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15-26
지난 주일에는 요한복음 18장을 중심으로 빌라도의 예수님을 일차적으로 심문한 내용들을 살펴보 았습니다. 오늘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도 아무 죄가 없음에도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끊임 없이 예수님을 죽이도록 요구함으로 헤롯왕에게 예수님의 재판 결과에 대한 책임을 넘기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헤롯의 관할에 속한다 하여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지만 헤 롯 역시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죽일 죄를 발견치 못한 채로 처리할 수 없는 곤란한 문제를 피하기 위 해 예수님을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심문하게 됩니다. 빌라도의 예수님 2차 심문에서 바라바를 내세워 예수님을 석방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합니다. 그런 심문 과정에 있을 때에 자신의 아내에게서 연락을 받게 됩니다. 이 두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다룬 후에 요한복음 19장으로 넘어가 2차 심문을 상세히 살펴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빌라도 아내로부터의 연락 (마태복음 27:19)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의 때는 헤롯에게서 예수님을 넘겨 받은 후 재 2차 심문을 하기 위해 서였습니다.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특별사면 하는 전례를 따라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하던 때에 자 신의 아내로부터 사람을 통해서 연락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은 마태복음 본 절에만 나타납니다. 외 경 니고데모 복음서 2장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프로클라 였으며, 유대교에 귀 의하였고, 그리스도의 숨은 제자였다고 합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했는 데 그녀는 예수님을 메시아나 적어도 거룩한 선지자로 알았음을 의미합니다. 그 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빌라도의 아내는 꿈을 통해 불길한 징조를 예감했습니다. 한편 꿈을 강조하 는 것은 마태복음의 한 특징입니다. 구약에서도 꿈은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었습 니다. 마태복음은 이 사건을 유일하게 기록하여 예수님의 무죄를 강조하고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 들의 죄상을 더욱 표출시키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 대신에 바나바의 석방 (마태복음 27:16-26)
’24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제일 먼저 혜택을 받은 사람이 바라바입니다. 그리 고 두번째 헤택을 받은 사람이 십자가에 달린 두 죄수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바라바의 이름의 뜻은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이요 일부 사본에 의하면 ‘예수 바라바’라는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과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마태복음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라고 명칭한 것입니다. 빌라도가 바라바 를 내세운 사건은 헤롯으로부터 돌아온 예수님을 2차 심문한 때라는 것이 누가복음 23:15에 보여 줍니다.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없음) 18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 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 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헤롯에게서 예수님을 넘겨 받은 후에 최종적 판결을 하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빌라도는 첫 심문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심문에서도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 줄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고소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들과 자기와의 지속적이 유대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최종 판결을 내리기 전에 대제사 장들과 관원들과 백성들을 증인으로 불러 모으고 그들 앞에서 예수님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시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도 로마 정부나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그 어떤 책임 추궁을 당 하더라도 그에 대응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가복음 23:14에서’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빌라도는 증인으로 불러 모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무죄를 말하기에 앞서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내용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가지 죄목으로 고소한 무리들과는 달리 빌라 도는 본 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단지 첫째 내용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예수님을 정치 적으로 혐의를 씌우기 위해 꾸며낸 두 번째와 세 번째 고소 내용은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판이 그 사람들 눈 앞에서 시행되었고, 그 결과 예수님을 직접 심문한 빌라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 본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죄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무죄를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빌라도는 이제 헤롯의 경우를 내세워 헤롯 조차도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여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려 놓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때린 후에 풀어 주겠다는 그의 대안은 완전히 잘 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그가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는 예수님을 무조건 석방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려서 놓겠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매수된 무리들이 자신 이 예수님을 그냥 풀어주고 나면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상당히 염려 했던 것입니 다. 예수님을 때려서 놓겠다는 빌라도의 의도는 예수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것이 교훈이 되어 앞으 로 예수는 너희를 불쾌하게 하는 어떤 행동이나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 다.
‘18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 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빌라도는 비록 예수님에게 죄가 없지만 그를 때리고 난 후 풀어 주겠다고 하면 증인으로 불러 온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동원된 사람들이 자기의 판결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 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야 말로 지금까지 자기들을 괴롭혀 온 예수를 반드시 죽이려고 결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누가복음 9:51절에서부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오시는 여행 길에 계속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고 죽이기 위한 발목을 잡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동원한 사람들을 재촉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 여야 한다고 소동하여 빌라도를 협박합니다. 이렇게 되자 빌라도는 명절을 맞이하면 백성들의 요청 하는 법에 따라 죄수 한 명을 풀어주는 전례를 이용하여 예수님과 바라바를 놓고 한 사람을 선택 하라고 합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으로 인해 옥에 갇힌 자라 했습니다. 빌라도가 생각하기를 아주 최고로 악질 죄인을 골라 내세워 예수님과 바라바 중에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그들은 틀림 없이 예수님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 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또 빌라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가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7:16-21에, ‘16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 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20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 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 로소이다.’
사실 예수님은 죽이고 그 대신에 바라바를 놓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빌라도에게는 납득이 안가 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반면에 바라바는 마땅히 처형해야 하는 무거운 죄를 범한 사 람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빌라도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빌라도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더욱 소리지르면서 소동까지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요구는 더욱 과격해져서 당시 가장 극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 처형을 예수에게 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 그것은 빌라 도가 두려워하는 요소입니다.
누가복음 23:21-23, ‘21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 를 구하니 그 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빌라도가 예수님이 죄 없다고 세 번째 말하되’ 했는데 실제로 누가복음 23장에서 네 번이나 예수 님이 무죄하다고 했습니다. 즉 4절, 15절, 20절, 22절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세 번째라 말한다 는 것은 예수님이 헤롯에게서 돌아와 최종 심문을 받는 동안 세 번이나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입증하고 또한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누가복음 23장20절과 21절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은 죽일 죄가 없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 들이 빌라도의 말 을 중간에 가로채기까지 하면서 동원된 사람들의 감정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23절에서는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했 습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빌라도의 설득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가 무죄임을 밝히고 그들을 놓아주려는 빌라도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서 더욱 소동을 부렸고 마침내는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 무리들의 움직임이 점점 심상치 않게 되고 또 그 상황 이 자기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결국 겁에 질려 자기의 결정을 취소하고 무 리들의 요구에 순응하였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이 무리들에게 항복하게 된 직접적인 항의에 대한 내용은 요한복음 19:12에 있습니다.
셋째로 빌라도와 대제사장의 행위에 대한 영적 의미
여기서 우리는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의 행위를 영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유월절에 희생될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유월절 예비일인 금요일 새벽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 잡는 시간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양은 흠이 없어야 합니 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치는 어떤 희생제물도 절대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희생 제물들은 대 제사장이나 제사장이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월절에 바칠 흠 없는 어린 양을 고르는 일에 대제사장이 아닌 빌라도가 행사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절대로 죽일 수 없다고 누가복 음 23장에서 네 번이나 선고 합니다. 즉 유월절 희생제물로는 예수님은 절대로 흠이 없다고 네 번 이나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제물로 바 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주동을 하고 이방인 빌라도는 세번이나 무죄선언을 하고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사형선고를 내려 십자가에 못박게 함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죄를 도말하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의 흠 없음을 증명해야 할 대제사장은 예수가 흠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흠이 있으면 유월절 희생제물로 죽이지 않아야만 하는데 대제사장은 흠이 있다고 하면서 기어코 예수님 을 십자가에 죽이려고 합니다. 이 말은 그 당시 종교가 얼마나 부패했느냐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전제사가 제사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영적 부패를 이사야서 1:2-14에서 절묘하게 묘사하 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 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 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7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 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 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 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 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 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 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했습니다.
그 당시 이들이 드리는 제사에 대하여 하나님이 가지신 생각이 어떠한 가를 이사야서의 마지막인 66:3-4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 증한 것을 기뻐한즉 4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 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이사야서의 첫장과 마지막 장의 진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세대의 대제사장과 백성들과 성 전과 성전제물의 상태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 우리가 예배 드리기 위해 모이는 교회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시는지 살펴 볼 기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부르짖는 자들의 결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마태 복음 27:22-26로 가겠습니다.
넷째로 백성들의 맹세에 대한 역사적 결과(마태복음27:24-25)
22절에서, ‘22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 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했는데 아직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다는 미련을 가 지고 있었지만 바라바가 석방되는 것으로 이미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그는 지금 예수에게는 어떤 형벌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빌라도는 자신의 책임 을 백성들에게 전가시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물로 손을 씻는 행위인데 신명기 21:6과 시편 26:6 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죽임을 당했을 때 자신은 무관하다는 상징으로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빌라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죽이는 범죄와 무관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무리들 앞에서 손을 씻으 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합니다.
‘23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
그리고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십자가 형은 로마정부가 가장 악독한 죄 인에게 가하는 형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러한 형벌에 처하라고 외치는 무리들입 니다. 피를 원하는 흥분한 군중들의 함성은 우유부단한 빌라도의 태도에 힘입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극형에 처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노력이 효험이 없음을 느끼고 빌라도는 무리
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맙니다. 군중의 동태가 막 민란을 일으킬 듯한 기세로 움직이고 있는 급박한 상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줄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이 때에 군중들이 외치기를 그 피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하고 부르짖 습니다.
‘24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5절에서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에서 ‘다’ 라는 용어를 사용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인 죄가 유대 민족의 죄인 것을 암시해 주고 있 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더욱 대담하게 자신들의 죄를 자랑이나 하듯이 자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습 니다. 이들의 요구는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A.D.70년의 예루살렘 함락 때에 끔찍한 대학살이 있 었는데 칼에 죽은 사람만 110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때에 600만이라는 가히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수가 학살당했습니다.
다섯째로 빌라도의 예수님 사형판결(마태복음27:26)
’26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사실 빌라도는 특별하게 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을 놓아 주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회주의 적인 그의 성격과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백성에게 굴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 에 못박도록 함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총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 2000 여년 동안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입으로 분명 히 예수는 죄가 없다고 해놓고 사형에 처한 것은 법을 어긴 죄인입니다.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었다고 했는데 십자가에 달 죄인을 십자가에 달기 전에 채 찍질 하는 것은 로마 형벌의 한 관례였습니다. 이 때 사용된 채찍은 끝이 갈라진 단단한 가죽으로 그 갈라진 끝에는 납이나 뼈가 달려 있어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이 채찍형벌 만으로 죽은 일도 있 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9장에 의하면 사형 결정이 나기 전에 채찍질 당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판결이 난 후에 가하는 채찍질은 생략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나스와 가야바와 빌리도에게 심문을 받을 때에 세번이나 구타당했습니다. 가야바에게 심문 받은 후 먼저 마태복음 26:67-68에서, ‘67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 냐 하더라.’했으며, 누가복음 22:63-65에서, ‘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 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했습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 19:1-4에서 2차 심문 때에 홍포를 입히고 머리에 가시관 을 씌우고 채찍질 하며 군인들이 희롱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빌라도에게 심문 받은 후인 마 27:28-31이었습니다.
끝으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기까지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 부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적 사회적 기득권 층으로서 자신의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시기 질투해서 죽이기 위해 무리들을 동원해 선동하고 부추기는 주동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하나님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패역한 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유대인 무리들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호 산나,호산나하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 다. 이들은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과 장로들 즉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가속들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할 때는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잠 들 때에 비밀히 예수님을 체포해서 우리 시간으로 밤 한시 경에 안나스에게 심문받고 가야바의 집 에 끌려가 가야바에게 예비 심문을 받고 동틀 무렵에 정식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예수님을 신성모 독죄로 선고한 후 즉시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게 했습니다. 아직도 이른 아침입니다.
보통 예루살렘 사람들은 잠들고 있을 시간입니다. 이들은 그 때 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 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이들은 빌라도의 예수님 심문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 다면 이 무리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6에 보면 대제사장과 그의 아랫사람들이 라고 해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집안 사람들과 그 집들의 하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종 사하는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이들이기에 이른 아침 빌라도 관정에 들어 올 수 있었습 니다. ‘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세 번째 부류는 빌라도 입니다. 그는 비록 예수님을 무죄 방면하려고 노력했고 불가피하게 사형을 언도했다고 볼지 모르나 그가 내린 불의한 판결에 대한 책임과 죄책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누가복음은 이방인 총독 빌라도가예수님을 무죄를 확신하고 입증하여 석방하기 위해서 애썼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의 수신자인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 자가 수난이 유대인들의 패역함과 완악함에 의해 저질러진 비극임을 일깨워서 유대인처럼 예수님 을 배척하지 않고 영접하여 구원의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요한복음 19:1-16을 중심으로 제 2차 심문에서의 빌라도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를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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