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에 언급된 일곱교회의 영적인 문제들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모든 교회의 실질적인 문제들과 동일합니다. 로마제국 시절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던 사탄의 역사는 지금도 모양새는 다르지만 여전히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영적 문제 들의 본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과 요한이 복음을 전하던 당시는 박해가 심해 교인들은 가정이나 동굴 같은 곳에서 많은 모임을 가진 시절이었 습니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는 특정 건물을 지목하는 것이 아닌 당시 일곱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편지였 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 교회란 에베소 도시 전체의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이었 고 라오디게아 교회란 라오디게아 도시 전체의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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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교회
에베소는 로마제국 시절 동서양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세계적인 무역 도시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집필했던 시절 에베소는 세계 각국에서 온 상인들이 식품, 향료, 옷감, 각종 금은 보석, 도자기 및 노예 판매까지 온갖 상 품을 거래하는 큰 시장이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더불어 에베소는 2만 5천명을 수용하는 대극장을 비롯하여 경기장과 체육관, 음악당, 도서관, 목욕탕 등 각종 편의시설 까지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시민들은 젖이 24개 달린 우상인 아데미 (Artemis) 여신을 섬기는 여성의 도시였습니다. 아데미 는 아기를 잘 낳게 해주고 다복을 준다는 풍요의 여신으로 로마시대엔 다이아나 (Diana) 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당시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에베소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풍요로왔던 이 도시는 훗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고 6세기 중엽 말라리아 병이 퍼지며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도시를 떠났고 12세기 회교도 터키 인들의 공격으로 남아 있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도 정든 도시를 버리고 다른 지 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하던 당시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팔아 큰 수입을 올리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 상을 숭배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돈벌이에 위협을 느끼자 시민들을 선동하여 아데미 여신의 이름을 외치며 바로 이 극장에서 바울의 동역자였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소동 을 일으켰던 곳입니다(행 19:21-41). 이 소동으로 인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전도여행을 떠났고 나중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돌아와 이 극장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돈욕심과 우상을 만들어 팔아 이윤을 챙기는 장사 는 진정한 복음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입니다.
이 극장에서 바울사도가 맹수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나운 사자가 경주장에 있던 바울에게 달려들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큰 우박이 쏟아 지고 강한 바람이 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구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 불어 싸웠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과 칼과 같은 인간의 힘으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로 바울사도가 이때의 위기를 극복하지 않았을까요?
에베소교회는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파하여 형성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천막짓는 동업자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는 바울사도와 함께 에베소에서 사역했고 바울의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한 사람이 12명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셨던습니다. 에베소의 수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고 많은 마술사, 천문학자와 이단 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뒤 그들이 귀하게 여기던 마술책들을 모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태워 버렸는데 당시 은 5만은 오늘날 억대의 돈과 같은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행 19:1-20). 이렇게 복음전파가 잘되며 부흥하던 교회가 왜 계시록에서는 첫사랑을 잃은 교회로 책망을 받게 되었을까요?
계 2:1-7에 보면 주님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모든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단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부지런하게 수고한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박해 시절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잃어버린 이들과 교리적 분쟁으로 인해 성도 간의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잃은 이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계시록 2장 6 절에는 에베소 성도들이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다 고합니다. 이 니골라당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니골라는 사도행전 6장 5-7절에 나오는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초기에는 대단한 열정과 경건한 생활로 이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타락하여 기독교를 떠나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니골라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영은 선하고 육은 본래 악하므로 육체가 저지르는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의 경건함과 순수성을 상실하는 교리를 당시 소아시아의 7대 교회에 침입시켜 혼란과 분쟁을 가져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의 순수성을 잃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이단들은 바로 교 회 내부에서 나온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려면 이런 이단 을 과감히 배척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교리적 분쟁과 함께 성도들의 분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성도 간의 사랑도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암적인 존재 로 교회에 퍼지게 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처음 구원 받을때 얻었던 뜨거운 첫 사랑을 잃었고 교리분쟁으로 성도들간의 사랑도 잃었습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 은 그들에게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촉구하고 계시며 그리 할 때에 비로소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을수 있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진정한 사랑만이 하나님과 인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며 우리 개개인의 영과 몸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진정한 생명나무의 열매는 결국 사랑에서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는 결국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진정한 복음을 잃어버린 성도들은 후에 지진으로, 말라리아 병으로 그리고 회교도 터키인들의 칼날에 죽어갔습니다. 한 때 찬란했던 소아시아의 교회 중심지 중 하나였던 에베소는 교회의 기능을 상실 하게 되어 결국은 계시록의 예연대로 교회의 촛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 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도 이런 모습이 아닌지 한번 뒤돌아 보아야 되지 않 을까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2. 서머나 (Smyrna) 교회
서머나 (Smyrna)는 오늘날 터키의 3대 도시중 하나인 이즈미르 (Izmir) 가 위치 한 곳에 있었습니다. 인구 400만의 대도시인 이즈미르는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있으며 터키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에베소와 같은 다 른 7대 교회들은 오늘날 조그만 소읍에 폐허로 남아있을 뿐인데 서머나는 유 일하게도 지금까지 활발한 대도시가 유지되어 있는 곳입니다. 푸른 산과 잔잔한 에게해 바다가 만나는 비옥한 땅 그리고 온화한 기후 때문에 서머나는 로마시절 천연의 아름다운 휴양지로 명성을 떨쳤고 로마인 부자와 귀족들이 몰려들면서 에베소와 더불어 세계적인 상업 도시로 번성했습니다. 이에 부응한 서머나 시민 들의 주된 고민거리는 좀더 자극적인 장사 방법으로 로마인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였고 로마 황제를 신격화하여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 최초로 건 축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로마제국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 고 있는 도시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리스의 우상들 대신 로마 황제를 신으로 믿을 정도였으니까요.
폴리갑 주교는 사도 요한에게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을 영접한뒤 서머 나 교회 감독으로 봉사하며 사도들로부터 배운 교훈을 교회에 올바로 전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박해가 심해지면서 폴리갑을 체포하려 사람들이 들이 닥쳤을때 그는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쉽게 다른 집으로 도망칠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다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하며 쾌활하고 온유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한 뒤 제자들 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여 가는 길에 앞서 마음껏 음식을 먹도록 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만 방해를 받지 않고 기도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 니다. 그들은 허락해 주었습니다.
폴리갑은 굳건하고 장엄하면서도 온유한 얼굴을 가진 노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 가 충만한 그의 기도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와 같이 훌 륭하고 경건한 사람을 체포해서 사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유감으로 생각했 습니다. 서머나 시로 끌려간 폴리갑을 설득하려던 헤롯왕에게 그는 끝내 우상을 섬길수 없다고 했고 결국은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화형을 당하면서도 폴리갑은 확신과 기쁨이 가득찬 얼굴이었고 불길이 크게 솟 아올랐을 때 기적적으로 불꽃이 그를 건드리지 않고 마치 바람을 맞은 돛처럼 아치의 형태로 그를 담처럼 애워쌌다고 합니다. 그 한가운데 선 폴리갑의 몸은 고통에 신음하는 불타는 육체가 아니라 마치 용광로에서 정련 되는 금이나 은과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광경에 너무나 당황한 박해자들은 결국 집행인들에게 그를 칼로 찔러 죽이라 명령했고 칼이 그의 몸을 관통하자 피가 솟구치더니 불이 순식간에 꺼져 버렸고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들은 택한 자의 순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가장 큰 칭찬과 권면을 받 은 교회임을 알수 있습니다 (계 2:8-11). 그들은 로마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신앙 의 정절을 지킴으로 인해 여러 일자리와 재산을 몰수당했고 가난과 궁핍속에 살 며 목숨도 많이 잃었습니다. 이 당시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환락의 인파로 흥청 거리는 화려한 풍조 속에서 절제와 고난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복음은 좀처럼 서머나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이 늘어나면 시민들의 유흥 생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포도주 판매를 비롯한 각종 상업의 활성화에 도 큰 지장이 되기에 서머나 정부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말살 시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직접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죄를 진 인간들의 마음속에 들어 앉아서 이들 을 조정하여 못된 일을 하는 모습을 인류사를 통해 자주 보게 됩니다. 서머나에 서도 사탄의 회당에 속한 거짓 유대인들을 이용하여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사람들이 로마 제국과 황제 숭배에 충성을 다할때 이곳의 소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담대하고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무서운 가난과 환란, 박해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분리시키려는 사탄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약속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계 2:10).
소아시아의 7대 교회 중 서머나는 유일하게 오늘날까지도 대도시 (이즈미르)가 유지되어 있을뿐 아니라 다수의 교회들 또한 존재하고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 시절 서머나의 기독교 공동체는 활발했고 이곳에서 대주교가 나오기 작했습니다. 오토만 제국 시절인 18세기에는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슬람 이었지만 19 세기부터 그리스와 서유럽에서 이곳으로 이민을 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복음화가 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는 다시 기독교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지금의 이즈 미르는 이슬람교가 국교인 터키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카톨릭 교회와 그리스정교회, 성공회가 존재하고 있고 개신교회들도 여럿 있습 니다. 이 모든 것이 충실된 노력을 통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될 초대의 서머나 교회의 산 증거물과 열매가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3. 버가모 (Pergamon) 교회
버가모의 고대명은 퍼가몬 (Pergamon) 이고 현재명은 버가마 (Bergama)라는 이름을 가진 인구 6만의 터키의 조그만 도시입니다.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90km에 위치하고 있는 버가모의 특징은 로마시절 에베소나 서머나와 같이 해안을 끼고있는 무역의 도시가 아니라 내륙에 있는 정치적 중심의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한때 로마제국은 버가모를 소아시아 전체의 행정 수도로 삼기도 했 습니다. 로마시절 이전 이곳에는 버가모왕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버가모 왕 국은 유능한 통치자였던 유메네스와 앗탈레스 1,2세 왕들의 통치하에 한때 큰 번영을 누렸으나 나중에 강대한 로마제국에 자진 헌납으로 인해 편입되어 버렸고 로마는 이를 배려하여 버가모가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잃지 않도록 소아시아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아시아의 도시들은 서머나처럼 로마황제의 신전 건축을 큰 영광으로 여겼고 이 특권을 따내기 위해 도시들간에 많은 경쟁이 있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버가모 주민들은 높은 산위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트라얀 (Trajan) 황제 신전 건축권을 따냈습니다. 버가모는 우상 숭배가 극심한 곳이었 습니다. 이 곳에는 로마황제의 신전과 더불 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섬기 는 큰 신전 또한 6개가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신화의 모든 신 가운데 최고로 불리는 제우스 (Zeus) 신전 이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발굴된 신전의 유물들은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고 버가모에는 단지 그 터만 남아있습니다. 도시의 영웅들을 신격화 하여 섬기는 헤룬,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Dionysus), 전쟁과 공예의 여신인 아데나 (Athena),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 (Demeter)의 신전들도 있었고 뱀 형상을 가진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온 (Ascl epius)을 섬기는 의과대학병원도 버가모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요한계시록에는 버가모를 “사단의 위 (왕좌)” 가 있는 곳(계 2:13) 이라고까지 묘사되었을까요? 요한계시록의 버가모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듣고 있습니다. 서신에 보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라고 되어 있는데 이 검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심판권을 가진 권위의 상징이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사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 하여 (히 4:12)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의와 불의를 단호히 구별하고 자르시는 성령의 힘입니다.
사도 바울과 요한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소수의 버가모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그리스 신들을 숭배하는 주위환경의 혼잡함과 더불어 로마의 황제까지 “주 하나님”으로 숭배하도록 강요를 받았고 극심한 부추김과 박해를 견디지 못해 세상과 타협하는 발람이나 니골라당의 무리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곧 주변 환경에 따라 신앙이 변하지 않는 자와 변하는 자들이 확연하게 구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발람 선지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면서도 예물에 눈이 어두워 정 치가인 발락과 결국은 타협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범죄케 한 자로 불의의 삯과 타협하다 멸망한 자였습니다 (민 25:1-18; 31:16). 니골라는 초창기에는 열심히 집사생활을 하다 갑자기 타락하여 이원론, 곧 육은 악하고 영만이 선하므로 육이 원하는 대로 무슨 일을 해도 구원받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자유행위를 주장했습 니다. 그는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입시켰고 황제숭배도 애국의식의 일환으로 간주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러한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 이 많다는 것이었고 이들은 이방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숭배자들과 타협 하는 영적인 음란 행위를 범하였습니다. 복음의 진리란 결코 세상과 타협되어 서는 안되 며 복음 그대로 순수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다른 교훈과 섞일때 교회가 급속히 타락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로써 오늘날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극심한 시련과 박해가 있을지라도 안디바와 같이 순교의 신앙으로 교회의 순결을 지키는 자들은 죄사함과 영생 보장을 의미하는 감추어진 만나와 함께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받게 되고 이 새로운 이름은 받는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알수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계 2:17).
4. 두아디라 (Thyatira) 교회
두아디라는 자주색 옷감 염색 기술이 발달한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때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두아디라 출신의 루디아라는 이름의 여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녀의 가정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고 사도행전 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16:14-15). 당시 두아디라는 자주색 옷감 염색 이 외에도 면직, 모직, 가죽, 빵제조업, 노예 매매, 질그릇 등 많은 수공업이 번성했 습니다. 단결성을 중시하는 도시의 특성 덕분에 각 업종들은 계조합을 구성하여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버가모처럼 많은 그리스 신전이 있지 는 않았지만 도시의 수호신으로 트림 나스 (Tyrimnas) 라는 우상을 섬겼고 나중 에는 태양신 아폴로가 성육신했다 믿으며 트림나스와 동일시했고 후에는 황제 숭배까지 가미시킨 그들만의 우상숭배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두아디라에서 성행하던 계모임들의 조합원들은 트림나스 신전의 후원조직으로 계돈의 일부를 신전에 바쳐야 했고 계 모임날에는 신전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고 신전에서 일하는 승려들과 음행을 하 였습니다. 따라서 동업조합 모임은 항상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 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당시 두아디라 교인들 중 자신의 생존기반을 잃어버 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교의 제사와 거기에 수반되는 부도덕한 관습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계시록에는 이들을 “이세벨을 용납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계 2:20).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7 교회에 보내는 서신들 중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서신의 내용이 가장 긴 것을 볼수 있습니다 (계 2:18-29). 두아디라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았고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참신앙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함께 새벽 별을 주신다는 큰 보상의 약속 또한 주어지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트림나스 신전에서 음행을 저지른 여승려를 교회에서 선지자로 받아들인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들어온 이 여자는 마치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이세벨처럼 성도들을 범죄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탄 이 긴 역사를 통해 신자들을 타락시키는 교묘한 무기인 음행 과 음란을 퍼트린 이 여자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의 원칙에서 벗어난 이들에게는 “침상에 던지고 환난 가운데 던지며 사망으로 자녀를 죽인다”고 무서한 경고가 주어졌습니다(계 2:22-23).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의 특성상 구성원으로 하여금 음란이나 우상 숭배와 같은 죄를 범하게 하는 일들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치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이 계조합에 가담해야 했고 트림나스 신전에 가서 음행해야 했던 일처럼 오늘날 직장 생활도 각종 술수와 음행, 돈조작 등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위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고 이런 행위를 저질렀던 과거를 회개하라고 주님께서는 촉구하고 계십니다.
끝까지 충성한 두아디라 성도들은 신앙의 승리자들이 되어 생명의 새벽별과 함께 마치 철장으로 질그릇 깨는듯한 힘있는 권위로 만국을 다스리게 된다고 약속받았 습니다. 우리가 지금 두아디라에 살고 있었다면 과연 참된 신앙인들로 인정받아 이런 축복을 받을수 있었을까요? 우리 모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순수하고 온전한 믿음을 붙들어 지키는 신앙의 승리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5. 사데 (Sardis) 교회
에게 해와 소아시아의 내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사데 (Sardis) 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고 암벽이 있는 천연적인 요새로서 기원전 700년 경 소아 시아에서 가장 부강했던 리디아 (Lydia)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리디아 왕국은 소아 시아의 7개 교회가 있는 모든 도시들을 포함한 방대한 영토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상업과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역사는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보여지며 메노로지온 (Menolo gion)에는 바울의 제자인 클레멘트 (Clement)가 처음 사데 교회의 감독이었던 것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박해시에 사데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교회는 마치 사데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크게 부흥 했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모습이었습 니다.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황은 서머나 교회와 완전 정반대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차츰 영적으로 살아나는 교회인 반면 사데 교회는 에베소 교 회와 같이 처음에는 뜨겁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 죽어가는 교회였습니 다. 한때는 순교하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던 교회가 서서히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 져 가는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계 3:2) 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럼 왜 사데교회의 성도들은 처음의 그 뜨겁던 열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금화가 풍부한 세계적인 무역 도시, 요정이 많고 항상 연회와 축제, 미녀들과 오락이 넘쳐나는 세속의 화려함 속에서 성도들은 점점 나태해져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고 신앙은 서서히 그 자리를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들이 바로 돈과 쾌락과 권력입니다. 사데는 겉으로 보기에는 각종 우상의 신전이 범람했던 버가모 등 타 도시에 비해 우상숭배가 적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무서운 우상, 곧 마음을 앗아 가는 돈과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있었고 서서히 그들의 신앙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자랑했던 사데성이 방어를 허술하게 했던 남쪽 가파른 절벽으로 페르시아군이 쳐들어와 도시를 함락시켰듯이 사탄은 항상 성도들의 나태한 틈을 타고 들어와 넘어뜨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영적인 방어를 게을리하지 말고 회개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면 주님께서는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 3:3) 라고 하셨습니다.
사데 도시같은 황금 만능주의와 각종 음행이 범람한 곳에서 살면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킨 소수의 성도들에게는 새 생명과 성결의 상징인 흰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고 주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하셨습니다.
주님! 물질만능이 팽배한 오늘날에도 저희들이 성결한 믿음을 굳건히 지킬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사데 교회의 승리자들처럼 생명책에서 저희들의 이름도 흐리지 아니하는 영광을 누리게 저희의 삶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사랑과 긍휼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빌라델비아 (Philadelphia) 교회
빌라델비아 (Philadelphia)의 이름은 필리아(사랑)와 델피아 (형제)가 합쳐진 복합 명사로 버가모 왕국의 통치자였던 앗탈레스 (Attalus) 2세와 유메네스 (Eu menes) 2세 왕자들의 형제 사랑을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빌라델비아 가 버가모왕국의 통치하에 있던 시절 이곳은 사데, 버가모, 트로이를 거쳐 로마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버가모 왕 국의 앗탈레스 2세 왕자는 정사와 병법에 능통하여 형이었던 유메네스 2세 국왕이 원정을 나가면 대신 국정을 맡곤 했습니다. 국민들에게 유능한 통치자로 큰 인정을 받았던 앗탈레스 왕자의 인기를 간파한 로마제국은 그에게 형이 나간 틈을 타 왕좌에 올라 버가모왕국의 왕이 되라고 충동질을 했지만 그는 이를 꿋 꿋이 거절하고 형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형이 죽고 난뒤에 자연스럽게 왕위에 올라 버가모 왕국을 통치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개인의 욕심을 물리 치고 자신을 믿고 맡겨준 사람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할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계시록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지켜서 칭찬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 그대로 적은 숫자의 교회 였지만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도 선교에 힘썼던 교회였습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능과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여신 문은 아무도 닫을수 없고 닫으신 문은 아무도 열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계 3:7). 교인들의 숫자는 작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많는 박해와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굳건하게 붙들었습니다. 서머나교회에서 폴리갑이 순교하던 당시 빌라델비아에서도 상당수 성도들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로마제국 시절 소아시아의 각 도시마다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성도들의 성 숙한 믿음과 충성심, 사랑의 행위를 통해 소수의 뜻있는 유대인들은 많은 도전을 받았을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유대인들중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 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 3:9)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빌라델비아 교회는 온 세상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그 시험을 면하게 되는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계 3:10-11).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잦은 곳이었습니다. 한때는 소아시아에서 이곳 만큼 잦은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는 없었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기둥이 튼튼하면 강 진에도 견딜수 있듯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기둥은 튼튼했습니다. 그들의 집 건물 기둥은 약했을지 몰라도 굳건한 믿음을 지킨 그들에게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성전의 기둥으로 삼겠다고 하신 약속 (계 3:12)이 얼마나 저희들에 게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지진의 불안도 시험도 없고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 는 기쁨이 넘치는 천국에서 귀하게 쓰임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얼마나 그들 은 희망을 가졌을까요? 빌라델비아의 성도들은 믿음을 굳게 잡아 “아무도 그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1)고 권면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유행했 던 광적인 신비주의 사상 몬타니즘 (Montanism) 에 휩쓸리지 말라는 권면으로 해석됩니다
7. 라오디게아 (Laodicea) 교회
라오디게아는 오늘날 섬유공업이 활발한 신흥도시인 데니즐리 (Denizli)와 세계 적으로 유명한 온천 관광명소인 파묵칼레 (Pamukkale)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 다. 그리고 라오디게아에서 불과 16km 떨어진 곳에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골로새 (Colosse)가 있는 흥미로운 지역입니다. 파묵칼레는 유황과 탄산수 그 리고 다양한 칼슘이 들어있는 온천물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와 접촉하여 석회석 으로 변해 생긴 미네랄 테라스의 모습들을 볼수 있습니다. 겨울에도 늘 섭씨 35-45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이 온천에서 수영이 가능하며 파묵칼레의 물은 특히 심장병, 소화기 장애,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과거의 로마의 황제 들도 찾았다는 국제적인 관광지입니다. 오늘날 이 온천지역의 이름은 히에라 폴리스 (Hierapolis)이고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4장 12-13절에 “히에라 볼리”로 언급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온천에서 불과 1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도시로 에베소와 시리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상업이 번성했고 금융업 또한 활발하여 많은 은행과 고리대금업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넓고 기름진 땅에서 목양과 목화 재배가 활발하여 한때 로마의 상원들이 입고 다녔던 고급 옷들은 거의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의학이 발달하여 의과 대학과 더불어 유명한 약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들도 있었습니다. 히에라볼리의 온천물이 제사에 바쳐지기 위해 도살된 짐승들의 피와 오물 등으로 자주 오염되어 수영을 즐기던 사람들이 때때로 귀앓이와 눈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때마다 라오디게아의 토산약으로 유명했던 고약과 안약들이 즉효였다고 하고 또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주후 17년과 60년때 대지진이 일어나 막대한 피해 에도 불구하고 소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전혀 로마나 외부의 원조를 받지 않고 시를 재건할 정도로 탄탄한 경제력을 갖춘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버가모와 같이 우상숭배가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큰 규모의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디오니소스, 헬리오스, 네메시스, 세라피스, 헤라, 아데나, 아프 로디테, 카리안 등 많은 우상신전들이 있었는데 라오디게아에서 황제숭배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2세 기에서 4세기까지 우상 숭배를 거부한 교인들이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 나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던 부유한 도시였던 라오디게아는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사데교회처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라고 예수님께서는 책망하 셨습니다 (계 3:15-16).
라오디게아는 은행업, 무역 또는 고리대금으로 많은 돈을 번 부자들이 즐비했고 심지어는 집집마다 금덩어리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주말이면 고급 모시 옷을 입고 요정에서 산해진미를 먹고 최고급 술을 마셨고 스스로 “나는 부 자라 인생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편안한 삶이 계속되었 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육의 삶은 풍요로왔지만 그들의 영적인 삶은 곤고 하고 황폐하며 눈먼 장님에 벌거벗은 거지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육신의 편안함 과 안락함에 젖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 영혼의 안식과 만족은 전혀 알 도 느껴보지도 못하는 영적인 소경들이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보다는 세상 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결국 교인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먼저 추구하게 되었고 영적인 축복에는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본인들 스스로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계 3:17).이러한 상황은 마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오는 미지근하고 오염된 온천물과 흡 사했습니다. 그곳에서 수영하던 이들이 눈병에 걸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귀앓이로 잘 듣지도 못했듯 이들의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그 음성을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화려한 금을 가지고 고급 모시 옷을 입으며 안약을 바르던 라오디게 아인들에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라” (계 3:18) 고 말씀하신 참 뜻을 그들은 과연 깨달았을까요? 믿음 때문에 세상의 좋은 것들을 모두 다 잃어버려도 기뻐하고 주님을 찬양할수 있는 마치 불로 연단된 금과 같은 영적인 부요함이 그들에게는 필요했습니다. 영적인 배고 픔과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영적인 축복을 발견할 수 없습 니다. 많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세상을 붙잡다가 잃어버린 자들이 되었기에 미 지근한 신앙을 청산하고 더 뜨거운 믿음으로 무장하여 진정한 구원을 받고 영적 인 부유를 누리라고 주님께서는 권면하셨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 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7) 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오늘날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삶이 과연 현대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삶은 아닌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환경적 풍요를 믿고 살다보면 언젠가 그 풍요가 우리의 영혼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날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죽음 이라는 벼랑앞에 서는 날이 닥치면 세상의 풍요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에 의존하지 말고 그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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