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계시록 6:5-6)
1. 본문의 해석
흑마는 사상전 후에 또 다른 전쟁이 도래하면서 사상전 시대가 종결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탄 자가 저울을 가졌다’에서 저울은 고대로부터 인류사회에 내려온 유물 중의 하나로써 물건을 달아서 팔고 사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울의 뜻은 상업과 무역을 의미합니다. 즉 사상전 다음으로 세계는 상업전쟁, 무역전쟁, 경제전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이스라엘 나라의 화폐의 단위인데 노동자가 하루 일하고 받는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포도주’는 기쁨과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을 의미하며 ‘감람유’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능력 있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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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
세 번째 나타난 말은 검은 말인데 ‘말’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말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다고 했고 6절에 밀과 보리를 달아서 파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저울은 물건을 달아서 팔기 위해서 만든 것이며 지금도 상점에는 어디나 저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울은 장사를 의미하고 말은 전쟁을 의미하므로 장사전쟁, 무역전쟁을 뜻합니다. 사상전 뒤를 이어 경제전쟁이 등장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백마인 서구 식민주의는 적마인 공산주의에 의해 저지당한 것처럼 사상전쟁이 흑마인 경제전의 벽에 부딪혀서 저지당하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공산주의 혁명이 계속적으로 전 세계에서 승리하며 확장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고 어쩌면 전 세계가 공산화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지역간의 분쟁이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은 어느 시대나 있었던 것처럼 국제간의 경제적인 경쟁도 어느 때나 존재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제 1, 2차 세계 대전이 두 차례나 있었던 것처럼 경제전이 지역적인 충돌의 단계를 벗어나서 국제적인 블록으로 나누어지며 전쟁의 양상을 띤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지금은 국제 경제전 시대입니다. 지금은 모든 이슈가 경제로 집약되어 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해도 정치적인 이슈나 외교적인 교섭보다는 무역과 경제협력, 기술이전과 경제발전을 위한 일들이 중심적인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냐 독재주의 국가냐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그 나라와 외교관계를 가진다면 우리의 상품을 얼마나 팔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옛날에는 강대국이란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였으나 지금은 경제적인 강국이 아니면 강대국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첨단과학무기의 값이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경제가 약하면 첨단 과학무기를 생산할 수도 없고 수입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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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의 시작
백마는 영국에서, 적마는 러시아에서 뛰기 시작했으나 세 번째 말인 흑마는 유럽에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통합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선각자들이 여러 가지 제안을 해왔습니다. 1795년에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유럽 연방의 법률을 제안했고 1814년에 프랑스의 샹 시몬은 유럽의회를 창설하여 통합하자고 제의했으며, 1848년에 프랑스의 빅토 유고는 유럽합중국의 창설을 제안하였습니다.
1946년 9월 19일, 제 2차 대전에서 승리하여 영웅이 된 유명한 영국 수상 처칠이 취리히에서 한 연설에서 유럽합중국 창설을 제안했고 프랑스의 장 모네가 유럽 통합운동의 산파역을 하여 유럽 통합운동이 많은 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쟝 모네는 1888년에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의 관리로 근무했으며 제 2차 대전시 1934-1944년까지 알제리에서 군사위원으로 봉사했으며 드골 장군과 함께 프랑스 본토 회복시 함께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처칠 수상의 제안을 실천해 옮겨 유럽 통합의 주역의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하여 한국전이 시작되자 유엔의 결의로 유엔군이 파송되었는데 주역부대는 미군이었습니다. 유엔군이 북한 공산군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1950년 겨울 유엔군이 북한을 거의 함락하자 중공군이 개입했고 소련의 공군들이 만주 상공에서 작전을 펴자 한국 전쟁은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 될 조짐까지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유럽국가들은 매우 불안스러워했습니다.
만일 이 전쟁이 확전되면 3차 대전이 될 것이며 3차 대전이 시작되면 결전장은 한국이 아니라 유럽이 될 것이며 결국 북대서양 동맹국들은 바르사바 동맹군과 결전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핵무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유럽은 개미 한 마리 남지 않는 완전 폐허가 될 것이라는 공포심이 그 당시 모든 유럽의 지도자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미래는 매우 암담했습니다. 이 두 초강대국 즉 미국과 소련이 한국전에서 대결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대결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유럽은 완전히 패망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유럽입니다. 유럽이 어떻게 하면 이 패망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까? 그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유럽이 과거를 서로 용서하고 통합하여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미국과 소련에 대해 등거리 외교를 하면 됩니다. 장 모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유럽의 통합운동을 1950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국제 정세로 보아서 장 모네의 이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장 모네, 샹 시몬, 빅토르 유고, 처칠 수상,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들은 모두 프리메이슨들입니다. 세계 단일국가 음모자들이 제1차, 2차 전쟁 및 한국전쟁을 일으켜 사람들로 불안하게 만들어 유럽통합을 이끌어 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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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통합운동
지금부터 유럽의 경제통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단히 기술하겠습니다.
- 1950년 9월 19일에 유럽경제협력기구의 회원국가인 17개 국가가 유럽경제동맹을 설립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럽 회원국가 상호간의 결제와 자동적인 크레딧을 제공할 목적으로 창설한 것입니다.
- 1951년 4월 18일에는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창설되었는데 이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간의 석탄과 철강분야에서 관세의 장벽을 철폐하여 하나의 공동시장을 창설하기 위한 기구였습니다. 일반적인 목적은 철강과 석탄의 생산을 통한 경제성장과 고용확대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 1957년 3월 25일에 핵 산업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신속한 정립과 성장에 필요한 조건을 조성함으로 회원국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공동 에너지 시장의 창설, 핵 원료 균형공급, 핵 에너지 안전 및 인간과 환경의 보호를 위한 특별 계획 등을 추진하기 위하여 유럽원자력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을 가지고 있는데 유럽이 핵을 가지지 않으면 방위에 문제가 있게 된다 하여 프랑스와 영국이 1955년에 핵을 개발하여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 1957년 3월 25일에 로마 조약의 체결로 유럽경제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회원국간의 상품, 사람, 서비스 및 자본의 자유 이동을 허용함으로 공동의 경제, 산업, 사회, 채무 및 재정정책을 지닌 단일 시장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출범했습니다.
- 1967년에는 이상의 3개 기구, 즉 유럽 석탄철강공동체, 유럽 원자력 공동체, 유럽 경제 공동체를 통합하여 유럽공동체 산하에 두기로 했습니다.
- 1974년 12월 10일에 유럽공동체는 급속히 발전하여 유럽 정상회담을 파리 회담에서 공식적으로 결성하여 유럽의 최고 기구가 되었고, 유럽 의회도 조직되었습니다(1979년). 12개국 회원국들이 관세를 철폐하고 경제공동체를 성취했으며 유럽 통일을 위한 전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 1952년에 결성된 유럽의회가 1979년에 유럽의회 의원이 최초로 회원국의 시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됩니다. 이후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증가하면서 의회도 함께 확대되었습니다.
- 1993년 1월 1일, 오랜 협상 끝에 인구 3억 4천만 명과 세계 총 교역량의 38%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단일시장을 출범시켜서 상품, 사람, 서비스 및 자본이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EC 12개국의 시장 통합을 이
룬 것입니다.
- 1993년 11월 1일에 유럽연합이 결성되었습니다.(마스터리흐터 조약에 의함)
- 1995년 2윌 23일에 유럽 사법 재판소 설립되었습니다.
- 1999년 1월 1일에는 유럽의 화폐, 유로화로 화폐가 단일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가을에는 유럽 통합군 사령부(NATO)가 창설되었고 유럽의 통합이 더 한층 발전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 1999년 6월 1일 유럽중앙은행 설립되었습니다.
- 2007년 3월 25일 유럽헌법성립
- 2009년 11월 19일 EU 초대 대통령 헤르만 벤 롬푸이(Herman Van
Rompuy) 를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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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 공동체에 대한 세계적 반응
유럽 12개국 안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관세 없이 서로 교환하는 유럽 공동시장이 발족되자 세계 모든 나라들은 유럽과의 교역에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들의 생산품은 관세 없이 12개국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으나 타국의 생산품은 관세를 내고 판매해야 하니 유럽과의 교역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당황한 나라는 물론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의 주 고객이 유럽 나라들이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EC간의 무역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고민하던 끝에 유럽과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카나다와 멕시코를 방문하여 북미 자유무역지대(NAFTA) 협정을 1994년 1월 1일에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NAFTA도 유럽과 비슷하게 세계 무역량의 약 38%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도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동을 중심하는 이슬람 국가들도 ICM(ISLAM COMMON MARKET)을 창설하여 지금 세계는 경제전의 불록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에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이 하나의 불록을 이루고 전쟁을 시작하자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서로 대결한 것처럼 경제전에서도 몇 개의 불록이 형성되어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유럽공동시장과 북미 공동시장의 싸움과 함께 아시아를 중심한 공동시장이 불가불 형성되고, 아프리카를 중심한 경제 불록, 남미 공동시장등 이미 조직된 이슬람공동시장 경제권이 형성되었습니다.
유럽연합의 결성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통합되어 가고 있는데 그 통합방식은지역별 불록화와 세계적 통합화로 이루어집니다.
세계 경제 통합 현황
- 유럽연합
- 남 아프리카 관세동맹-남 아프리카 개발공동체(SADC)-서 아프리카 연합(ECOWA)-중 아프리카 연합(ECCAS)
- 동남 아시아 국가연합(ASEAN)-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동아시아 경제회의(EAEC)-남태평양회의(SPE)
- 북미 자유무역지대(NAFTA)- 중미 공동시장(COCM)
- 남미공동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
- 중동연합-걸프협력-이슬람공동시장(ICM)
세계는 이처럼 서로 앞 다투어 지역별 블록화를 급속도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하루라도 빨리 서로 통합되어야 무역에 어려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9월 18일 리먼 브라더서(Lehman Brothers)사의 파산과 함께 미국 발 경제위기는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미국정부는 천문학적인 재정금융지원정책을 통해 달러를 찍어 냈고 미국은 초인플레선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 세계는 미국발 경제위기를 해결하느라 2009년 한 해를 바쁘게 보냈지만 2010년은 이보다 더 큰 경제위기에 처했었습니다. 그리스 재정적자로 시작된 유로화의 위기는 이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유럽연합의 재정지출을 억제함으로 가뜩이나 힘겨운 유럽의 경제는 더욱 어려움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유럽연합의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이와 발맞추어 전 세계는 지역별로 서로 통합물결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세계는 우리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빠른 속도로 단일화의 물결로 나아가고 있으며, 경제는 지역별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세계불록화는 세계경제의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오게 되는 당연한 결과로써 세계는 유럽연합의 정치통합과 함께 더 빠른 속도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불록화 움직임은 2007년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론(Subprime Mortgage Loan,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부실 사태 이후 더 고조되는 추세입니다. 2008년 5월에는 자원 강국들로 이루어진 남미국가 연합이 출범했고, 2008년 7월1에 지중해 연합, 남동유럽지역협력 협의회(RCC) 등 2개 불록이 형성되었습니다. 유럽연합 27개국과 지중해 연안에 있는 중동, 북아프리카 국가 17개국 등 모두 44개국이 참여하는 대형 불록이 형성됩니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지중해 연안 국가가 통합되면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물류, 제조 허브로 부상할 전망입니다. 이와 같이 세계는 급속도로 통합의 물결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세계 어느 나라의 통화도 세계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국제 경제가 심하게 요동치면 칠수록 세계단일화폐에 대한 강력한 필요성이 요구되어 이제 곧 단일 화폐에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연한 역사적 흐름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향해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는 단일 사회주의자들의 완벽한 연출입니다. 글로벌 세계 경제 위기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치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유엔이 새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세계단일화폐에 대한 요구와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렇게 준비된 상황에서 세계는 어떻게 통합되겠습니까?
미국과 유럽의 대형 은행은 유대인들의 소유 아래에 놓여 있으며, 각 정부들은 이 은행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도 유대인의 소유입니다. 국제 결제은행(BIS), 국제 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각국의 은행을 관리하는 국제 금융기구도 역시 유대인의 손에 있으며, 그들의 목적은 세계정부를 수립해 모든 나라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를 위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3단계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1단계 전략은 후진국에 차관을 싼 이자로 많이 빌려 주었다가 일제히 회수해 지급 불능에 빠지면 이들 소유인 IMF가 나타나 돈을 빌려 주는 대신 통화량을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구조조정으로 대량해고를 합니다. 또한 시장을 개방하며, 노동법과 환경법을 개정하고, 중앙은행도 민영화하라고 요구합니다(1998년 동남아시아 외환위기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인 남미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경제상황은 더 어려워졌고, 부동산과 공기업은 헐값에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총으로 그 나라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나라 자체를 헐 값에 사버리는 것입니다. 강대국은 가난한 나라를 상대로 악덕 사채업자 같이 돈을 빌려 주었다가 못 갚으면 자산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그 나라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파괴해 다국적 회사의 공산품과 식량을 비싼 값에 수입하고, 지하자원을 헐값에 팔게 합니다. 아르헨티나도 공기업이 외국자본에 의해 민영화된 후, 대량 해고와 전기, 수도요금 등의 대폭 인상으로 경제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게 했습니다. 코스타리카도 1980-1989년 사이에 무려 9번이나 IMF와 세계은행에 의한 구조조정을 받았습니다. 구조조정은 주로 자급자족시스템을 파괴시키고 수출일변도의 정책을 취하게 합니다. 그 결과 수출을 위해 바나나 농장과 목장을 무리하게 확장시킨 결과 농업은 축소되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1970년 식량의 자급자족 비율이 50%였지만, 1987년에는 37%로 떨어져 거의 모든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2단계 전략은 자유무역이나 투자협정을 통해 각 지역별로 경제를 통합하고, 국가 관련을 희박하게 만듭니다. 국제 금융가들은 각국 정부에게 WTO, GATT, FTA 등의 협정을 지키게 해 자유무역을 실시하고, 관세를 철폐합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간에 관세와 비자를 철폐하고, 유로라는 공동화폐를 발행해 미국의 주(State)와 비슷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인 GATT는 국가가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고, 외국과의 무역장벽을 없애 서로 의존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세계화, 신 세계질서, 자유무역 등은 가난한 나라를 합법적으로 약탈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자유 무역을 실시하면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약한 후진국의 농업, 가내 수공업, 중소기업은 무너지며, 비싼 돈을 주고 외국의 공산품과 농산물을 사 먹게 됩니다. 나라는 빚더미에 앉고, 사람들은 굶주리고, 아이들은 길거리를 떠들고, 가정은 파괴됩니다.
3단계 전략은 세계 경제 공황을 일으켜 각국이 불황에 허덕이게 하고 자칭 유대 인인 국제 금융가들이 이를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세계정부의 일원이 되라고 권합니다. 미국은 유대인 소유의 은행에 6조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고, 2009년 한해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용한 공적 자금이 8,000억 달러였습니다. 이와 같이 경제통합화와 맞물려 2009년 11월 유럽연합의 정치적 통합은 전 세계의 통합과정을 과속시키는 촉매역할을 할 것이며, 이렇게 UN의 신세계질서가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전의 시작을 유럽공동체 운동의 시작인 1950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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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왜 흑마, 즉 세계 경제전을 출현하도록 예언하고 그 예언을 역사 위에 성취하셨을까요? 즉 경제전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989년은 기적의 해
20세기 중에 1989년은 ‘기적의 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 해에 동유럽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의 결과로 폴란드, 항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에서 강경파 공산정권이 몰락했고 11월에는 베를린 장벽이 극적으로 붕괴되어 이듬해 10월에 동서독이 통일되었습니다. 1989년에 전개된 이 엄청난 대 사건들은 사실상 냉전이 종식되고 탈냉전시대로 역사가 전환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소련의 신세대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역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는 1985년 소련 역사상 최초로 혁명 후 세대의 지도자로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는 취임하자 페레스트로이카(Reconstruction;개혁)와 글라스노스트(Openness;개방)에 입각하여 정책을 세운다고 선언하여 국내외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개혁을 시도한 이유는 소련의 침체되어가는 경제와 국제적 지위 회복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 그는 미국과의 대결로 인한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소련의 산업을 군수산업 중심에서 소비재 산업 중심으로 경제를 전환하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1987년 레이건 대통령과의 워싱톤 회담에서 소위 INF협정(미소가 유럽과 아시아에 배치한 중 단거리 핵미사일을 철수하고 해체하며 양국 장성이 이를 감시하자는 협정)에 조인했습니다. 1988년 5월에 미 상원은 이를 93대 5로 그 조약을 인준하므로 1988년 6월 1일부터 그 조약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어 탈냉전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1989년 8월 23일, 발트지역 세 민족 100만 명이 620Km의 인간사슬을 만들면서 50년 전(1939년) 스탈린과 히틀러가 체결한 독소 불가침 조약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렸고 결국 발트해역 3개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1991년 3월에 주권 공화국 연방에 관한 조약이 국민투표에 의해 76%라는 절대 다수로 통과되고 옐친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공화국 연합으로 수정한 신연방조약 안을 발표하여 소연방의 유지를 도모했으나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9월 21일에 알마타에서 11개 공화국의 독립국가 공동체 창설 의정서에 조인하고 고르바초프는 25일에 소련 대통령직 사임을 표명하여 소련 창설 69년 만에 소련 연방이 해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소련연방 안에 있던 모든 약소 민족들이 독립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하나님이 경제전을 오게 했는가를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소련연방 안의 약소 민족까지 독립하므로 누가복음 21:29-31의 예언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눅 21:28)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31). ” 이런 일이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면서 모든 약소민족들이 독립을 한 사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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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의 종국
우리는 계시록 6장6절을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6절에 경제전의 종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라 했는데 경제전에서 파국된 구 소련의 형편을 말해 주기도합니다. 그 당시에 모스크바에 선교사로 가 있던 분에게 들은 말인데 처음에 모스코바 공항에 내렸는데 음산한 분위기와 이상한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합니다. KGB가 시내 사방에 깔려 있었고, 현지 안내인이 밖에 나오면 큰일난다 해서 방안에만 있다가 그들이 인도하는 데로 따라 가기만 했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선으로 인해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었고, 시내를 다니다가 피곤도하고 배도 고픈데 사먹을 것은 없고 먹을 것이라곤 아이스크림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영하 20도 추운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 선교사들 대부분이 경험한 내용입니다. 환율은 US달라 1불에 30루불이었는데 10달러에 300루불인데 그 당시 300루불은 의사나 교수의 한달 월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이들보다 더 받았다고 합니다. 의사나 교수들의 봉급이 노동자들 보다 적은 것은 이들이 공부를 하면서 국가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월급에서 빚을 떼 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건이 품귀현상이라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었고, 어떤 물건이 있어 한 개를 살 수 있는데 5개 이상 사게 되면 프레미엄을 줘야 한답니다. 감자나 양배추를 사려고 하면 절반 이상이 썩어있었다고 합니다. 과일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어도 비싸서 살 수 없었습니다. 도마도 한 개의 값이 US달라 1불이었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돈을 구걸하는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구 소련 시절에 교사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들이 밖에 나와 중노동을 하고 남편들은 집에서 술만 마시고 화가 나면 부인들을 구타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구 소련은 중앙 공급 시스탬이었는데 무슨 물자든지, 쌀이나 다른 곡물들, 과일들을 생산하면 일단 모스코바로 운송되었다가 그 다음에 다시 지방으로 분배되었다고 합니다. 감자나 식품들이 운송 도중에 다 썩어버립니다.
그 뿐만 아니라 2008년 9월 18일 리먼 브라더서(Lehman Brothers)사의 파산과 함께 미국 발 경제위기는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게지 론으로 인해 사람들이 집을 잃은 자들이 수 백만이었습니다. 이 경제파국으로 미국은 1939년 경제공황 만큼이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예언 즉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가 의미하는 것은 첫째는 엄청난 인풀레이션으로 인하여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또한 흉작으로 인한 곡물 가의 엄청난 상승이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살아가기 매우 어렵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생활이 매우 어렵게 되는 경제적 상황이 온다는 것인데 그것을 경제공황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전 세계에 도래할 경제적 파국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세계적인 대 경제공황이 올 것을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올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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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의 대 경제공황은 누가 일으켰나?
국제 금융 재벌이 큰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경제불황을 조작합니다. 그들은 먼저 신용대출을 확대함으로써 거품을 조장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투기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통화량을 갑자기 줄여 경제 불황과 재산 가치의 폭락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우량 자산의 가격이 정상가의 10분의 1, 심지어 100분의 1까지 폭락하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나서서 말도 안되는 싼 가격에 사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국제 금융재벌들끼리 통하는 전문용어로 ‘양털깎기(Fleecing of the Flock)’라고 합니다. 사유 중앙은행이 설립된 이후 양털깎기는 규모면에서 사상 최고에 달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양털깎기 행위는 1997년에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을 상대로 일어났습니다.
1) 양털깎기’와 1921년의 미국 농민들의 경제파탄
‘1894년 9월 1일, 우리는 모든 대출의 연장을 중단할 것이다. 그날 우리의 돈을 회수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상환하지 않은 재산을 소유하고 경매에 부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정한 가격으로 미시시피 강 서쪽 3분의 2에 달하는 농토의 거대한 토지를 얻을 것이다.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고용인이 될 것이다. 영국처럼 말이다.’ (1891년 미국 은행가협회, 1913년 4월 29일 의회 기록에서)
양털깎기는 은행가들 사이에 통하는 전문 용어로, 경제가 번영과 쇠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기회를 창출해 정상 가격의 몇 분의 1밖에 안되는 가격으로 타인의 재산을 가로채는 행위를 말합니다. 미국의 화폐 발행권을 손에 넣은 유대계 국제 은행가들은 경제의 번영과 쇠퇴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양털깎기 행위는 은행가에게 마치 사냥으로 생활하는 유목의 단계에서 과학적으로 사육하는 고도의 안정적 생산 단계로 진화한 것과 같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미국에 보편적 번영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대규모의 전쟁물자 구매는 각 업종의 생산과 서비스를 촉진시켰습니다. 전쟁시에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았고,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즉 군대의 양식은 높은 가격으로 팔렸습니다. 노동자 계층의 경제 상황은 크게 좋아졌고, 전쟁이 끝날 무렵 생활비를 절약한 농민들의 손에는 대량의 현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거액의 재산이 월가 은행가들의 손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중서부의 농민들은 보수적인 현지 은행에 저축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현지 중소 은행가들은 뉴욕의 국제 금융 재벌들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연방준비은행 시스템에 동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럽 전쟁을 위한 대출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월가의 큰 손들은 기회를 봐서 이 촌뜨기들을 단단히 손봐줄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농민들의 주머니에는 돈이 두둑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 돈을 노리던 월가의 금융재벌들은 드디어 양털깎기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먼저 유인 작전으로 ‘연방농업대출위원회’라는 기구를 설립해서 농민들의 피땀 어린 돈을 새로운 토지 구매에 사용하도록 ‘권장’했습니다. 농민들은 장기 대출을 해주는 이 조직에서 돈을 얻고자 안달이었습니다. 많은 농민들이 조직의 도움을 받아 국제 금융재벌에게서 장기 대출을 신청했으며, 고액의 선납금을 지불했습니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치밀하게 설계된 함정에 빠진 사실을 영원히 모르고 지날 수도 있습니다. 1920년 4-7월 넉 달 동안에 공업과 상업무역 분야에는 신용대출을 거액으로 대출해 줌으로써 앞으로 닥칠 신용대출에 대한 긴축에 대비하게 했으나 유독 농민의 신용대출에 대한 신청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월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금융 제한 위기인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은 농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연방준비은행에 복종하지 않는 농촌 지역의 중소은행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농민들은 대규모 파산 사태를 맞았습니다. 1920년 5월 8일에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재벌 은행가들만 참가한 비밀회의에서 농민들에 대한 신용대출 긴축을 조작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듬해 국민소득이 150억 달러나 감소하고 수백만의 실업자가 양산되었으며, 토지와 농장의 가치는 200억 달러나 폭락했었습니다. 농민을 보호해야 할 연방준비은행이 오히려 농민의 최대의 적으로 둔갑했습니다. 이제 농업에 대한 양털깎기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자, 중앙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다가 큰 상처를 입은 중서부 지역의 중소은행들의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2) 1929년 경제 대 공황
1927년에 유럽의 3대 중앙은행 대표자들과 뉴욕 연방준비은행 대표자들이 모여 1주일 동안 비밀회의를 가졌습니다. 비밀회의가 끝난 후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즉시 행동개시를 했습니다. 금리를 3.5%로 인하했습니다. 1928년 한 해에만 600억 달러의 통화를 회원 은행에 방출했습니다. 이 돈을 금으로 환산하면 그 당시 황금 유통량 총액의 여섯 배나 되는 양이었습니다. 당시 뉴욕 증권시장은 거래업체에 1%의 자금으로 주식을 사도록 허가하고 나머지 돈은 거래소의 은행에서 대출 해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거액의 신용대출금을 쥐고 있던 은행과 돈에 목말라 하던 증권업자의 만남은 환상의 궁합이었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서 5%의 금리로 돈을 빌린 은행들은 12%의 금리로 증권업체에 대출해 주면서 7%라는 큰 차액을 챙겼으니,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 증시가 폭등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의 미국정부는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저축금을 동원해 증권 투자에 몰두하라며 온 국민을 부추겼습니다. 심지어 워싱턴의 정치가들마저 월가의 선전 도구가 되어 국민을 선동했었습니다. 재무장관 앤드루 멜런은 정식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뉴욕주가가 높은 편이 아님을 보장했으며,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은행가들이 써준 원고로 전국에 담화를 발표하면서 주식 구매가 안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929년 2월 6일, 잉글랜드은행의 노먼이 다시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곧이어 연방준비은행은 1927년 이래의 통화팽창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영국 은행은 대사를 치를 준비를 끝낸 듯 했고, 이제 미국 쪽에서 손을 쓸 시기가 온 것입니다.
1929년 3월, 미국 금융의 아버지 폴 와버그가 국제 청산은행의 주주 연례회의에서 경고하기를 ‘절제를 모르고 계속 욕심을 키워 갈 경우 최종 결과는 투기하는 당사자들뿐 만 아니라 전국을 위기로 몰고 갈 것이다.’고 했습니다. 3년에 걸친 절제 없는 탐욕에 침묵하던 폴이 갑자기 나서서 경고했고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위치의 그가 한 말이 뉴욕 타임스에 보도되자 마자 시장은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연방준비은행은 1929년 8월 9일 금리를 6%로 올렸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연방준비은행이 증권거래업자에 대한 금리를 5%에서 22%로 인상했습니다. 이 조치로 투기업자들은 자금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무조건 증시에서 빠져 나오는 것 말고는 다른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증권시장의 상황은 급전직하로 치달았습니다.
1600억 달러의 재산이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돈은 미국이 2차대전 기간에 생산한 모든 물자를 합친 금액에 육박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1929년의 경제공황은 사실 국제 금융 재벌들이 대중을 상대로 한 치밀한 양털깎기 행동이었습니다. 월가는 금융위기를 통해 자기들에게 필요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습니다. 1930-1933년 사이에 총 8,812개의 은행이 도산했으며, 대부분 뉴욕 5대 은행에 반기를 들고 미연방준비은행(유대인 국제 금융가의 개인소유) 시스템에 동참하지 않은 은행들이 속속 종말을 맞았던 것입니다. 국제 금융 재벌들이 속속 몰려와 정상 가격의 몇 분의 1, 심지어 몇 십분의 1의 최저 가격으로 우량주와 기타 우량 자산을 사들렸습니다.
그 당시 한 주 동안에 6만 군데의 부동산과 농장이 하루 동안 경매로 처분되었고, 미시간 주 오클랜드 카운티에서는 7만 1,000가구의 집주인과 농장주가 거리로 나 앉았습니다. 미국의 각 지방에서 비슷한 사정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재난에서 피할 수 있었던 자들은 런던 로드차일드 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자들은 모든 주식을 팔아 대량의 정부 채권으로 갈아탔었습니다. 핵심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백만장자라도 재난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핵심권 인사들은 J P모건과 쿤룹사, 그리고 이들 로드차일드 가가 선정한 우수 고객들, 파트너 은행들 및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유명 실업가와 주요 정치인 및 우호국가 통치자들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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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공황은 또 다시 올 것인가?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은 1929년의 미국 대공황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공황이 조만간 닥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때에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대다수의 인구가 몰살되는 생지옥과 같은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경제구조가 그 만큼 거대하고 탄력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공황이 결코 자연 발생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통화량의 극심한 축소가 없이는 이런 공황이 일어 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화량의 축소는 IMF, BIS 나 세계은행과 합력하는 각국의 중앙은행들과 월가 은행들의 공동 협잡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즉 국제 금융가들의 지대한 파괴공작이 없이는 경제구조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국제금융가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며, 금융 개혁을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운명은 그들한테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주식 시장의 붕괴 하나만으로는 사회 전체가 몰락하는 거대한 경제공황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공황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통화량의 축소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1929년 미국의 주식 파동의 경우에도 여윳돈으로 투기성 투자를 한 일부 국민들만 낭패를 보았을 뿐 국민들 전체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닙니다. 당시 대공황의 결정적인 이유는 1929년의 주식 파동으로 인한 타격을 빌미로 그 후 10년 동안 비밀리에 33퍼센트까지 통화량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공황과정을 통해 중산층과 빈민층의 자산이 소수의 국제 금융가들 손에 들어 갔습니다. 사회가 공황을 겪을 때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중산층이나 빈민층의 자산이 소수 국제 금융가들에게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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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예언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이것은 검은 말의 경제전에서 앞으로 더 큰 경제공황이 오더라도 성령충만하고 기쁨 충만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말세에 선교사명을 수행하는 성도들은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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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 감람유와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감람유와 포도주는 포도나무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나무 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5;7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 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에서 나무를 사람으로 비유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 는 가지니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나무를 사람으로 상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감람유와 포도주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포도주와 감람유는 말세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성령충만한 성도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신 것은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어떤 재앙과 환난 속에서도 천군천사들을 보내사 특별히 보호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다 보호받는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포도주와 감 람유의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충만한 그런 성도들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해치 말라 한 것이 아니요 포도주를 해치 말라 했으며, 감람나무를 해치 말라 한 것이 아니고 감람유를 해치 말라 했습니다. 포도나무나 감람나무의 열매인 포도와 감람열매를 짜서 나온 포도주와 감람유를 해치 말라 한 것입니다.
- 왜 감람유와 포도주를 성령충만한 성도라고 합니까?
첫째 이유는 감람나무와 포도나무가 그 뿌리를 가장 깊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 서 왠만한 가뭄에도 가뭄을 타지 않는 것이 감람나무와 포도나무의 특징입니다. 그 래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거의 비가 없는 지역인데 감람나무와 포도나무들은 땅에 깊이 뿌리를 박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기에 그 지역에서 포도나무와 감 람나무가 비교적 많은 대표적인 식물입니다. 그래서 감람유와 포도주를 성령충만한 성도로 보는 영적 이유입니다. 뿌리를 깊이 묻은 포도나무나 감람나무에서 생산된 포도주와 감람유는 성도가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말씀충만한 성도들 만이 마지막 환난을 끝까지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6말씀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그 율법을 즐거워 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에서 하나 님은 이런 사람을 마지막에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로 이 감람유와 포도주는 자기 본래의 형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감람 열매를 짜서 터져 나온 기름이 감람유이며, 포도를 짜서 터져 나온 포도액이 포도주 가 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본래 모습인 감람열매나 포도알이 터지고 깨져서 없 어져서 온전히 새로운 모습의 기름과 포도주로 변화된 모습이 감람유와 포도주입 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고 옛 사 람이 죽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영적 사람, 새로운 성화된 사람, 새로운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된 영적으로 무장된 사람만이 마지막 환난에서 이길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셋째 이유로 감람유와 포도주는 종말 시대 성도들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영적무장 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감람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시편 133편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 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내린 기름이 옷깃까지 내린 것 같다고 했는데 아론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에 의한 충만한 은혜의 기름부음을 의미 합니다. 사도행전 10:38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음에 저가 두루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성령을 기름으로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 징합니다. 주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두고 예수님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흘리시는 피로 상징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종말에 끝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해 줄 감람유와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을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신자나 다 보호한다는 말이 아닙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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