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생애

창세기 5:21 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 라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1. 에녹의 족보

에녹은 유다서 14 말씀에 보면 아담의 7세 손이라 했습니다. 에녹은 당대의 선지자요 선견자로서 하나님의 심판 계시를 받아 그의 365세의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전파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그 손자 라멕에게 거룩한 본을 보여주었으며, 에녹은 65세 때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또 그의 나이 252세 때에(창 5 : 21과 25절을 비교해 보라) 손자 라멕을 보았습니다. 에녹이 승천할 때 손자 라멕의 연령은 113세 였습입니다. 에녹에게서 4세 손인 노아에게 이르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 에녹의 심판계시가 증손자 노아의 대에서 노아 방주를 통하여 성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와 라멕은 에녹이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가를 친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경건한 에녹의 감화로 친히 자라 난 아들과 손자였음이 분명합니다.

  1.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원인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이때부터 에녹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21절에,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했기 때문입니다. 이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을 하다니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뜻입니다. 언제부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에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므두셀라가 태어나는 전후에 무슨 일을 행하셨습니까?

에녹에게 므두셀라를 주실 때에 그에게 특별계시를 주신 것이 확실합니다. 그 특별계시란 장래에 될 일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장래에 될 일’이란 장차 언젠가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과 장차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에녹이 물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은 후부터는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았을 때에 홍수 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가지 증거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므두셀라라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두 단어로 구성되었 습니다. 무트는 심판, 죽음을 의미하며, 살라트는 보낸다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 라는 단어의 뜻을 찾으면 ‘창을 던지는 사람’, ‘던지는 무기’, 투창, 기본어근으로 ‘보내 버리다’ 도중에 가져가다, (멀리, 밖으로)인도하다, 되버리다, 주다,포기하다, 보내다, 내던 지다 등 여러가지 많은 뜻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 중  ‘창을 던지는 자’란 의미를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기능적인 이름입니다. 옛날의 전쟁은 먼저 적군과 아군이 마주서서 항오를 벌리고 두편에서 대표자를 내보내어 서로 싸우게 하는데 자기들의 대표가 이기면 사기가 충천해저서 그 날의 전쟁은 대표자가  이기는 쪽 군대가 그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스라엘 군대가 불레셋 군대를 이겼던 것처럼 말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는 대표자로서 이 자가 이기면 자신의 군대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창 던지는 자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는 말입니다.

또한 ‘보내버리다’라는 뜻에서 무엇을 보내 버린다는 말입니까? 에녹이 하나님께로 부터 홍수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때에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을 때, 이 세상이 이 아들을 떠나 보내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이 사람을 떠나 보내면 이 세상에 큰 물이 임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지었다면,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만으로 종말에 관한 멧세지를 듣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 세상을 보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세대를 보내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머튜 헨리의 창세기 주석 번역본 상권 P192).

에녹과 그의 부인이나 동생이나 이웃 친구들이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불렀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큰 비가 와서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뜻으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므두셀라의 삶은 예언적 삶이요, 969년 동안 긴 삶을 살게된 것도 심판을 예고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시대의 큰 홍수 심판은 노아시대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증조 할아버지 에녹시대 때부터 계산하면 1000년 이상 동안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물심판을 예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마지막 심판은 불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2천년 전부터 예고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두번째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물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증 거로써 유다서14,15말씀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 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 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리라.’에서 에녹이 선지자로서 먼 훗날 우리 세대에 일어날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과 불심판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께로부터 먼 훗날에 있을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 사건과 불심판의 사실을 보았다면 그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물 심판을 왜 보여 주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는 일을 계기로 그의 삶이 완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은 이렇게 먼 훗날의 불심판과 성도들의 부활과 주님의 재림과 당시의 물심판을 보고 알게 됨으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믿음의 삶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 계시를 받기 전에는 에녹도 모든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 관심을 두고 세상적으로 잘 살아 보고자 힘쓰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물로 심판받고 불로 태워 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에녹은 그 때부터 세상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천국만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온 정성을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계시의 사실을 철저히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 에녹시대의 시대상

유다서 14,15에서 에녹 당시의 세상이 얼마나 죄와 악으로 충만했나를 알 수 있습니다. 유다서 14,15에서 경건치 않다는 말을 4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악했는가를 창세기 6:5-7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 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보고 사람을 창조한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할 정도로 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결심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11-14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했습니다.

창세기 4, 5, 6장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세상을 보는듯 합니다. 오늘날의 악이 어느 정도냐 하면 생명공학에서 쥐의 DNA와 사람의 DNA를 조작해서 쥐 사람, 사람쥐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존엄성을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은 세상이 멸망할 때와 가까왔다는 말입니다. 에녹이 먼 옛날에 살던 사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1. 에녹의 삶의 영향력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던 그의 생애 중에 그가 행한 선지자적 사명이 이 유다서 4:14, 15 가운데 나와 있습니다. 놀랍게도 에녹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복음을 전파 했던 것입니다. 유다서 14,15에서 에녹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예언하기를 주께서 수 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오신다고 했으며, 말세에 사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이 임하기 훨씬 이전, 에녹이 살아가든 시절에도 인류의 죄악이 매우 심각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죄악 중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이나 동행하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 초기에 왜 이같은 인류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종이 필요했습니까? 이 해답은 인류의 역사는 오직 에덴에서 천국까지의 여정(旅程)이기 때문에 인류 초기로부터 모든 인류는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하며 그 천국 이 성취되기에 앞서 반드시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엄숙하게 받아 드려야 할 경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장차 흰 보좌 심판대에서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에녹은 죄악으로 만연된 세상을 향하여 주의 재림으로 인류의 역사는 마감되고 인류가 소망하는 새로운 시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찾아온다고 하는 소망을 외친 것입니다.

에녹, 므두셀라, 라멕 그리고 노아의 활동은 거의 아담의 생존시란 점에서 아담이 인류에게 미친 신앙적인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케 합니다. 창세기 5 장에서 아담의 후손들의 계보 상에 나오는 연대를 토대로 계산한다면 아담은 노아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라멕의 나이 56세시까지 생존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아담은 에녹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로 말미암은 최종적인 심판의 복음을 들었을 것이며 에녹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까지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멕의 예언대로 장차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실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자손들은 이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별도의 문명 사회를 이루는 생활에 적응해 왔으며 하나님이 없는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아담의 마음을 슬프게 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5-17절에 일어날 일을 바울 사도가 본것같이 에녹도 보았던 것입니다. 에녹이 말세기의 메시야 재림을 보았던 것은 말세를 사는 우리의 삶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수 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지상재림 하실 때에 부활한 자들을 데리고 오시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 살아 남은 성도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전한 에녹은 산채로 들림을 받음으로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들림 받는 체험을 에녹이 먼저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들림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나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해답으로 에녹과 엘리야의 들림받음을 성경은 보여준 것입니다. 에녹은 인간이 지구상에 창조된 초기의 인물입니다. 아담의 7세손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 왕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서 세번이나 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의 승천은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엘리야의 승천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승천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승천은 창세기 5:24,

열왕기하 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사도행전 1:9-11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15-17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삶이겠습니까?

첫째로 동행은 개인의 종말, 혹은 세상 종말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알 때부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날 시간이 내 앞에 가까이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 갈 때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합니다. 언제 올지 모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갈 생각을 하며 하나님을 맞이할 생각을 합니다. 창세기5:25에서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습니다. 그리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습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 369세에 노아가 출생합니다. 노아가 600세 되는 해에 므두셀라는 969세가 됩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노아의 나이가 600세가 되는데 이 해에 홍수가 나서 물심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에녹은 므두셀라가 언제 죽을 지 모

랐으므로 항상 그는 주님이 오실날인 것입니다. 주님과 매일 매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둘째로 동행하는 조건은 두 사람의 마음이 의합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3:3에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했습니다. 여기 의합이란 마음을 합친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합해지지 않으면 같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같이 높으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항상 옳습니다. 내 뜻, 내 꿈, 내 경험, 내 상식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에녹은 항상 하나님과 마음을 의합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마음을 합쳤습니다. 창세기 6:9에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것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창세기 6:22에, 노아가 그와같이 하되 하나님 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7:5에서도,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했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그 뜻을 의합했습니다. 누가복음 22:42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했습니다.

셋째로 서로 동행하려면 서로가 흉금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속 마음을 숨김없이 틀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솔직히 하나님께 아뢸 때에 하나님도 사람에게 솔직히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8:17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내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조카 롯의 가족을 구원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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