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8-19

창세기 3장은 제 7일 안식일을 지난 에덴동산에서의 제 8일째 이후의 삶을 보여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오랫 동안 살았는지 모릅니다. 한달을 살았는지, 1년을 살았는지, 100년을 살았는지 천년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죄짓기 전의 삶은 영원한 삶입니다. 영원한 삶은 나이나 연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보이는 실체와 보이지 않는 실제 존재가 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존재가 보이는 실체인 뱀과 보이지 않는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두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보이는 실체인 아담과 하와이며, 그 배후에 계시는 제 2위 하나님이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구와 사람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창세기 1:1에서 전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실 때는 삼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창1:3부터 31절까지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으로 가득찬 지구를 채우시고 정돈하시고 밝히시는 창조과정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특히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성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탄의 말을  따라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죄가 들어와 영안을 흐리게 하고 육안이 밝아져 보지 말았어야할 벌거벗은 몸을 보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은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말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말입니다. 영 자체는 불멸입니다. 영존합니다. 그런데 영이 죽었다는 말은 죄로 인해서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 대신에 사탄을 주인으로 섬기게 된 상태를 영이 죽었다고 합니다. 영이 죽었다는 말은 몸이 죽은 것같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몸이 죽어 먹지도, 보지도,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영이 죽은 상태의 사람을 두고 살았으나 죽은 자라고 합니다. 마치 장미 줄기에서 짤려져 나온 화병에 꽂힌 장미꽃과 같은 것입니다.

영의 기능은 하나님과 접촉하고 하나님을 감지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 기능이 마비되었기에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게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에, 그들은 두려워하면서 나무 밑에 숨어버립니다. 왜 숨습니까? 왜 두려워합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리라.’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절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했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두려워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슬퍼하셨습니다. 온 우주와도 바꿀수 없는 그렇게 귀한 존재로 여기시며, 그렇게 사랑하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숨은 곳을 몰라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나타내는 절규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집을 나가는 아들의 등을 향해 외치는 아버지의 탄식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가 가로막아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가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이 죄는 사람으로서는 걷어 낼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했습니다.

창세기 3:15은 집을 나간 아들을 찾아 나서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 이 세상으로 찾아오실 것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게 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했습니다.

집나간 자식을 찾아 아버지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지구로 찾아 오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참 자녀를 만드시기 위함이요, 범죄하고 타락한 사탄을 잡아 불못 속에 당장 가두지 않으신 것은 사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자기의 형상을 주신 것은 장차 이 땅에 오실 것을 미리 예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자신의 본래 형상 그대로 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탄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죄 아래 가두고 핍박하고, 박해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게 방해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그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을 고르시기 위함입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핍박과 박해로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는 피흘리는 신앙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는 핍박과 박해 가운데 있습니다.

창3:14-19에서 이제 하나님은 죄 지은 자들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14절은 먼저 뱀에게 내리신 벌입니다. 뱀은 사탄에게 미혹받아 사람을 타락하게 한 도구로 사용된 것에 대한 벌로 땅을 기어 다니게 했습니다. 뱀 만이 유일하게  땅을 기어 다니는 벌을 받습니다. 뱀과 모든 피조물은 천년왕국에 가서는 저주가 풀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은 나중에 영원한 불못에 갇히게 됩니다. 창3:15은 사탄에게 내리는 벌입니다. 16절에는 여자는 벌로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게 되리라 했습니다. 본래 에덴동산에서도여자가 해산 할 때 고통이 있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범죄한 이후에 그 해산의 고통이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게 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아이를 임산하는 것이 큰 고통이기는 하지만 아이를 임산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산하는 복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17-19에서 아담에게 주시는 벌은 땅이 사람으로 인해 저주를 받게 된다 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저주를 받게 됨으로 그 아래 있는 다른 피조물들도 받게 됩니다. 로마서 8장에서 이 피조물들이 저주에서 회복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땅이 저주 아래에 있게된 결과로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사람은 종신토록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만 그 소산을 먹으리라 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었을 때는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각종 씨가진 채소들과 각종 열매맺는 나무들에게서 과실들을 따먹으면서 살았는데 범죄한 이후에는 가시덤불과 잡풀과 엉겅퀴들과 싸우면서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고통과 수고를 해서 먹게 됩니다. 그리고 범죄하기 전에는 몸이 병들거나 늙거나 죽지 않았는데 서서히 죽어 가게 된 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했습니다.

20절에서 아담이 하와라 그 아내의 이름을 지어준 것은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해서 하와가 생산해서 자손을 낳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범죄하기 전에는 하와라는 이름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범죄하기 전에는 생산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암시일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27에서 남자와 여자라고 말씀하셨고, 2:22에서 여자를 만드셨다고 했으며 2:23에서 아담이 자신의 아내를 향한 찬사에서도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에서도 단지 여자라고 칭해졌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 전에는 서로의 칭호가 남자야, 여자야라고 하다가 범죄한 후부터는 아담아, 하와야로 그 칭호가 바뀌어 집니다.

21-24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상태에서 생명과일을 따먹으면 죄사함을 받게 될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기에 이들을 내쫓고 에덴동산 생명과일을 지키기위해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보호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기 전에 먼저 이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힙니다. 이것 역시 집을 나가는 아들에게 언제든지 아버지께로 돌아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는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수단으로는 죄를 가릴 수 없고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최초로 인간의 죄를 가리기 위해 짐승이 피를 흘리며 죽어 희생되었습니다. 죄를 가리기 위해서는 죽음으로 값을 지불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죄를 짓기 전의 에덴동산은 영원한 곳이요 죽음이나 질병이나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이 파괴되고 죽음과 피흘림이 있게 됩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한 이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후에라도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피를 뿌려서 부끄러움을 가린 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온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짐승의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에게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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