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이전의 언어, 한국어

창세기 11:1-7

첫째로 언어의 기원과 혼잡

 

창세기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했는데 공동번역에서는‘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로 번역합니다. 말하자면 말만 있은 것이 아니라 문자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영어번역본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에서는‘Now the whole earth used the same language and the same words’라 해서 말과 문자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에서는‘There was a time when the entire earth spoke a common language with an identical vocabulary.’했는데 Orthodox Jewish English Bible;에서는‘And the kol Ha Aretz was of one language and of devarim achadim (common words).’라고 하여 말과 문자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언어’라고 한 것은 히브리어로 ‘사파’인데 영어로는 language 즉 말(언어) 을 말합니다. 우리 말로 ‘말’이라고 한 것은 히브리어로 ‘다바르’인데 영어로 speech (혹은 Words, 혹은 vocabulary)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자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말할 수 있는 능력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글자를 주셨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서로 통할 수 있는 말을 주셨고 문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주신 말과 문자는 정확한 것이었는데 바벨탑 사건 이후에 말이 혼란 해지면서 인간들이 산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말도 달라지고 문자도 달라졌습니다. 홍수 이전 인 간역사 2000 여 년까지는 온 인류에게 말도 하나요 문자도 하나이었는데 홍수 이후에는 말이 바뀌면서 인류가 서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흩어져 가는 각 인종그룹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말을 가지고 나가기는 했지만 문자는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글자들이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고대문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상형문자 같은 원시적 문자를 발명한 것을 후대 언어학자들이 긴 세월 동안에 발전해서 만들 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0:1, 5을 보면 셈 함 야벳의 자손들이 언어에 따라 종족 별로 지면에 흩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족 별로 흩어지지만 하나님께서 가족 내 에서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간에는 흩어지게 하지 않았음을 봅니다.

둘째로 한국어의 계통과 한민족의 기원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어는 좀처럼 그 기원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한 것이라는 가설은 세웠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확정지을 단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어의 계통을 밝히기 위해 한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 보아야만 한국어의 기원과 계통이 어느 정도 밝혀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종래에는 한민족을 퉁구스족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 중에서도 만주 지방의 남방 퉁구스족의 한 지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습니다. 그러나 김정학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한국 민족은 체질, 언어, 문화 등에 있어서 북방 민족의 요소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북 방 민족 중에도 알타이어족에 가장 가까운 것을 보여 준다. 과거에 한국 민족을 막연히 퉁구스 족이 라고 일컫는 학자들이 있었다. 한국민족이 퉁구스 족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사실이다. 또 언어에 있어서도 한국어는 만주, 퉁구스어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 민족과 퉁구스 족 은 오래 동안 독립된 생활을 하여 왔으므로 한국 민족은 알타이어족 중에서 터기 족, 몽골족, 퉁구족 등과 병립하여 하나의 민족 단위를 이루는 것을 볼 것이다’(김정학. 1964년, ‘한국민족형성사’, 한국 문화사대계 1, 고대민족 연구소, p354-355).

그리고 김원룡은 다음과 같이 한국민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민족은 몽골, 퉁구스 종(種)에 속하면서 두골 장경이 짧은 데서 오는 단안(短顔)과 그리고 이 공과 두정, 즉 안고가 높은 고안 등의 특색을 갖추고 있어서 문자 그대로 민족의 개성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것은 말을 바꾸면 인종적 고립, 또는 퉁구스 전통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김원룡, 1976, 한국 문화의 기원, 탐구신서 p9-10).

한국 민족은 인종적 고립이 아주 일찍 이루어진 독립된 하나의 종족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정배도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퉁구스 족은 한국 민족의 형성과 동시에 구분된 별개의 존재이며, 상호 간에 가장 접촉이 활발하였다 하여도 양자를 동일 선상에 올려 놓을 만큼 역사적으로 분리할 수 있 으므로 퉁구스 족과 대등의 위치에 한국 민족의 단위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알타이어족을 이루는 주요 언어인 터키어와 몽골어 사이의 유사관계가 많은 부분 어휘차용에 근거하는 등 알타이어족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유사점을 발견하기 어렵고, 결정적으로 기초 어휘의 일치 및 음운대응규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립된 언어 내지는 한국어족으로 보고 있다.

한국어가 몽골어, 퉁구스어, 터키어 등과 함께 알타이어족과  같은 속성들

  1. 모음조화가 존재한다.
  2. 용언에 굴절이 있는 교착어이다.
  3. 주어, 목적어, 동사의 어순을 가지는 S-O-V 어순의 언어이다.
  4. 어두에 특정 자음이 쓰이지 않는 두음법칙이 존재한다.
  5. 모음교체, 자음교체, 문법적 성(性), 어두자음군이 없다.
  6. 관계대명사와 접속사가 없고 접속사의 결여를 보충하기 위해 부동사를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이 가지는 전형적인 특성 외에 다른 특성을 공유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어가 조기에 알타이조어에서 분리되었다는 가설을 성립하게 합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임을 부정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알타이 제어에는 기초 어휘인 신체 지칭이나 친족 명칭어가 유사한 것이 거의 없다.
  2. 기초 어휘로서 대명사 일부만이 유사하고, 수사가 거의 다르다.
  3. 음운대응의 규칙성이 정확하지 못하고, 믿을만한 것이 부족하다.
  4. 알타이 제어의 언어 구조는 매우 유사하지만, 차용어를 제외하면 공통된 요소가 매우 적다.
  5. 문법 요소의 일부 유사성으로는 알타이 제어의 친근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밀접한 접촉을 했고, 서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결과, 언어구조가 유사해졌고, 차용어로 인하여 공통요소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임을 부정하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음운대응의 규칙성의 부족이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의 음운대응 관계가 적게 밝혀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모음의 대응은 매우 불규칙하다. 하지만 자음 중에서는 몇 가지 밝혀진 대응관계가 있다.

한국 민족은 인종적 독립이 매우 일찍 형성된 종족이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 단위를 별도로 설정해 야 한다는 것에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어는 그 기원이 독립적이면서도 아주 오래된 언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어가 알타이 어족의 계통으로 분류 되면서도 알타이어와의 친족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좀처럼 그 기원의 형체가 분명치 않은 이유인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한국어가 에덴에서 기원된 지상 최초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기원과 한국어에 대한 학자들의 이와 같은 견해는 성경에 근거한 한국인의 선조가 욕단이 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 해주는 것입니다. 대홍수 이후 생존자들은 아라랏산에서 출발하여 곧장 바벨론 평지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먼저 동쪽(중앙 아시아 인접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어느 시점에서 서쪽으로 옮겨 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욕단의 가계는 서부로 향하는 무리와 함께 행하지 않고 동방으로 그대로 이동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서부로 향하여 가는 무리들과 일찍 분리하여 ‘메사와 스발’을 향하여 더 동쪽으로 이동했었던 것입니다. 욕단족속은 바벨탑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그 때에 있었던 언어 혼란상태를 경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벨탑 언어혼란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 분산이 발생하기 전에 극동으로 이동해 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민족은 당연히 인종적 고립이 일찍 형성되었고, 한국어 또한 그 기원이 독립적이면서도 가장 오래된 언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학자들이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어가 좀처럼 그 기원의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한국어는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서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 인간에게 주신 오리지널 언어인 것입니다. 학자들은 알타이 계통의 언어들인 몽골어, 터키어, 만주, 퉁구스어는 매우 밀접한 친족관계에 있으며 이것들은 공통 조어(proto language)에 거의 같 은 시기에 분화되었다고 추정하는 반면, 한국어는 알타이 조어에서 제일 먼저 분리된 언어로 보고 있습니다. 즉 학자들이 내린 결론의 한국어는 다른 어떤 언어보다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진 언어라는 것입니다.

한국어의 독특성, 즉 다른 언어와의 친족관계가 분명치 않고 다른 어떤 언어보다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진 언어라는 것은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모 든 인류가 홍수 이전 2000년 동안 같은 언어와 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언어는 노아와 셈과 함과 야벳에 의해 홍수 후 세계로 전해졌는데 바벨론에서 언어의 혼잡이 있기 전까지 100여년 동안 사용되었습니다. 바벨탑운동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대적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 언어혼잡은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바벨탑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흩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탑 운동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까지 혼잡하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미 바벨탑 사건에서 분리되어 동양으로의 이주 경로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노아가 가르친 언어를 계 속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어가 다른 어떤 언어와도 친족 관계가 분명치 않은 역사적 원인이며, 그 기원의 형체도 명확하지 않은 근본적 이유인 것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한국인의 기원으로 볼 때에 한국어는 어떤 최초의 언어(Proto language)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지상 최초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언어가 후일 알타이어 계들에게 워낙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오늘날 한국어가 알타이 어족 계통의 언어로 추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알타이 계통의 언어들인 만주어, 퉁구스어, 몽골어와 터키어 등이 한국어와 공통 특질 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로 한국어까지도 알타이조어에서 분리된 언어처럼 오해 받게 된 것입니다. 한국어는 알타이어 단일체에서 분화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 볼 때에 한국어의 기원은 에덴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알타이어 계가 한국어에서 분화되어 나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한국어가 바벨탑 이전 지상의 최초의 언어인 증거들

우리 알이랑 민족의 언어가 홍수 이전 최초의 인류가계로부터 내려 온 지상 최초의 언어라는 사실은 아래와 같은 다양한 증거들이 입증합니다.

첫째로 풍부한 말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인류에게 주셨던 최초의 언어는 모든 소리를 흉내 내기에 가장 우수한 말이었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어이기에 완 벽한 언어인 것입니다. 한국어는 말소리가 풍부하고 음성학적으로 뛰어나서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또 어떤 사물의 소리든 자유자재로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어가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서 원래 풍부한 음운을 가진 언어이고 음성학적으로 뛰어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뉴욕주립대학교 교수(음성학/한국학)인 김석연 박사는 1446년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을 토대로 전 세계의 말(방언)을 하나의 표기체제로 음역할 수 있는 누리글(Global Writing system)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말을 간단히 표기할 수 있는 이 누리글은 문맹퇴치는 물론 복음의 도구로 대 단한 활용 가치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무 문자 종족과 문자가 있어도 너무 어려워 사용하지 못하는 난 문자 종족은 전 세계 4,600여 종족이 있습니다. 이른 종족들에게 누리글로 그들의 방언을 음역해주고 그 들의 방언으로 음역된 누리글 성경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복음화를 크게 앞당기는 길인 것입니다. 국제 예수전도단과 열방대학에서는 2003년 7월 11일 ‘지상명령 수행을 위한 읽기 쓰기 프로젝트’로 누리글을 채택했습니다. 김석연박사는 이미 국제누리글 선교센터’를 설립해 성경 음역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욕단계 선민 한국 백성이 마지막 대추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500년전에 세종대왕을 통해 아주 놀라운 글을 은사로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천부(天符)의 음(音)입니다. 음은 초성(初聲)에서 시작하여 종성(終聲)으로 끝납니다. 한국어는 종성이 가장 발달된 언어입니다. 일본어나 지나어는 원칙적으로 종성이 없는 언어입니다. 그 래서 일본인은 트럭을 도라꾸, 택시를 타꾸시, 맥도날드를 매그도나드, 김치를 기무치, 게임을 께이 무 라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국 (國)을 꾸어, 칠(七)을 치, 답(答)을 다 라고 합니다. 국에서 ‘ㄱ’을 칠에서 ‘ㄹ’을 답에서 ‘ㅂ’을 혀로 돌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한꾸어, 출발을 추바, 답변을 다비엔이라고 발음합니다. 종성이 발달되지 못한 언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언어에서도 종성을 가진 언어가 많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초성이 19자, 중성이 21자, 종성이 28자로 이처럼 종성이 발달된 언어는 일찍이 인류가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어는 초성과 중성과 종성이 합하여 11,172개의 문자를 만들 수 있으며, 이것들이 결합하여 20만개 이상이나 되는 어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어를 다 표기할수 있게 하기위해서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창제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사용하던 한자로는 한국어를 소리나는 대로 다 표기할 수 없었기에 한자 대신에 한글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한국어와 한글이 한자와 오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자도 함께 아울러 사용해야 합니다. 한자는 우리의 고유한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사용하는 간체자가 아닌 정체자를 사용해야 합니다. 정체자는 우리 고래로 사용하는 표의문자입니다. 간체자는 중국공산당 모택동이 조작한 것으로 한자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글자를 간단하게 만던 한자입니다. 이 간체자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중국인들은 불평하고 걱정합니다. 의미 없는 간체자를 사용하느니 차라리 영어를 대용하든지 아니면 한글을 빌려쓰는게 나을 것입니다.  이 간체자 한자는 漢字이고 정체자는 韓字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문화발달이론에 비추어 볼 때에도 이와 같이 월등하게 종성이 발달된 한국어는 그 기원이 가장 깊은 언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국어는 초성과 중성의 조직적인 음의 배합만으로 충분히 음을 만들 수가 있어 언어생활을 능히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다시 종성의 결합을 가져왔고 그 종성이 초성이나 중성보다 더 발달된 지극히 과학적인 질서와 조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어의 이러한 특징은 그 기원이 가장 오래된 언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겨레의 인종적 독립과 민족형성이 그만큼 오래 된 종족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셋째로 고상하고 격조 높은 한국어 입니다. 한국어는 높임말이 세계 최고로 발달된 격조 높은 언어입니다. ‘나에게 말해라’는 말을 예로 든다면 영어로는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왕에게나 하나님께 나 ‘Tell me’입니다.  말에 애들이나 어른에게나 위 아래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는 외국인에게는 복잡해서 배우기가 어렵겠지만 아이에게는 ‘말해라’ 어른에게는 ‘말씀하세요’, 왕에게는 ‘말씀하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어가 굉장히 고상한 언어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열방 방언들 가운데 이렇게 한국어처럼 격조 높은 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 하와에게 주신 언어요 바벨탑 사건 이전에 주신 언어는 바벨탑 사건 이후에 생긴 수 많은 새로운 언어들보다 월등이 고상하고 품위 있는 언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덕적인 분이시고 고상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높임말이 최고로 발달된 한국어는 에덴에서부터 내려온 바벨탑 이전의 언어임이 명백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말씀’ 언(言)자가 입증합니다.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초의 말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 씀 언(言)자가 신기한 말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말씀이라는 말이 있으나 다른 나라에는 없습니다. 말씀이라는 말은 ‘말’의 존칭어입니다. 아니, 말이면 말이지 왜 말에 존칭어를 씁니까? 영어에는 단 지 ‘word’입니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왕에게나 하나님께도 모두 구별 없이 같은 말을 씁니다. 왜 ‘말 언(言)’이라고 하지 않고 ‘말씀’ ‘言’입니까?  이것은 말씀 언(言)의 구성이 삼일구(三一口)로 되 어 있습니다. 삼일(삼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요 구(口)는 말 혹은 말하다입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말씀 언’인 것입니다. 한국인은 처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았고 그의 말을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자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 글은 하나님을 섬기는 동이족이 아니고는 만들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요한복음 1:1을 번역할 때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존칭어로 번역된 것은 성경 원문에 없는 말이지만 한국인에게 있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까지나 말씀이신 분이시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말씀’이지 ‘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도 you, 어른에게도 you, 하나님께도 you라 하여 위 아래 구별 없이 같은 말을 사용하는 세계 각국의 언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하게 하신 바벨탑 사건 이후의 말인 것입니다. 한국어의 기원은 바벨론이 아니고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혼잡한 세계 언어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때에 세상에 다시 순수한 언어로 되살리실 것을 스바냐 3: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킹제임스 버전과 쉬운성경에서, ‘그 때에 내가 백성에게 순수한 언어를 돌려 주리니, 그들이 모두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한 마음으로 그를 섬길 것임이라.’ 했습니다.

넷째로 동이문자에 간직된 창세기 내용들

상형문자인 일부 한자들 가운데 창세기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도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상형문자인 한자를 분석해 보면 약 100여자에 달하는 한자가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와 같은 문자를 만들었을까요? 지나(支那)의 한족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이었습니다. 대홍수 이후 동 양으로 가장 먼저 천동해서 정착한 사람들은 한국인의 선조이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교도들이었던 그들은 창세기 1장에서 10장까지의 사건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상형문자인 이른바 한자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원시 한자의 창안자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자의 기원을 갑골문자 라고 하는데 이 갑골문자가 나온 것은 은허라고 합니다. 1899년 홍수 때 처음 발견된 갑골문은 그 지역 [현재 하남성(河南城) 안양현(安陽縣) 소둔(小屯)]이 은(殷)나라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은나라 의 옛터’ 라는 의미로 ‘은허(殷墟)’라고 불리고 그 문자를 ‘은허문자(殷墟文字)’라고도 합니다. 지금까지 은허에서 확인된 갑골은 15만편에 이르는데, 1936년에 한 곳 (YH 127 갑골갱)에서만 무려 1만7000여 편의 갑골이 쏟아졌습니다. 중국사람들이 한자는 자기들의 선조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1899년에 갑골문자가 발견 되면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나라(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자의 기원문제와 주인 문제를 풀게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갑골문자를 중국사람들은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이족인 우리는 상형문자의 그 문자대로 살고 있고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사람들은 그 갑골문자를 풀 수 있지만 중국 사람들은 그 생활이나 문화나 물건들을 모르기 때문에 갑골문자를 풀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동이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갑골(甲骨)문자인데, 갑골은 거북의 배 껍질이나 소의 어깨 뼈에 글자를 새긴 것으로 기원전 2500년 무렵 발해 연안 북쪽에서 시작된 중원지방의 은나라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한자는 중국사람들이 발명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영어가 세계적 공용어가 되었다고 해서 영국사람들의 문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원시 알파벳의 창안자는 페니키아인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자를 한자(漢字)로 부르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인 것입니다. 이 한자를 한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동이 문자 혹은 아시아 사인(Asia Sign)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현존하는 한자 5만 3천 5백 25자의 발음 부호인 반절음(反切音)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옥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은 1918년에 주음자모(注音字母)라는 표음문자 40자(현재 37자)를 제정하여 옥편 상의 전통 깊은 반절음과 전혀 다르게 한자 발음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자 가 본래 그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류 최대의 표의문자로서의 한자가 모두 우리 말 이두문(吏讀文)으로 발음기호(반절음)로 표기되어 온 이유입니다. 오늘날 중국학자들은 은나라에 대해 중국인의 조상인 화하족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한국인의 조상 동이족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만 대학의 임해상 교수는 은나라가 우리 배달 동이 겨레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옛 책들에서 말하기를 순임금이 동이 사람이요, 제나라 환공을 도와 이적을 물리친 관중이 또한 동이겨레의 한 갈래인 내이 사람이요 또 근래에는 여러 학자들이 은나라가 동이겨레 임을 고증하고 있다’했습니다.

갑골문자의 그림이 글인 것입니다. 최근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대만 중국문화대학 중문연구소에서 갑골문자의 갑골학을 연구하고 갑골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상명대학교의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김경일 박사 역시 한자는 동이족의 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한자로는 문자(文字) 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文)은 그림을 말하고 자(字)는 글자를 말합니다. 문자란 말의 의미, 즉 글의 유래가 그림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자에서는 ‘문’과 ‘자’로 붙여 쓰지만 우리 말의 ‘글’은 ‘그림’에서 ‘글’이 나왔음을 이미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 민족의 조상인 욕단 족속은 홍수 후 하나님을 대적한 자, 니므롯(함의 손자)의 위협으로부터 셈계의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니므롯과 함께 서부 바벨론으로 가는 홍수 생존자들로부터 갈라 섰습니다. 그들은 동양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마침내 스발 (시베리아-만주)에 이르렀습니다. 동방의 새 땅에 이동해 와서 삶의 터전을 잡은 유일신 신교도들이었던 그들은 창세기 1-10장까지의 사건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글’의 유래인 것입니다. [진태하 교수의 문자학 강의]에 의하면, 契(맺을 계)는 ‘설’로도 읽는데 이것을 간편하게 한 것이 卨(설, 사람 이름 설) 입니다. 이 글자가 글(契, 맺을 글) 로도 읽으며, 이 글은 갑골문자를 새기고 그린 글, 즉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글이라고 합니다. 현재 는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을 긋는다, 그린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글을 새기는 도구를 현재 우리는 ‘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자는 동이문자이며 한민족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문자 입니다.

[창세기의 발견]저자 인 C H kang과 E R  Nelson은 한자가 간직한 창세기 1-10장까지의 내용들을 잘 설명했는데 그는 한자가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잘 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설명하기를,

‘첫째, 그림문자나 표의문자를 고안해 내려는 최초의 노력이 전설에 의하면 약, BC 2,500년 경에 시작되었다고 하므로, 고대 지나인들은 그들의 시대로부터 약 700년에서 1000년 후에 모세가 기록 한 성경 가운데 나타난 홍수 이전의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둘째, 공자가 편찬한 역사책인 서경(書經)에, BC 2,230년 순(舜)황제의 사적 가운데, ‘그가 하나님 (上帝)께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후에 지나인들이 봉선제를 행하였음을 보아,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존할 수 있었던 고대 지나인들은 ‘하늘의 최고 통치자’를 상제(上帝), 천(天), 혹은 신(神)이라 부르며 숭배했던 하나의 신을 절대자로 믿는 일신교 도들이었다.

셋째, 이 모든 것은 지나 사람의 조상은 그들이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바벨탑 사건 분산 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 준다.’했습 니다.

이 주장은 무지에서 온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C H Kang 자신의 말대로 하면 지나인들은 바 벨탑 사건에 가담한 함 자손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무리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일신신앙을 가질 리가 없으며 따라서 창세기 1-10장의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한자에 기록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C H Kang은 동이족을 지나족인 화하족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순 임금은 지나의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의 사람이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순 임금은 동이족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순 임금의 순(舜)은 무궁화 순입니다. 이것은 순 임금이 화하족의 지나인이 아니라 동이족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봉선제를 드리는 것은 동이족들이 하나님께 제천의식을 드리는 것인데, 최남선은 ‘봉선제’는 지나인 고유의 것이 아니라 태산을 중심하여 예로부터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던 동이족의 유풍을 계승 삽입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지나인들이 동이족의 제천의식을  배워가 봉선제를 드렸는데 봉제는 하나님께, 선제는 땅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인데 이것은 상당히 변질된 것으로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인들이 한자를 만든 것이 아닌 제일 중요한 사실은 지나인들은 용을 섬기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민족의 유물이나 유적에 용의 조각이나 문양이 있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지나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에 불과합니다. 지나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용을 숭배한 민족입니다. 지나인들의 한결같고 현저한 문화적 특성은 뱀의 형상을 한 용을 지극히 숭상한다는 것입니다. 고대에 지나에서 용은 황제를 상징했습니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지구 상에서 용에 대한 애정과 숭배심이 가장 강한 민족이 지나인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용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 개막식 때에 큰 풍선으로 만든 용 네마리를 하늘로 띄워 올려 네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광경을 연출시켰던 사례를 기억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크고 작은 축제나 명절 때마다 용을 내세우고 용을 자랑합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성경에 용의 존재가 어떤 것인가를 다 알 것입니다. 그런 민족이 창세기 1-10장의 내용을 한자에 기록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한자는 지나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든 것입니다. 현재 중국인들은 갑골문자 한 글자를 해명하는 사람들에게 10만 위안을 준다고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지나인들은 갑골문자를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家’ 이 글자는 ‘집 가’ 입니다. 왜 집에 돼지가 있습니까?  宀(집 면, 갓머리 면) 집에 왠 돼지 ‘시’(豕)가 있습니까? 갑골문자에 집 모양의 그림 안에 돼지가 있는 그림의 글자가 현재의 집 家자가 된 것입니다.

왜 집에 돼지가 있느냐 하면 옛날에는 뱀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뱀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돼지는 뱀의 천적이라 합니다. 돼지를 보면 뱀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뱀이 침범하는 곳에 사방에 돼지 똥을 놓아 두면 뱀이 얼씬도 못하며, 뱀에 물렸을 때에 돼지 똥을 바르면 낳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이 집 아래에 돼지를 기르면 뱀이 접근하지 않았으므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제주도, 경상도, 강원도의 시골에는 아직도 집 밑에 돼지를 기르는 곳도 있습니다. 이 풍습은 우리 민족 3400년 이상 내려 오는 풍습인 것입니다. 이 집 ‘家’의 형성을 동이족이 아닌 지나 사람들이 집 ‘家’에 왠 돼지가 있는 지, 왜 집 ‘가’가 그렇게 만들어 졌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갑골문자 한 자 깨닫게 해 주면 10만위안을 준다고 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 외 진태하교수의 강의에 의하면, 연(然, 그러할 연)은 본래 의미는 ‘불(火)에 태운 개(犬)고기(肉) 연(然)’이었다고 합니다. 본래 개고기는 불에 그을어 먹어야 재일 맛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 은 여름날 더울 때에 힘을 돋구기 위해 복날에 개고기를 먹고 힘을 얻게 되니 역시 그렇구나 하고서 ‘그럴 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탈 연’이 다른 뜻으로 되었으니 본래 불탈 연 앞에 불 ‘화’자를 더 보태서 ‘불탈 연(燃)’을 만든 것입니다. 옛날부터 개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민족은 우리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민족 만이 풀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갑골문자 입니다. 가을 추(秋)에 대해서도 가을을 의미하는 말에 왜 벼(禾)와 불(火)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가을이 오면 메뚜기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메뚜기를 잡아 불에 볶아 먹었던 것입니다. 본래 갑골문자는 메뚜기 형상을 만든 복잡한 글자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그리기 복잡하니 메뚜기는 가을에 논에 벼에 많이 생깁니다. 나는 어릴 때에 가을이 되면 논에 가서 메뚜기를 잡아 오면 어머니가 볶아서 도시락 반찬도 해주고 식구들이 맛있게 먹었는데 메뚜기를 잡아 볶아 먹는 민족은 고래로부터 지금 까지 한국민족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 사람들은 메뚜기를 먹지 않습니다. 갑골문자는 우리 동이족이 만든 것이요 한자는 우리 민족의 선조가 만든 것이지 지나 사람들이 만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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