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교회 가는 길

어떤 주일 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보라가 치는 험한 날씨였습니다. 토론토 누나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곳은 날씨가 좋다고 해서 가다보면 날씨가 좋아지겠지 하고서 11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8시에 교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운전하기에 험악한 날씨 때는 기상청에서 운전하지 말라는 예고를 합니다만 우리는 라디오를 들어도 무슨 뉴스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만사불구하고 교회를 가는 것입니다.

하이웨이에는 지나는 차량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만 눈보라 치는 눈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차가 멈추어 섰습니다. 시동을 다시 걸어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한참 이 방법 저 방법을 써봐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죽는 것 겁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교회로 가는 것은 천국을 향하여 가는 길인데 이 참에 천국가게 돼서 잘됐다 쉽었습니다. 그런데 걸리는게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죽어 천국가는 것은 좋은데 우리가 교회 가다가 죽었다고 부정적인 소문으로 하나님께 영광 가리우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 때 무심코 다시 시동을 걸었는데 발동이 되었습니다.

한참 이동하다가 다시 시동이 꺼졌습니다. 다시 그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죽는 것은 하나님께 가게 되어 기쁘지만 혹시 하나님께 영광 가리울까 두렵습니다.  기도한 후에 다시 시동을 걸었더니 발동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를 지나치는 양방향의 차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토론토에 거이 가까이 왔을 때에 다시 시동이 꺼졌습니다. 이제는 그 기도도 효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얼기 시작했습니다. 유리창이 뽀얗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바깥보다 차 안 이 더 춥기에 차 밖으로 나와 한 아이는 내 품에 안고 한 아이는 아내 품에 안고 동동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밖에서 떨고 있다가 지나온 길을 처다 보니 아지랑이 같은 것이 아련히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계속 주시했더니 자동차였습니다. 그것도 토잉카였습니다.

그 차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자동차를 뒤에 싫고 우리 네 식구는 운전석에 앉아서 오는데 운전사가 말하기를 토론토 외곽에 첫 주유소에 차를 내려 줄텐데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발동을 걸면 시동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한 시간 후에 시동이 걸려 누나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밤 8시였습니다. 하루 12시간 걸려 토론토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 다음 날은 햇빛 찬란한 날씨였습니다.

 

교회 건축헌금

그 당시 1975(이민 온 해) 쯤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확장을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에 목사님께서 교회건축을 위해 일주일 금식기도를 하시고 오셔서 교회 앞에서 건축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성도님들이 각자 형편에 맞게 월정 성전건축헌금을 작정하시면 그 합계를 계산해서 그 돈으로 은행에서 대출금을 빌려 교회당을 구입하거나 건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은 1만불을 현찰 로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로님 한 분을 지명하면서 장로님은 부자이시니까 2만불을 헌금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건축을 반대하는 분이셨습니다. 그 장로님으로부터 아무 반응이 없었고 예배분위기는 싸늘했습니다.

그 때에 내 마음에 음성이 들리기를 네가 일어서서 이해 안에 1만불을 내겠다고 약속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목사가 어렵게 될 것이고 교회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했습니다.  나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나야 말로 그 당시 형편에 절대로 전혀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돈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제 사정을 가장 잘 아시 잖아요. 장사를 시작한지 몇 개 월 되지도 않았고, 그 당시 첫 번째 유류 파동으로 인해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고, 무엇보다도 가게를 살 때에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 사람이 가게를 빨리 팔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을은 만명 정도 되지만 담배 집산지였습니다. 5월에서 10월까지 담배를 키우고 잎을 따고 말리고 하는 과정에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기에 캐나다 전역, 미국에서, 남미에서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여 왔습니다. 그 때는 유동인구가 배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월맏이 이 마을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 마을은 토요일 오후 1 시에 문닫고 평일에는 오후 6시, 주일에는 문을 닫고 장사를 해 온 곳입니다. 월맏이 들어 오면 그 장소에서 그로서리 등 모든 것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타운 비즈니스는 망하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미리 그곳을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가게를 샀는데 악하게도 그 주인이 가게를 팔 때에 주위에 있는 도매상 회사들에 외상으로 물건을 사서 가게에 꽉 채우 고 가게 재고물건들로 돈을 받아 챙기고, 주위의 거래하던 모든 회사들에 산 물건들을 갚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 사람에게 물건을 대 준 도매상들이 나에게 돈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갚지 않으면 물건을 더 이상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하여 거래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에어콘이 고장이 났는데 특수한 기계라서 한 곳에서만 그 기계를 취급하는데 옛 주인이 자신들에게 아직 돈을 주지 않았기에 그 돈을 내가 갚으면 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제 가게는 Beauty shop였습니다. 에어콘이 작동되지 않으니 삼퓨, 콘디스너 등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것입니다. 주위의 도매상들이 물건 을 공급해 주지 않아 120마일의 토론토에 가서 물건을 공급해 오던 때였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무섭고 괴로워 가게 지하실로 내려가 땅을 치며 통곡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때인데 내가 만불을.  ‘하나님, 나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돈을 빌려서 가게를 시작 했는데 빌린 돈도 갚을 길이 없는데 건축헌금 만불이라뇨, 안됩니다. 하나님, 그리고 내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 장소에 같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빌린 돈도 갚지 않고 건축헌금을 바치 다니요. 그 사람들 중에 그 장로님도 내게 만불을 빌려주셨는데 그런 분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그것도 장사가 잘되면 건축헌금도 하고 빚도 갚을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게 되지 않을 형편입니다. 나는 아닙니다. 하나님, 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 앞에서 헌금하겠다고 약속하고 다 갚지 않는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세요 저는 못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력하게 나를 더 압박합니다. 빨리 일어나 헌금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몇 초 사이가 10년이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올해 12월 31일까지 만불을 갚겠 다고 건축헌금 약속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 뒷 좌석에 앉아 있던 이모님이 일어나 자신도 만 불을 내겠다고 약속하고 또 한 청년이 만불을 약속하고 그 후에 출장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내 친구 청년도 만불을 약속함으로써 그 목사님의 위기가 해결되고 교회건축도 한 방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한 후 정신이 어지럽고 몽롱해저서 교회의자에 누웠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30분간 누워있다가 겨우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가 6월달이었습니다. 앞으 로 6개월 후에 돈 한 푼도 없는 내가 만불을 갚아야 합니다. 어디에서 그 돈이 나온답니까? 집에 돌아와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한 시에 ,두시에 깨어 일어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도와주세요.

그런데 어느날 4천불 첵크가 배달되었습니다. 무슨 돈인가 하면 내가 치료받는 동안에 상해 보상금으로 한달에 생활비로 500불씩 받고 있었는데 장사를 시작하자 마자 그 돈을 끊었습니다. 장사를 하게 되었으니 먹고 살 수 있으므로 생활비를 안주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치료받고 있는 중이기에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지만 더 이상 보내지 않았습니다. 나도 포기를 했습니다. 그런지 8개월 만에 갑짜기 예상치도 않게 첵크가 온 것입니다. 그 돈을 받으면서 내 의문이 풀렸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건축헌금 약속을 하도록 강박하신 분이 나를 망치게 할 악마 귀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구나 깨닫고 그 다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후 그 돈에 2천불을 더해 6천불을 헌금했는데 벌써 12월 초가 되었습니다. 불경기라서 성탄절 대목도 기대할 수 없어 타운가게들은 성탄절 물건들을 들려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한달 동안에 나머지 4 천불을 12월 31일까지 갚아야 하는데 이 성탄절 대목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도매상에게 가서 성탄절 선물될 만한 것들과 세일즈맨들이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 마다 받아 진열대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해 다른 가게들에 들어가도 살 물건이 없기에 우리 가게에 사람들이 와서 닥치는 데로 물건을 사가서 진열대들이 텅텅 비었습니다.

드디어 12월 31일이 왔습니다. 그해는 12월 31이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말한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습니다. 1월달 2월달은 사람들이 성탄절에 돈을 다 썼기에 비즈니스들이 이 시기에 아주 어렵게 됩니다.  내 경우 도매상들과 세일즈맨들에게 갚아야 할 돈까지 몽땅 털어 건축헌금 했기에 갚을 돈이 없습니다. 돈을 갚지 않으니 도매상들이 법정에 고소를 하고 물건공급을 중단하고 세일즈맨들은 돈내라고 아우성입니다. 홀세일에서는 월요일 아침에 딜리버리맨들이 와서 물건을 풀고 오후에 세일즈맨들이 와서 돈을 건네 주는데 어느 월요일 아침에 물건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와야 할 세일즈맨이 오지 않은 것입니다. 실은 세일즈맨이 오면 책크를 주어야 하는데 줄 돈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걱정을 했는데 오지 않아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모릅니다. 일주일 더 장사해서 그 다음 주일에 세일즈맨에게 왜 지난 주에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독감이 들어 움직일 수 없었는데 딜리버리 맨에게 전화해서 물건가저 갈 때에 책크를 받아 오라고 할려고 그 사람 전화번호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법원에서 출두하라고 통지가 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 오는 길에 반대 방향으로 가는 큰 추럭에서 큰 바뀌가 굴러 와서 내 차를 박았습니다. 집에 돌아 왔더니 딸 애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는데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한 과목 시험을 쳐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머리가 혼란스럽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때에 음성이 들여 왔습니다. 사탄의 음성이었습니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예수 믿어 득 본게 머 있느냐? 나와 동업 하자, 그러면 내가 부자되게 해 주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미국 교계에 큰 소용돌이가 있었습니다. 신문에, TV에 오르내리던 사건인데 어느 날 프락트 엔 겜불이라는 회사의 회장이 미디어에 출현해 말하기를 자기가 부자가 된 것은 어느 날 꿈에 사탄이 나타나 자기 회사가 만드는 모든 물건에 자신이 제시하는 회사로고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그 로고는 동그란 원 안에 한쪽 벽에는 수염이 달린 영감의 모습(사탄을 의미)하고 다른 쪽은 큰 별 그리고 여러 개의 작은 별이 그려진 로고였습니다.

이 회사는 생활용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인데 치약인 크레스트, 아이들 기저귀 펨프 등등이었습니다. 그 일로 교계에서는 프락트 엔 겜불 회사 물건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때에 사탄이 내게 찾아와 자신과 동업하자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제안을 받아 들일 사람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사탄은 나를 못살게 굽니다. 아, 내일 시험을 쳐야 하는데, 잠이라도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좋겠는데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온 밤에 온 방을 딩굴며 헤맸습니다.

그렇게 시달림을 받다가 내가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나는 부자가 안되도 좋다. 내가 예수님과 동업함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이 되어도 좋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병에 걸려도 좋다.  그러나 너와는 결코 동업하지 않으리라고 선언을 하자 마귀가 내 몸에서 쑥빠저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에 떨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동녘에 찬란한 햇빛이 방 안으로 비쳐왔습니다.

콤퓨트 공부를 졸업하고 토론토에 와서 직장을 구하는데 1년이 지났습니다. 제 동기들은 직장을 다 구해서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장모님과 제 아내가 어느 큰 몰의 에스클레이트를 타고 올라 가는데 장모님이 몸 균형을 잃으셔서 미끄러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그 밑에 있었기에 장모님은 괜찮았고 아내가 응급으로 병원에 실려가서 여러가지 조사를 받다가 유방암 3기인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 주 목요일에 담임 목사님이 신문광고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미국에서 오시는 신유집회 하시는 목사님을 토론토의 한 교회가 초청해서 그 교회당이 아닌 한국 성도들이 많이 사용하는 미국 기도원을 빌려 집회를 한다는 광고였습니다.  우리는 급해서 그 집회에 가서 안수 기도 받고 내려 오기로 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올라갔습니다. 나는 집회 때에 두 아이들을 베비 시터 하기 위해 뒤에 있었고 아내는 앞자리에 가 앉게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다 끝나고 나서 그 목사님이 오늘은  첫 날이라서 안수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실망해서 내게 와서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내가 말씀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민생활 하면서 한번도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였는데 말씀의 은혜가 내게 넘쳤습니다.

내가 제안하기를 집에 가지 말고 아이들 우유, 기저귀를 빌려 채우면서 여기 집회에 계속 있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말씀의 은혜도 받고 신유의 은혜도 받고 은사도 받게 되었습니 다. 아내는 고등 학교 때에 엄마와 함께 청천산 기도원에 가서 산 기도할 때에 방언기도, 통변, 예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장로교회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므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예언의 은사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방언기도를 받고 싶었는데 생 솔개비에 불 붙이듯 아무리 해도 안되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세번이나 기도해서 겨우 랄랄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방언을 정말 받았는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러나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것이나마 잊지 않기 위해 집에 와서 하루 종일 방언기도 합니다. 차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혹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집에 왔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방언기도 하는데 찍찍 짹짹 하면서 내 입 안의 혀가 왼쪽으로 오 른 쪽으로 위로 아래로 굴릴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그 밤에 잠을 자는데 밤 한시쯤 되어 잠이 깨어지는데 발에서부터 점점 위로 잠이 깨어지더니 입에까지 이르렀을 때에 입에서 방언이 터지는데 언어로 하는 방언이 나왔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결심

나는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을 치는 십년에 손도 다치고, 장사도 말아먹고, 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직장을 구해도 안되고 이제 아내마저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두손 두발 다들고 나는 이제 죽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목사가 되라면 되겠습니다하고 마음 먹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집회 때에 강사 목사님과 신앙상담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여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기는 하되 절대로 장로교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 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 성도들이 나에게 신학교 가라고 했을 때에 그 장로님은 내가 웨스트 민스트 (필라델피아에 있는 고신 측에서 신학 유학 보내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면 학비 , 생활비를 데 주겠다고 했습니다만 장로교 목사는 안되겠다고 거절했었습니다.

나는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도망이민을 온 것과 장로교 신학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가진 것들이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단의 교리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내가 도망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신학교 교리나 교단 교리에 묶이면 그 교리 안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저를 계시록을 말하게 하고 종말을 외치는 자로 세우시기 위해 부르셨는데  종말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교단에서 주장하는 종말론만 말하게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도 교단 교리와 맞지 않으면 말하지 못합니다.

내 경우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니다가 미국 신학교에 유학 온다면 쉽게 학위 따서 목사가 되든지 아니면 신학교의 교수가 되는 것은 따논 당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고모부님이 고신측 큰 교회 담임목사님이셨고 증경 총회장이셨고, 이모부는 총회 측 증경총회장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제가 교단교리에 묶이기를 원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 교단 PENTICOSTAL HOLINESS CHURCH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 교단은 아주 보수적이면서 또한 오순절 교단이요 세계적으로 큰 교단이지만 그 교단에 속한 이민자 교회에 대해서는 관대했습니다.

 

나의 신학교 준비, 기도, 금식

이제 목사가 되기로 했으니 목사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동네 숲으로 가서 아침마다 큰 소리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 아내에게 방언기도, 예언기도를 받기 위해 모여 들고, 초청하는 집집 마다 가서 소규모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열흘 금식기도를 하려 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금식기도 하던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오셨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아내에게 사고가 생겼으므로 집에 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무슨 사고인가를 물었더니 토요일에 제 아내가 자기에게 전화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배 중에 사람들 앞에서 제 아내가 목사님께 안수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내 아내 말대로 안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교회가 벌집 쑤시듯 야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게 무슨 변고 인고? 내가 목사 안되겠다고 10년 동안 도망친 끝에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만 계셨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한국에서 교단 책임자가 와서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를 교회 앞에서 제 아내가 잘못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일로 교회에서 매장되고 토론토 교계에 소문이 나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갈 수 없게 되어 미국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건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꿈으로 알려 주신 것이 있습니다. 같은 날에 아내와 내가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 집회가 순복음교회 예배였는데 방언을 하는 집회였습니다. 그 때 나는 유대교인었던 사울과 같이, 장로교의 교리에 열성 분자로서 방언을 반대하고 순복음교회를 사람들이 이단이라 하기에 나 역시 순복음 교회를 이단으로 추정하고 열심히 반대하던 때였습니다. 순복음교회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반대 하려 했던 열성분자였습니다.  아니 글쎄, 우리가 그런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똑 같은 꿈을 꾸게 되면서 순복음이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때였습니 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신유집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영의 세계(Spiritual world) 탐사

어느 주일날 아침이었습니다. 아내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교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데로 따라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아내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데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에 가고 있는 저 차를 따라 가라는 둥 그래서 한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예언을 강조하는 교단에 속한 교회였습니다. 교단이름도 Prophetic Apostolic  미국인 교단이었습니다. 예배가 시작 되었습니다. 강대상 의자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고 목사님이 사회를 보는데 제 아내를 가리키면서 강단으로 올라 오라는 것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제 아내가 낯선 교회에 강단에 앉아 있다가 그 목사님께 자기에게 안수를 받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도 아무 동요 없이 잘 마치시더군요. 나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들이 무엇인가?  지금 깨달았습니다. 우리 본 교회 목사님과 교단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했었던가를 하나님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고 목회자가 교인을 영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데 강단에서 사람들 앞에서 안수를 받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분별에 전혀 무지했던 것입니다. 은사를 추구하는 교회서는 영분별이 아주 민감해야 합니다.

영분별에 무지한 교회에서 제 아내와 같은 은사를 받은 성도가 생기면 목사님도, 장로님들도 그 성도의 지시를 받다가 교회가 박살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Prophetic Apostolic 교회의 목사님은 자기 스스로 제 아내를 강단으로 불러 의자에 앉히기는 했지만 아내의 말대로 교회 앞에서 아내에게 안수를 받지 않았으며 전혀 그것에 동요되지 않고 예배를 진행했다는 것은 영분별에 예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의 세계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본 교회에서 쫓겨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 은사도 가르쳐야 합니다. 거짓 영인지 성령의 역사인지 분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는 악령도, 거짓 영도 있습니다. 영의 창이 열려 있기 때문에 거짓 영도 쉽게 들어와 참 영인 것같이 우리를 속입니다. 그래서 영적 세계에 갓 입문한 사람들은 이런 저런 경험도 하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 사람 일수록 악령은 더욱 교묘히 접근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성령님의 지시와 조명을 받아 야 합니다. 그런 평신도에게 이끌리지 말하야 하며 그런 성도가 받은 영적 은사를 가르치고 개발해 줄 수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 대해 백치인 나로서는 아내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몹시 당황스럽고 두려웠습니다. 아내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정말 귀신이 들어가서 아내를 농락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아내를 싸이코 패스니 양신이 역사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 다.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 하면서 짐을 싸는 둥 나만 가까이에서 겪는 비밀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예수님이 24시간 귀에 속삭입니다. 아내는 주님의 신부인데 남편인 나와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 해서 성관계를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박해받는 환경에서 숨어 지내는 그런 생각, 그런 분위기로 살았습니다.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 우리를 체포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는 그런 분위기 였습니다. 한 동안 집 안에서 숨어 지내기만 했습니다.

내가 신학교에 갈 날이 되었는데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이민관 부스를 이곳 저곳 살 피고 하나님께서 이번 비행기는 타지 말라고 하신다 하여 오후 늦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민관 부스 이곳 저곳을 살펴 그곳으로 들어가게 해서 이민관 조사를 마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자신은 돌아간다고 해서 돌아 갔습니다. 어떤 때로부터 하나님께서 한국말을 잊어버리게 하시고 영어로만 말하게 하십니다. 제 아내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들은 언니네 집에 맡기고 자신은 한국에도 가고 미국 이곳 저곳에 다니면서 지내는 것입니다.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면서 너무나 두려고 떨리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이제 결혼 생활과 가족생활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무능하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가 될 저에게 영의 세계와 영적 분별력을 주시기 위해 영적 훈련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한 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예언하는 미국 교회 목사님은 아내를 인식해서 강대상 위로 올라오게 했어도 아내의 안수는 거절하게 하신 것도 나의 영 분별을 훈련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아내는 그 때 내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사용해서 나를 영적으로 훈련시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내가 경험하기로는 많은 것들이 나만 아는 양신 역 사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것 까지도 하나님은 양신 역사를 분별하게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영적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똑똑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이 되어 집에 갔는데 성생활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아내와 이혼을 해야 하는 고민도 하게 되고 우리는 끝났나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난 후에 토론토의 친구가 내게 연락하기를 아내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갔더니 가정생활도 정확하게 하고 직장도 다니고 아이들도 데려 오고 장모님도 모시고 나와 성생활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대게 양신역사하면 그런 사람은 영적으로나 혼적으로 피폐해지고 회복되지 않는 것을 그 당시 주위에서 많이 보았는데 아내는 정상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과정이었구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나의 영적세계에 대한 훈련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기 위한 아내의 역할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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