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7

마태복음 25:14-46

 

첫째로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 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 더니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 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 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 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 를 남겼나이다. 23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 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 셨나이다.26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 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 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 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 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14-30말씀인 달란트 비유는 누가복음 9:51에서 시작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 루살렘을 향해 오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한지 삼일째인 화요일 저녁에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지상 끝 날에 있을 여러 징조와 주요사건들과 그것들에 대해 취할 성 도의 마음자세에 대해 계시하신 감람산 강화의 연속부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재 림의 징조와 시기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재림 때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25장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십니다.

그리고 열처녀 비유에서는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준비성에 대해 말씀하셨고,  달란트 비유 에서는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성실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달란트 비유에서는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특별히 천국을 위하여 일하는 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처녀 비유는 성도들의 영적이고 정적인 생활을 교훈하고 있으며, 달란트 비유는 성도들의 실제적이 고  동적인 생활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열처녀 비유는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일 반적인 책임을 다룬 반면, 달란트 비유는 개개인에게  맡겨진 특수한 책임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했는데 누가복음 19:12의 므나비유에서는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 로 간 귀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 당시의 분봉왕들이 로마 원로원으로부 터 왕위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갔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예 수님 자신을 말씀하고 있으며,  타국에 갈 때에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리스도 께서 승천하신 때로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부재 시에 일차적으로는 복음 전도사역을 하는 제 자들에게와 이차적으로는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 개개인에게 부탁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종들을 불렀습니다. 여기 종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래로 교회를 책임질 사역자들과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한 것은 예수 님이 그의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맡기신 천국복음을 상징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맡기실  때 에 각각 그 재능대로 맡기셨습니다. 그 종들의 재능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주님은 종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능력을 바르게 평가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또한 매우 공평하게 맡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주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보통 금 한 달란트의 가치는 6천 데나리온이라 합니다. 금 한달란트를 벌기 위해서는 일반 노동 자가 20년 동안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섯 달란트는 엄청난 돈입니다. 두 달란트도 굉장 한 돈입니다. 물론 한 달란트도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바 로 가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주인이 떠나자 마자 종은 재빨리 자 기에게  맡겨진 것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여 청지기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 와서 결산하기 위해 종들을 불렀습니다. 주인이 돌아 왔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묘사한 것이며 저희와 결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말적 심판을 상업적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 장면이 종들과 주인 사이에 결산을 하는 일로 비유되는 것은 성경에 종종 나타납니다(마18:23, 21:34, 눅 19:15, 고후 5:10).

  1.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했습니다. 이 종은 주인이 돌아 왔을 때에 주인이 맡긴 바 임무를 성실히 잘 감당한 성실성을 주인에게 보고 합니다. 이 종은 주인에게 아 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다만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있습니 다. 이것은 주인 앞에서 종의 겸손한 자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인이 자신의 한 일 에 보상을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마지막 때에 있을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충성된 종을 향한 주인의 칭찬을 들어 보겠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했습니 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의 보고를 들은 주인의 기쁨과 만족이 컸음을 보여 줍니다. 주인에게 있 어 충성된 종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 잘하였도다 라는 말은 우수하 도다, 훌륭하다 라는 말로서 종의 노력에 대한 주인의 만족과 인정의 표시입니다.  착하다는 말 은 충성되다는 말로서 신실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종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의 상급심판 때에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 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를 맡긴 종에게 칭찬을 한 것은 많은 이윤을 남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인에게는 그것이 큰 것이 아 닙니다. 주인이 기뻐한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되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이 종에 게 주인은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금 다섯 달란트는 우리에게 엄청난 것인데 이것보 다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 은 영원한 천국 삶의 준비 기간입니다. 충성된 성도들에게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했습 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것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1. 두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주인에게 보고하기를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 했을 때에 그 종에게 대한 주인의 칭찬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한 말과 문자적으로 똑같았습니다.  이와 같이 다섯 달 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동등한 대우를 받은 것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각각 다른 은 사를 가지고 일했을지라도 천국에서는 동등하게 영생과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양에 있지 않고 최선을 다해 충성을 다하였는 가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1. 한 달란트 받은 종

한 달란트 받은 종은 6천 데나리온의 돈을 땅에 파묻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재산을 안전하 게 보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이렇게 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아마도 주인이 맡긴 돈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이 그에게 맡긴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즉 주인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이윤을 얻게 하려는 의도로 종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을 묻어 두고 불충성한 자의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이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결산하기 위해 섰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했습니다. 이 종은 주인 을 향해 굳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굳은 사람이란 완고하고 거친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종이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인은 노동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수전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 세워 자신의 불성실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찾으려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선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을 자신의 이기심과 질투심으로 판단하려 했습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해서 자신의 나태함을 변명하기 위하여 주인을 여전히 인색하고 탐욕 많은 구두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인을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려고 하며, 타작도 하지 않고 알곡을 거두려는 자요 투자에는 인색하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려는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장사하여 돈을 남기면 그것은 주인의 소유가 될 것이고, 만약 장사하다가 실패하면 자신이 그것을 배상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땅에 파묻은 것입니다. 이 종은 말하기를 ‘25두려워 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종은 주인이 너무 인색하고 엄격해서 만약 그 돈으로 장사하다가 실패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 로 자신이 물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능력 이상의 것을 요 구하고 계신다고 믿고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자위하거나 인간의 능력은 인간의 것이기 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 마음대로 이며 아무도 그 용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주인의 원금에는 손해를 끼치지 않고 잘 보관해 왔다는 말이 지만 실상은 자신의 도리를 다 했다는 원망 섞인 불평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한 달란트 가진 자는 그것 마저 빼앗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는 열 달란트 외에 또 한 달란트를 더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주의 복음 사역을 위해 주신 은사로 이를 사용할수록 더욱 커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되고 결국은 없어지고 말 것을 보여 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악한 종에게서 빼앗아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양과 염소의 비유(마태복음 25:31-46)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할 것을 교훈한 ‘열 처녀 비유’와 주의 재림 때까지 맡겨진 일에 충성할 것을 교훈한 ‘달란트 비유’에 이어 본문은 종말 비유의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일명 ‘양과 염소의 비유’라 부릅니다. 이 양과 염소의 비유는 재림의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재림을 가장 훌륭하게 대비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비유를 오해하여 마치 최후의 심판 날 구원의 기준이 선행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인간 구원의 조건이 선행이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는 이웃에 대하여 주 님의 사랑과 계명을 실천할 의무가 있고 또 믿음을 갖고 주님을 섬기는 자는 자연히 사랑을 실천 하는 자로서의 모습을 갖게 되는 바 결과적으로 이런 자들이 구원받을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가 현실 도피적이고 이기적인 기복 신앙에 빠지는 위험과 어리석음을 경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의 모든 주제는 선행을 행하라 입니다. 열처녀 비유 에서 빛을 발하라는 빛은 선한 행실이라 했으며, 양과 염소의 비유는 달란트 비유의 의미를 구체 적으로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 들이란 성도들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 다.

진정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들의 충성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입증되고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성도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 째로 이웃에 대한 성도의 사랑은 복잡한 이론이나 시끄러운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과 배려를 의미합니다. 만약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거나 이웃을 사랑하노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 두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둘째로 결코 선행을 통해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에 이를 믿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선한 행실이 수반되는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가 마치 각자의 선행 여부에 따라 구원과 상급이 결정되는 것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선행이 얼마나 불가분 의 관계에 있는 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31-33절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 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에 앞서 예수님은 초림 때와는 달 리 재림 때에는 영광의 재림 주로 오실 것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영광의 심판 보좌 앞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신다 했습니다. 모든 민족에는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의 모든 이방 민족까지 모으실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과 주님이 수행하실 인류 심판이 국소적 현상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 우주적이요 전 인류에 미치는 심판이 될 것을 예시합니다.

심판에서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나누신다 했습니다. 양과 염소를 나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 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숙한 생활 풍습을 들어서 최후 심판의 모습을 예시하시고 있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양을 치면서 반드시 몇 가지 다른 종류의 짐승들을 함께 키웠습니다. 그것은 개와 염 소와 나귀와 말이었습니다. 개는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나귀와 말은 넓은 곳에서 많은 양을 돌보아야 하는 경우에 기동성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특별히 염소를 키우는 것은 양들에게 먹이 를 먹일 때에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름에 방목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겨울에 먹이를 줄 때에 양 들이 미련해서 먹이를 향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잘못하면 앞에 있는 양들이 치어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과 염소를 함께 키우면 성격이 난폭하고 이기적인 염소가 한꺼번에 몰려 드는 양들을 이리 저리 흩어 놓음으로써 양들이 서로 치어 죽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목자들은 양과 염소를 함께 키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녁에 우리 안으로 들어 갈 때는 언 제나 양과 염소를 갈라 놓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추위에 강하여 아무 곳에서나 재워도 되지만 염소들은 추위에 약하여 따뜻한 곳에서 재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양들은 귀가 어두워 잘 때에 소리를 잘 듣지 못하지만 염소들은 귀가 밝아 이리나 짐승들이 침입할 때에 잠에서 깨어남으로 목자들을 깨운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배경으로 하여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과 같이 마지막 종말에 가서는 자신이 심판주로서 의인과 악인,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 의 자녀를 엄격히 구별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두 리라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 편은 항상 선과 영광, 생명의 자리로 이해 됩니다(출 15:6, 왕상 2:19, 시 45:4). 따라서 최후 심판 때에 그리스도의 보좌 우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좌편에 섰다는 것은 영원한 멸망과 형벌에 들어 가게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왜 하필 염소가 악인으로 비유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양의 흰털은 의 를 상징하고 염소의 검은 털은 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은 성격상 온순하고 염소는 난 폭하고 거칠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양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비유되며 염소는 악한 자로 비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겔34:17).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 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여기의 임금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상징합 니다. 31절에서는 인자라고 했는데 34절에서는 임금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의 주이시며 또한 만왕의 왕으로서 행사하실 것을 예시합니다. 모든 민족의 통치권과 심판의 권위 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권적으로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오라’고 하십니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백성들을 위해 마련된 하늘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 상 속권을 소유하게 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 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 라.’ 여기에서 여섯 가지의 선한 행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앞의 세가지는 율법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항들입니다. 주린 자에게 먹여 주고 목마를 자에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된 자들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는 보다 능동 적인 봉사 활동입니다. 헐벗을 때에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방 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잘못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치 행위로 구원받는 것 같이 잘못 오해해서 는 안되겠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 런데 이 구절들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반드시 이와 같은 선한 행실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다 하는 자들이 입술로만 믿는다 하고 선한 행실을 나타내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선한 행위가 없는 자는 죽은 믿음입니다. 죽 은 믿음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 으로부터 나오는 선함을 힘입어 반드시 선행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한 페이지로 요약하라 한다면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을 두 마디로 요약하라 하면 첫째 로 위로 하나님 사랑, 둘째로 옆으로 이웃 사랑입니다. 1계명에서 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것이요, 5계명에서 10계명 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상 을 섬기지 않을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 다면 사람을 죽이거나 이웃의 것을 훔치거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하기를 성경의 모든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2:28-34에서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이것 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 되 온몸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옆으로는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라 했습니다.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인 이웃 사랑 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성도들 중에 이웃을 사랑하기는 커녕 이웃에게 교만 떨고 무시하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구원받은 이유를 말씀하실   때에 구원받은 의인 들이 묻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 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했습니다. 이 의인 들의 말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행한 선행들이 예수님께 하는 것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선행이 결코 내세울 것이 없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겸손이 내포된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선행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는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 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했습니다. 여기에 구원받은 의인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저주 받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고 했 는데 의인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아 나아오라’고 하셨고, 의인들에게는 ‘나라를 상속 하라’하셨는데 저주 받은 자들에게는 ‘불에 들어가라’ 하셨고, 의인에게는 ‘너희를 위해 예비된 나라’ 라 했는데 저주 받은 자들에게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 불’이라 했으며 의 인들에게는 ‘창세로부터’라고 했는데 저주 받은 자들에게는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천국이 의인들을 위해 준비되었듯이 지옥과 형벌은 악인들을 위해 예비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 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 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이 말씀에서 보면 오른편에 있던 의인들은 자신들의 선행을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왼 편에 있던 악인들은 저들의 행위를 계산하지 않은 것입니다. 의인은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하고도 그것을 잊어버렸는데 악인은 그의 의무를 행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과오조차 몰랐던 것입니 다.

그러므로 세상 종말을 살아 가는 성도들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생각하면서 내가 구원받았다 하는 자로서 과연 선행을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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