante)들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입니다.)

나, 김준식 목사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돈도 없고 명성도 없는 무명인간이지만 나의 일생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그 의도를 나타내 보이려고 이 이야기를 합니다.

얘들아, 내 일생의 이야기들을 너희에게 들여 줄께,

 

나의 상고 시대

나는 고향인 경남 합천군 합천면 합천리 991번지에서 1948년 음력 1월 2일에 태어났습니다.    내 이름 김준식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金 駿埴 준마준에 진흙식입니다. 이름 뜻은 전쟁마가 마른 진흙 위로 전쟁터를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는 뜻인데 진흙이 항상 마른 상태가 아닐 것입니다. 비가 와서 진창인 진흙 위의 전장터를 향해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9월말의 알라스카 크루즈가 지겨웠다고 합니다. 맨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먹고 멍  때리다가 자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삼 형제들은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의 막내 동생이 우리들을 알라스카 크루즈로 초청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동생과 캐나다에서 온 누나, 그리고 미국에서 간 우리 부부 모두 넷이 식당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제 각기 살았습니다. 형님은 중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났습니다. 진주 중학교, 경남 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로, 누나는 대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났고, 나는 진주에서 진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막내 준호가 엄마와 친척들과 같이 살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서울로 떠나면서 우리 가족은 완전히 대대로 살던 고향 합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윗 어른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각기 어른들에 대해 부분적인 조각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을 뿐 입니다. 내 경우는 아버지가 2살 때에 6.25전쟁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너무 어릴 때에 세상 을 떠나셨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이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나 아버지가 없다는 아쉬움도 전혀 없었습니다. 내 인생에 아버지에 대한 개념 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성경을 보고 교회를 다녔기에 보이지 않고 말도 없으신 하늘 나라의 하나님이 내 아버지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유복자입니다. 그리고 집안 어른들이 우리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알라스카 크루즈 선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와 집안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니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가졌던 그 분들에 대한 부분적인 기억의 퍼즐들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5년제   배제 고보(배제 고등 보통 학교)에 다니셨고 졸업 후 경성 전문 측량 기술학교 5년을 졸업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5년제 배제 고보를 졸업하고 조도전 제국대학을 졸업하셨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법학을 공부하다가 영문학사로 졸업하셨고 대학 졸업 후 삼천포에서 고등 학교 영어 교사로 있었습니다.  고시공부를 해서 고시에 합격하였는데 어느 날 잠자는 동안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짱이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측량기술학교를 졸업 후 측량기술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습니다.

나만 알고 있는 할머니와 할머니 친정,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증조부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에 전도사님이셨던 큰 고모님이 일주 일 금식기도 하시기 위해 기도원에 가실 때에 나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때에 우리 집안 내력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할머니는 그 당시 부유했던 예수 믿는 집안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학자 집안의 가난한 할아버지와 결혼했는데 남편을 예수 믿게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공부하느라 10 년 동안 외지 생활을 했었고, 측량학교 졸업 후에는 측량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병든 시아버지(우리의 증조부)를 모시고 살았는데 할아버지에게 예수 믿으라고 권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병 낫게 해주면 예수 믿겠다고 다짐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에게 배고픈 나그네가 찾아왔습니다. 그 나그네를 친절히 배부르게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가 보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병 낫게 될 비법 을 알려 준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시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3년 동안 흰 옷을 입고 마을 어귀의 공동 우물터에서 새벽에 다른 사람들이 그 우물물을 퍼내기 전에 우물을 퍼서 마시게 하면 병이 낫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그 일을 정성을 다해 수행했고 정말로 시아버지의 병이 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로 인해 할아버지도 약속을 지켜 그렇게 열심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습 니다. 그리고 우리 증조 할아버지도 죽기 전에 예수님 영접하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현재 합천읍 교회 교회당 부지를 할아버지가 기증했다고 합니다.

우리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정성이 지극했습니다. 자신의 살을 떼어줄 정도로 자녀들에게 헌신했고 자녀들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에 중병에 걸렸는데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부산에 있는 독일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데리고가 일년간 외래 환자로 치료받게 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수리에 밝았고 사업수단이 대단했습니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일본 군대 장교로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일본이 전쟁에서 패색이 짙은 때라 곧 해방이 될 텐데, 군에 잡혀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느 날 집에서 전보가 왔습니다. 모친이 세상을 떠나셨기에 장남이요 여자 형제 중 독남인 아들이 와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줄 알고 고향에 갔는데 다행히도 우리 할머니 의 재치 있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부터 해방될 때까지 숨어 지내다가 해방을 맞이 하 게 되었다 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외지에서 돈을 벌어 오면 할머니는 논도 사고 밭도 사고 해서 부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망해서 논밭을 다 잃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합천에 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일본인 관리들이 할아버지가 재산도 있고 지방 유지이기에 협동조합장이 되게 했습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가 보증을 서는 제도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이 협동조합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할아버지도 보증제도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지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현금을 사용해 본 적도 없고, 사업을 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조합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가 다 말아먹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잃은 돈을 할아버지가 다 물어주게 되어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속이 상해 집을 떠나 외지를 다니면서 마음 추스리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어느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오려 시도하다가 할머니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벌써부터 눈치채고 준비하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떠나려는 순간에 뒷덜미를 잡아 챘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에게 떠나지 않아도 될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남편이 모르는 소 백마리 재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소를 몇 마리 사서 가난하고 부지런한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고 송아지를 세 마리를 낳으면 그 어미 소는 농부의 소유가 되게 해서 확보한 소 백마리 라고 했 습니다. 그 소를 팔아 빗도 갚고 논밭도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 중에 세상을 떠나셨고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형제들에게 있는  부모님의 유일한 사진,  사진 속의 아기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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