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창세기5:1-32
우리가 창세기 5장에서 아벨의 후예들의 가계를 볼 때에969세를 향수한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한 므두셀라를 봅니다. 저는 성경에서 므두셀라를 대할 때마다 969 년 동안 무엇을 하면 서 살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듣기로는 앞으로 과학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120살까지 된다 하는데 120년 동안 살아 무엇하겠는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120년 동안 살게 된 다면 무엇하고 살겠습니까? 우리 중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문 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큰 복이긴 한데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므두셀라의 생애와 그의 사명을 통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어떤 인물입니까?
므두셀라는 아버지 에녹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철저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모습과 죽지 않고 하 늘나라로 들림받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버지 에녹으로부터 므두셀라 자신의 출생이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와 연관된 생애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일생의 삶의 목표와 사명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 후에 이땅이 물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의 전 생애는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하나님께서 이땅을 심판하시리라.’는 멧세지 를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하 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판을 대비하라는 말을 전하면서 자신은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사전에서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을 찾아 보았습니다. ‘창의 사람’, ‘던지는 무기’, 투창, 식물, 칼, 무기, 기본어근으로 보내 버리다(이것은 수많은 경우에 적용된다함), 도중에 가져가다, (멀리, 밖으로) 인도하다, 되버리라, 주다 (포기하다), 남겨두다, 떼어 놓다, 가게하 다, 보내다, 내던지다 등 여러가지 많은 뜻이 있어 바로 이것이다라는 뜻을 잡을 수는 없었지 만 내 설교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보내버리다’라는 뜻을 골라 봤습니다. 무엇 을 보내 버린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을 보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보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보내고 새 시대가 올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죽고나면 이 세상에 큰물이 임하고 이세상을 물로 심판하여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여 죽음으로 보내버리고 새 시대가 올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봤습니다. 특히 에녹이 그의 아들 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을 때 의미한 바는 이 아들을 떠나 보내면 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가 포함되지 않았을까요? ‘므두셀라’라는 의미가 이 사람을 놓치 면 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사람을 떠나 보내면 이 세상에 큰물이 임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므두셀라라고 이름 지어졌다면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만 으로 종말에 관한 멧세지를 듣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969년이라는 므두셀라의 길고 먼 생애는 예언적 삶이었으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 이었습니다. 그의 길고 먼 삶은 보람된 삶이었으며 꼭 오래동안 살아야만 했던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책이나 문자가 없었으므로 입으로 전해야만 했을 것입니 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사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물심판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더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 세상에 물심판이 없습니다. 므두셀라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 원인입니다. 므두셀라의 삶은 이 세상의 존재 이유입니다. 성도가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사 라지면 이 세상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산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더 구원의 멧세지를 전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구원받 은 성도가 사는 의미는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서 예수믿어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 므두셀라, 라멕 ,노아에 이르는 물심판의 예고
u 라멕
므두셀라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명이 무엇이었나를 분명히 깨닫고 그 사명수행 에 충실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 라멕이 아들을 낳아 노아라고 이름을 지었는데서 알 수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는 뜻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아버 지의 사명과 그의 증거를 철저히 믿고 바라며 행하던 사람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가 아버지 에녹에게 받은 예언에 따른 그의 생애의 목적과 사명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의 사명적 삶이 아들에게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 라 는 이름을 되새겨 봅시다. 창세기 5:29에,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고 했습니다
라멕 역시 예언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멕은 예언적인 삶을 살았던 것 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은 것을 보면 아들 노아에게서 어떤 운명적인 요소를 보았던 것입니다.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 들이 안위한다는 말은 이 세상의 삶의 고통에서 구원한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라멕은 노아에 게서 구세주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조 상 아담에게 들려주셨던, 온 인류의 소망이신 창세기 3:15의 하나님의 언약의 여인의 후손 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아라 이름 지었지만 노아가 창세기 3:15이 의미 하는 메시야는 아니었지만 메시야적인 사명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물심판으 로 인한 멸망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구원의 방주를 지었기 때문 입니다.
v 노아
예수님의 마태복음 24의 종말에 관한 예언과 사도요한의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 세상이 앞으로 불심판을 받을 것에 대한 예언이 2천년 동안 경고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노아시대의 물심판에 대한 예고가 단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 노아 에게 계시하셔서 방주를 짓게 하시고 노아가 방주 짓던 120년 기간 동안만이 노아시대의 물심판에대한 경고기간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에녹에서부터 노아에 이르는 1000년의 기간 동안 물심판을 예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불심판 2천년, 물심판을 천년동안 예고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현 세상에 정을 두지말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므로 영원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되도록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불심판이나 물심판이 당대에 이르지 않은 세대의 사 람들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고 의롭게 살고저 할 것 이요, 노아시대와 같이 그 심판이 임박한 세대에 살던 사람들은 심판에 대한 예고를 들으므 로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노아의 방주(교회)에 들어와 구원을 받게 함인 것입니다.
w 므두셀라의 죽음과 노아 홍수와의 관계
노아는 아담이 죽은 지 126년 후에 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노아 홍수가 나기 786년 전에 별세했습니다. 그리고 노아 출생시의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의 연세는 369세 였 습니다 (187+182). 므두셀라가 손자인 노아의 출생을 보면서 하나님의 물심판 사건이 극히 가 까웠음을 예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의 아버지 라멕이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하고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 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했을 때에 할아버지 므두셀라도 그 옆에 있었을 것입 니다. 그리고 노아 500세에 므두셀라 869세(369+500)였습니다. 노아가 500세에 큰 아들 셈이 출생했고 창세기 6:3에 의하면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홍수에 대한 계시를 받은 때가
480세 였습니다.(600-120) 그리고 창세기 7:6에 노아의600세에 이 땅에 홍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아 600세에 아버지 라멕은 782세(600+182)가 되는셈인데 이 말은 라멕은 노아 홍수가 있 기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라멕은 777세에 별세 했습니다 .) 그리고 중요한 것 은 노아의 나이 600세에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나이가 969세 였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7:6 절에 노아 600세에 홍수가 있었다고 했는데 창세기 7:4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 기를 지금부터 7 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 어버리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7:10에서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 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주야 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7:4에 7일 후라고 한 그 날은 노아 600세 되던 해의 2월 17일 이며, 7일 후에 비가 내리리라는 계시를 받은 날은 2월 10일입니다. 노아의 생일은 노아의 600세 되던 해의 1월 1일에서 2월 16일 이전이었을 것입 니다. 그래야만 노아의 나이가 600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므두셀라의 생일과 노아의 생일이 비슷한 날짜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두 사람의 생일이 1월 1일에서 2월 10일 안에 있으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7:10에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의 2월 17 일에 비가 오 기 시작했고 노아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갔었는데 므두셀라는 언제 세상을 떠났겠는가 하는 문 제입니다. 아마도 창7:4에서 앞으로 7일 후면이라고 해서 홍수가 시작 되는 날에 대한 힌트 를 주신 것은 므두셀라가 이날에 세상을 떠났거나 아니면 이날이 므두셀라의 시체를 장사 지 내는 날이 아니었나 (?) 추측해 봅니다.
비가 오기 일 주일 전에 므두셀라가 세상을 떠남으로 노아와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 금, 아니 므두셀라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만이라도 홍수가 시작될 시기가 7일로 임 박했으니 므두셀라 생애 969년 동안의 홍수 예고를 상기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 주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 중에 노아 가족 외에는 한 사람도 듣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III. 아담과 노아에 이르는 계보
구분
이름
|
아들을 낳은 때의 연세 |
그때의 아담의 연세 |
아들의 이름 |
생애의 향수 |
비고 |
아담 | 130 | 130 | 셋 | 930 | |
셋 | 105 | 235 | 에노스 | 912 | |
에노스 | 90 | 325 | 게난 | 905 | |
게난 | 70 | 395 | 마할랄렐 | 910 | |
마할랄렐 | 65 | 460 | 야렛 | 895 | |
야렛 | 162 | 622 | 에녹 | 962 | |
에녹 | 65 | 687 | 므두셀라 | 365 | |
므두셀라 | 187 | 874 | 라멕 | 969 | |
라멕 | 182 | 1056 | 노아 | 777 | |
노아 | 500 | 셈,함,야벳 | 950 | 600세에 홍수 | |
아담 세상 나이 1세에서 노아 600세 되어 홍수 나기 까지의 년 수들의 합계 1,656년 | |||||
노아
|
노아600에는 아버지 라멕은 벌써 별세, 므두셀라의 나이 969세, 노아 600세 의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위의 모든 사람들은 소천되었음. 라멕나이 56세 때에 아담나이 930, 아담 별세 |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았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의 물심판을 에녹에서부터 시작해 1000 년 동안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예고했을 뿐만아니라 노아 600세 되던 해, 므두셀라가 죽은 2월 10일의 므두셀라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셨 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노아의 식구 8명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18:8 에, ‘…. 그러 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시니라.’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3:23,24 에,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 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했 습니다. 이 말씀에서 제자들의 질문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구 원받을 자가 적습니까하고 물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구원받을 자가 많습니까라고 왜 묻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제자들이 이 질문을 했을 때의 분위기가 구원받을 자들이 그렇게 많 지 않을 것이라는 대화의 분위기였을 것이라 추적해 봅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도 제자들의 질문에 분명하게 ‘그렇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빙둘러서 표 현하시기는 했지만 말씀의 핵심은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구원받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신앙 삶 이 현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기는 하 지만 좁은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든지 혹은 들어가기를 포기해 버리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세 현상에 대해 누가복음 17:26-27에서,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 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에서 주님 말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 가 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았던 것을 봅니다. 그러니 므두셀라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신 경을 곤두세움으로 홍수심판과 같은 예고의 말씀이 귀에 들릴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대 사람들이여, 요한계시록의 경고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 에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으다.’
베드로후서3:4-6에,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 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 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 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 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 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
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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