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신학공부하기 위해 로스 엔젤레스에 왔습니다. 1980년 대에 아주 큰 교회, 아마도 그 당시 에 1000명 이상의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였습니다. 목사님도 훌륭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극적으로 불러 세우셔서 목사가 되게 하시고, 은사도 대단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 때에 제가 그 교회 목사님께 영적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갔을 때의 나의 첫 소감은 이질적이고 겁도 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만 점점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후 나는 미시간 디트로이트, 택사스 엘파소에서 사역하다가 15년 후에 다시 그 교회에 가서 부 목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10월 첫 주부터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 12월 20일 이었습니다. 한 전도사님이 나를 목사님이 찾는다고 해서 불려 갔는데 한 회의실에 모든 사역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갔을 때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내가 들어가자 마자 담임 목사님이 나에게 사역을 그만 두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를 해고시키는 것입니다. 당장 내 소유물을 싸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나가야 하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유인 즉 제 아내가 교회에서 교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받는 사역비가 그 당시 1000 불이었습니다. 아파트 비가 1000불 -1500불입니다. 아내가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또 사모가 아무대나 가서 일할 수도 없었는데 그 교회 권사 님 한 분이 다단계 영양식품을 하는데 그분이 우리를 도와 주겠다며 아내보고 그 일을 하게 했습니다. 아내는 그 교회 온지 1-2개월 되어 아는 교인도 없습니다. 다단계 장사는 사람들을 알고 만나야 하는데 막연했습니다. 또 어떤 가게를 운영하시는 권사님이 아내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그 분의 상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담임목사님 귀에 들어 간 것입니다. 돈 많은 권사님께 붙는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나를 쫓아 내는 것은 해고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쫓겨 나왔습니다. 이제 5일 후면 성탄절인데 해고를 당했으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집에서 암울하게 성탄절을 지내고 12월 26일에 담임목사님께 전화해서 목사님을 뵙겠다고 해서 가까운 맥도날드 식당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 15년간 사역했습니다. 그곳에 사역하는 동안은 지옥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부르짖고 저녁마다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나 죽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살고 싶지 않습니 다 를 우리 말로 하면 안되기에 방언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겠다고 하는 것 보니 아직 덜 죽었구나, 더 죽어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의 사업체나 가정에 심방하던 일도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편인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교회에 사역하기 전에 엘파소 있을 때에 큰 교회 두 군데 목사님께 전화해서 그 교회에서 사역하게 해 달라고 말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잘 아는 분들입니다. 만약 내가 그 교회에 갔다면 열심히 지혜롭게 일하므로 인정받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사 이루실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책을 쓸 환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마다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계시록의 내용을 준비하다 보면 더 깊은 깨달음이 오고 또 전할 때에 더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시록을 연구 하고 전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내가 책을 출판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계시록의 증언 책을 출판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책을 출판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종말을 외치라고 부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은 행정목사를 통해 계시록에 관한 설교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행정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내 설교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내게 설교를 시키지 마시라고 전해라 했습니다. 그 때부터 설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교회 안에서 내 방에만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맡은 일은 International Curriculum이란 교재를 개발하는 업무였습니다. 세계 유명한 목사님들의 강의를 영어로 강의한 것을 각국어로 더빙해서 비데오를 만들고 교재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영어로 강의 한 것을 스페인어로 통역합니다. 이것을 원본으로 하여 스페인말 대신에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등으로 비데오 테입을 만드는 것입니다. 각국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께 보내고 교회 내의 티칭 교재들도 번역하고 개발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로 한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다루어야 했습니다. 이들 언어들의 교재를 정리하기 위해 러시아어의 구조를 조금 알아야 하고, 스페인어를 알아야 하겠기에 책을 사서 스페인어 공 부, 러시아어 공부를 했습니다. 언어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니 일들이 진척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고도 시간이 남기에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 경제, 과학, 기후, 역사 등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책 5권을 한번에 펴 놓고 이 책 읽다가 지겨우면 다른 분야 책을 읽으면 새로운 맛에 심취하게 되어 10년 기간동안 1000권 정도 읽게 되었습니다.
엘파소에서는 성경과 기도와 금식 훈련을 시켰고 로스 엔젤레스에서는 지식훈련을 시켰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종말 때의 문명을 기록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문명이라 하면 모든 것을 망라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책을 읽었는데 하나님은 요한 계시록을 쓰기 위해 나를 몰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엘파소에서 목회사역 할 때 설교한 내 용들과 로스 엔젤레스에서 준비한 것들을 모아 책을 쓸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나는 로스 엔젤레스 교회에서의 사역기간을 감사합니다. 또 그 목사님께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나로 스트레스를 받게 해서 책을 읽게 하셨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시간적으로 여유롭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토랜스에서의 나의 새 교회 개척 시절
그리고 15년째 되는 해에 요한계시록의 증언 상 하권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31 일이 마지막 주일인데 그날부터 내가 그 교회 사역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도들 앞에 세우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성도들이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 지도 모른 체 그 교회에서의 15년 사역이 끝났습니다. 들어갈 때 해고하는 사건에서 나올 때에 소리 없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계시록 책을 출판할 무렵에 꿈을 꾸는데 내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 갔는데 교수님이 들어 오셔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칭찬을 하시는 것입 니다. 20여년이 지난 후에 겨우 칭찬 한번 받아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가 그 책 출판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교회에 나오기 얼마 전부터 하나님께서 제 아내의 수입이 괜찮게 해주셔서 아내의 수입으로 가게 살림을 꾸려가게 하시고 내가 받는 사례금 3천불은 적금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개척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4만불 정도가 되어 아내와 제 혼자서 미국 교회당에 1년간 세 들어 가서 매달 천불 씩 내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나를 돕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이 교회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 교회로 이끌었는데 20명 정도 모았는데 이들이 맹탕이라 뒷 치닥거리 해 주면 떠나고 해서 시간을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일년 리스가 끝난 후에는 개척자금이 다 소진되고 그 교회당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당을 찾던 중 루터교단의 교회가 자신들의 교단에 들어오면 교회당을 무임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겠고 해서 그 교회당으로 들어 가서 다시 시작하게 되고 목회하는 동안 두 권의 책들 즉 창세기 원역사의 비밀과 부활의 신비와 그 영광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권의 다른 책들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설교준비를 할 때에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설교준비를 하고 설교한 후에 교회 웹사이트에 올리고 그리고 책을 출판했습니다.
제가 엘파소 교회에 갔을 때 성도들이 내가 부임하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왜냐 하면 영주권 받고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몇몇 전임자들이 1-2년 하다가 떠나 갔기에 성도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캐나다 시민권자이기에 미국 영주권 없이도 미국에 살수 있습니다. 미국 영주권에 연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오래 오래 있을 것이니 의심,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그 약속을 지켰고 성도들이 나를 싫어 해서 쫓아 냈기에 그 교회에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떠나 올 때에 교회의 재정이 바닥나서 제게 천불 정도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웃 교회 성도님 한 분이 이천불을 주셔서 이사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나는 목회할 때에 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다 보상해주셨습니다.
사택을 사기 전에 전세 낸 사택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 집을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그 일로 교회에 가까운 사택을 구입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많아서 교실이 없어 어떤 반은 화장실 공간에서 성경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친교시간을 가질 공간이 필요해서 교육관을 이어 달기로 하고 추진했습니다. 한국의 동생이 건축기금 5천불을 보내 주어서 그것과 함께 내가 200불, 4백불 받는 사례비 전부를 내어 만 불을 채워 냈고, 많은 성도들이 합심해서 9만불을 들여 빚 없이 건축했습니다. 봄철과 가을 철에는 사택과 교회당 지붕에 올라가 6개 되는 수동식 에어컨 가동 준비를 하고, 남녀 화장실에 고장이나면 내가 다고치고, 교회의 5에이커 큰 뒷마당 잔디를 깎기 위해 남편 성도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교회 재정을 위해 교회당 뒷 뜰에 채소밭을 가꾸기도 하고, 고사리를 채집해 교회 재정에 보태고, 교회 잡일에 시간을 낭비하면서 목사가 이렇게 헛되게 시간을 보내야 하냐고 내 스스로에게 항상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목회하면서 15여년 동안 내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내가 주님의 참 종인 것 맞나? 내가 주님 앞에 잘하고 있나, 내가 가짜 종이 아닌가? 내가 정말 하나님의 부름 받은 목사인가, 아니면 목사 안되겠다고 10년 동안 도망치면서 세상에서 이것 저것 하다가 할 짓이 없어 할 수 없이 목사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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