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우리는 누가복음 9:51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때는 공생애 사역을 6개월 남긴 갈릴리 사역을 마친 때였습니다. 예수님 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각 성과 각 촌에 다니시면서 복음도 전하시고 병자들도 고치시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고 설교도 하시고 제자들을 훈련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 15장에서 잃어버린 백성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6 장에서 천국에 들어갈 자들의 재정문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 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길입니다. 누가복음 9:51에서 승천하실 때가 가까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분명한데 그곳에 갈 채비를 하라는 것입 니다. 그곳에 가서 누릴 상급을 대비해서 현재 생활을 선용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누가복음16 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둘째는 예수님의 천국구원의 진리를 거부하는 인본주의적 오류에 빠져 실재로는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율법의 부분적인 것을 인본주의로 해석해서 그것만 잘 지키면 천국 간다는 착각한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가 신앙적, 사회적 책임을 잘못 하는 자의 결과에 대한 나사로와 홍포부자의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
첫째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눅 16:1-13)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 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 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 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 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우리는 이 구절의 말씀을 읽을 때에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자기 것 인 양 오용한 공금횡령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이 이 공금횡령죄인을 칭찬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공금횡령죄를 지은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자 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그 마음을 칭찬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 소절의 내용을 자세히 살 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믿는 자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재물을 어떻게 사용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십니다.
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이 주인은 먼 곳에 있습니다. 아마도 요즘 으로 말하면 이 청지기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맥도날드 회사의 한국의 총괄 책임자의 위치인 것 같습니다. 그 회사의 회장이 이 메니저를 해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계할 수 있도록 서류정리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이 메니저는 앞으로 살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 직장을 거만 두면 험한 노동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홈리스가 되어 구걸할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 직장을 잃은 후에 자기 를 돌봐 줄 수 있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합니다. 회사에 빚을 진 사람들을 불러 호의를 베풉니다.
여기 비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의 소유를 맡기시고 관리하도록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재물을 이 세상 사람들 이 자기 것인 양 자신 만을 위해서 허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이나 이웃을 위해 서는 인색한 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 하지 못하는 자들의 것을 빼앗아 충성스런 다른 사람들에게 주실 것을 말합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모든 사람들을 낱낱이 불렀다고 합니다. 먼저 도착한 어떤 사람에게는 기름 백말을 오십 말로 감해 줍니다. 이 기름 백말은 한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감람유가 25 리터인데 감람유 백말은 2300리터이며 감람나무 92그루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데나리 온으로 계산하면 천 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한 노동자가 삼년 버는 돈입니다. 이것을 절반으로 탕 감했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는 밀 일백석을 팔십 석으로 탕감합니다. 이것은 밀100석은 360리터 인데 데나리온으로는 2500데나리온이라 합니다.
청지기의 이런 사실을 알고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 있게 행동했다고 청지기를 칭찬했습 니다. 이런 사실은 세상의 주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의 재산을 축나게 한 이 사람을 감옥에 넣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재산을 잃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관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충성스런 청지기를 찾고 있습니다. 보디발의 청지 기였던 요셉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이 공금횡령한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용의 주도하게 교묘한 방법으로 준비한 것을 칭찬했습 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대한 결론으로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서 이 세대의 아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 신자들을 말하며 빛의 아들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신 자들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면에 있어서 더 지혜롭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불신자들이 용의 주도한 처세로 칭찬을 받았다면 신자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미래를 대비함으로써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 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면 성도들이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 것인 가를 물질적인 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의 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했습니다. 여기 불의 의 재물이란 단순히 이 세상에 있는 재물입니다. 불신자들이 장차 유익을 얻기 위해 지혜롭게 투자 하듯이 신자도 천국에 가서 얻을 상급을 위하여 이 세상의 재물을 잘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친구들은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와 같이 강도 맞은 이웃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때에 천국으로 먼저 간 도움을 받은 성도들이 너를 마중 나오고 환영할 것이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25:36-46에서 가난한 자, 불쌍한 자를 돕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 했으므로 여기의 저희는 예수님을 말하기도 합니다.
10절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고 하신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은 이 세상의 재물을 말합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은 엄청난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되지 못한 자들은 하늘나라의 큰 것을 받 을 수 없으며, 11절에서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 게 맡기겠느냐 하신 것은 이 세상의 재물로 충성되게 사용하지 못한 자는 하늘나라의 참된 것을 받 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또 12절에서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하 셨는데 이 말에서 남의 것은 이 세상에서 가지는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주인의 것입니다. 우 리는 그 주인의 청지기로서 관리할 뿐인데 그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 주인의 것을 착복 하면 그것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맡은 자들은 그 재물의 주인의 뜻대로 충성되이 잘 활용한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진짜 자기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내 것이 아니기에 이 세상의 물질은 왔다가 가고 가다가도 다시 오기도 합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내 것이 아니고 임시 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면 내게 주어지는 것은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주인의 것을 잘 충성되게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13절에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옛날에는 한 종이 여러 주인의 소유(행 16:16,19)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종은 자기에게 잘 해주는 주인을 더 잘 섬길 것입니다. 여기의 재물은 맘몬입니다. 이 맘몬의 뜻은 의지할 것이란 의미인데 이 물질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으로 되었다가 나중에는 맘몬을 신으로 추앙하여 의지하게 된 인간 역사를 보여 줍니다. 이 세상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기에 재물을 잘 못 사용하면 사탄을 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과 사탄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물질은 잘 사용한 대상이지 섬기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위해 돈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둘째로 바리새인들의 불의에 대한 책망(눅 16:14-18)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여기에서도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9:51절에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 여 가는 길에 예수님을 좋아해서 따르는 무리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미워하고 모함하고 죽이려는 자들도 항상 함께 했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잡아 결국 십자가에 못박습 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인데 사탄은 항상 호시탐탐 우리를 노려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가 지고 있는 풍요롭고 부한 재물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 그들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회적 특권을 이용하여 재물을 축적하는 자들이 많았고 또 스스로 그 행위를 옳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탐욕과 위선적인 삶은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킨다 하면서 문자적 해석이나 편협한 교리를 준수하는 데에 국한 시키면서 자신들은 율법의 정통신앙을 준수하는 거룩한 자들로 자처하는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지적하셨습니다. 여기 문자적 해석이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바리새인들은 몸으로 간음하지 않은 것으로 율법을 준수한다는 것에, 몸 뿐만 아니라 생각으로 음욕을 품은 것도 간음함이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바리새인들은 몸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으로 계명을 지킨 것으로 생각 하지만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한 것도 살인한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편협한 교리란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에 일을 하지 않는 것, 일이란 달걀 무게의 물건을 드는 것은 일이요, …성경에 없는 것을 사람이 만들어 그것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보다 너희 조상들이 가르친 전통을 더 지키려고 헛된 수고를 한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안식일에 병자 고치는 것을 거침없이 행했습니다. 고르반법도 그렇고 이혼법도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이혼증서만 써 주면 언제든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 지적합니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는 세례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 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죄 회개하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국을 간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자신들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잘 못 알고 잘 못 가르치는 것을 완전하게 깨닫고 가르침으로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려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물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이 비웃고 방해함으로 제물에 대한 말씀이 중단되었는데 다시 재물에 대한 말씀을 나사로와 홍포부자의 비유로 계속하셨습니다.
셋째로 나사로와 홍포부자 비유(눅 16:19-31)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 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물질에 집착하는 삶을 버리지 않으려는 완악한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교훈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세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이 세상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를 기준으로 판단해 볼 때에 재물에 집착한 세속적 삶보다는 멸시와 가난과 소외 속에 있으나 미래에 소망을 둔 삶이 더욱 갚지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그리고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부자인 것을 잘 못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8:18 에서 하나님이 재물 얻는 힘과 능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축복의 개념이 물질 축복이었습니다. 이 부자의 허물은 자신이 풍요로운 삶에 집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지 않 았으며, 자신의 영원한 미래의 소망을 망각하였고 오직 현실의 이기적인 삶에 대해서만 집착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자가 얼마나 부요했는가 하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이 자색 옷은 왕이나 귀족들이나 입는 겉옷인데 뼈고동이란 열대산 물고기의 피로 옷감의 색깔을 낸 값비싼 고급 옷입니다.
그리고 베옷은 애굽산 속옷인데 금으로 환산하면 옷의 무게에 해당하는 금 무게 값의 두배라고 합니다.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은 다 갖고 최고의 사치와 호화를 누리며 매일 잔치의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가진 부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재물을 오직 자기 만을 위해 축냄으로써 하나님의 것(주인)의 것을 오용하는 죄과를 낳았고, 자신의 이웃에 대해 자비를 베풀지 않음으로써 율법의 명령을 소홀 히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그렇게 유능하고 유명한 인물인데도 성경에 이름이 없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인물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 없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한편 거지인데다 병까지 앓는 비참한 인간이 홍포부자의 대문간 앞에 내동댕이쳐 있습니다. 이런 비참한 사람인데 이름이 소개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의 나사로라 합니다. 나사로란 인물은 실제로 있었다고 터툴리안, 암브로스, 칼빈이 주장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이 도우시는 흔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 많은 비유 가운데 이 거지 나사로에게만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거지 나사로는 현실의 삶은 비참하지만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셔서 부자집 대문 간에 있도록 하셨다는 감사함으로 살았습니다.
이 온 몸에 헌데를 앓고 있는 거지가 홍포부자 대문간에 누워있으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이 홍포부자가 나사로에게 적극적인 악은 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자기 집 문 앞에 병든 거지가 누워있는 것 조차 싫어해서 종을 시켜 다른 데로 옮겼을 수도 있는데 이 부자는 그런 면에서 너그러웠습니다. 다만 그의 죄과는 나사로 에게 무관심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선용하지 않고 그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데만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잘못 사용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13의 불의한 청지기 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내세에서 이루어지는 아브라함과 부자의 대화를 통해서 심판받을 영혼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고있습니다.
음부에서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부자가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하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22절에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장사지냈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었습니다. 아마도 그 부자 집 종이 죽은 시체를 발견하고 가마니에 둘둘 말아 공동묘지에 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란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죽은 사람을 그들의 조상에게로 갔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 부자가 죽었으니 장례행사가 어리어리하고 화려 했 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애도했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음부에 가게 되고 음부에서 불의 고통 중에 있습니다. 이 음부는 구약시대 때는 선악에 관계 없이 죽은 자가 가서 부활 때까지 머무는 중간지대를 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구약시대의 사건으로 묘사 됩니다. 아브라함의 품과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하는 것으로 이 부자도 유대인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구약시대까지의 음부와 낙원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세 세계에 대해 몇 가지 알아 보려고 합니다.
여기 음부의 구조를 보면 나사로가 천사들에게 받들려 간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영혼이 가는 곳입니다. 넉넉함과 풍요와 안전함과 무궁한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음부는 불꽃 가운데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은 세상에 자기 집 문간에 질병으로 누워지내던 거지 나사로가 낙원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 때의 낙원과 음부는 서로 바라 볼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지만 두 장소에서 오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영혼이 음부에 내려 가셔서 낙원을 음부 자리에서 옮겨 현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으로 옮겼습니다. 영어 사도신경에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 가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로 되어 있는데 한글 사도신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셨다 는 말을 생략했습니다. 그 근거를 베드로전서3:18-20을 듭니다.
베드로전서 3;18-20’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또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죽은 후의 영혼은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잠자는 상태가 아니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낙원의 아브라함과 나사로가 음부의 부자와 대화를 나누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영혼은 무덤에서 잠자는 상태라고 가르칩니 다. 누가복음 9: 29-31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께 오셔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뿐만 아니라 계시록 6:9, 10에서 순교한 영혼들이 천국의 제단에서 기도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 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 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했으며, 계시록 7:9-10, 13-17,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 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3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 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 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해서 천국에서 영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과 데이트도 하고 기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 1에서는 먼저 믿음의 경주를 끝내고 천국에 간 영혼들이 후발 주자들이 잘 뛰도록 응원하고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제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천국이 있고 그 천국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고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 며 우리가 아버지께로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오셨습니다. 아버지께로 가기 위해서는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여 죄씻음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려 오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누가복음 9;51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누가복음 16장의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 가서 누리게 될 상급을 위해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목적에 충실하게 사용하는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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