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8

누가복음 19:1-10

누가복음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누가복음 9:51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6개월에  걸쳐 먼 길 을 걸어 이제 예루살렘의 관문인 여리고성에 이르렀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반드시 여리고를 통해서 갑니다. 누가복음 9:51절의 가버나움에서부터 여리고성까지의 여정 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누가복음 9;51,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2. 누가복음 10:25-37,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는 길에서 한 율법사가 와서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느냐고 물었을 때에 하나님 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율법사가 내 이웃 이라하면 어떤 자를 말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선한 사마리아 비유 이야기를 하신 것입 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에 하신 비유입니 다.
  3. 누가복음 10:38-42 베다니 마르다 마리아 집에서 환대를 받음, ‘그들이 길 갈 때에 예 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여기까지 우리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함께 누가복음 9:51에서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와서 베다니까지 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에 오면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 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박히는 줄 알았는데 누가복음 13: 22에 보면 예수님이 각성, 각촌을 다니시고 계속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다 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했습니다.

누가복음 10:39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3km거리의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베다니는 감 람산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1. 요한복음 10:39-42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셔서 사역을 하시다가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시자 다시 베레아 지역의 베다니로 피신 가셨습니다.

 

‘39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다시 요단강 저편 요 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베레아 지방 베다니에서 머무시는 동안 유다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에게서 전갈이 왔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어 속히 오시라는 전갈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1:5-8,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가 병들 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여러 번 예루살렘에 왔다 갔다 하셨습 니다.

이렇게 유대땅 베다니에 다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어 나흘 이나 되어 썩어 냄새 나는 나사로를 살린 일로 예루살렘에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여야만 하겠다고 결의합니다.

  1. 요한복음 11:53, 54,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님으로 다신 피신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갈릴리 지역 에브라임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 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했습니다. 여기의 유월절은 예수님이 죽으시게 될 유월절입니다
  2. 요한복음 11:55은 누가복음 13:22과 연결이 됩니다. 갈릴리 에브라임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될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누가복음 13:22에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 오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가셔서 요한복음 12:1-3에서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사건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요한복음11장과 12장은 몇 개월의 시차가 있었습니다.

  1. 누가복음 13:22,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 누가복음 17:11,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
  3. 누가복음18:31,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4. 누가복음 18:35,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5. 누가복음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 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6. 누가복음 19:11,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7. 누가복음 19: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8. 누가복음 19:41,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 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이리하여 예수님이 여리고에 도착하셨습니다. 먼저 여리고 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리고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관문입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남 동쪽으로 24 km 로서 걸어서 하루길의 거리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8km 입니다. 여리고는 지중해 보다 250m 낮은 곳이요, 예루살렘은 해발 762m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로 오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비유의 내용은 이곳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여리고는 일찍부터 주민이 많아 융성한 상업도시였습니다.

여리고는 가버나움과 가이사랴와 함께 팔레스타인 지역의 삼대 상업중심지였습니다. 헤롯대 왕이 궁전을 건축하여 도시를 미화시켰고 이 성에서 죽었습니다.  여리고성은 구약 시대의 성 과 신약시대의 성인 두개로 되었습니다.  헤롯대왕이 구 여리고성에서 1.5km 지역에 신 여리 고 성을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35장에서는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바디메오의 눈 을 뜨게 한 것은 여리고에 가까이 올 때라고 했고 마태, 마가복음 에서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떠날 때라고 했습니다. 이 차이는 예수님이 구 여리고를 떠나 신 여리고의 입구에서 바디메오 를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세리장 삭개오는 신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리고를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정이 끝 날 때가 가까웠다는 것과 여리고에서 만날 삭개오를 소개하기 위해서 입니다.

첫째로 삭개오의 구원 사건(눅 19:1-1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 자라. 3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4 앞 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 라.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 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 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 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6개월 전에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이 하루 길 거리에 있는 여리고에 이르렀습니다.  본래는 여리고에서 머물 생각이 없이 그냥 지나가실 작정이었는데 삭개오의 열 정에 감복되어 삭개오의 집에서 하루밤 머물게 됩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착취 행위로 부 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요한 가운데서도 마음에 만족이 없이 불안과 죄책 감을 안고 살 았습니다. 그런 중에 삭개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같은 세리들을 죄 인 취급하며 경멸과 멸시를 했는데 예수님은 세리들을 용납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는 그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달려갔 습니다. 그러나 그는 키도 작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이때야 말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는 결국 궁리 끝에 뽕나무에 올라가서 지나가시는 주님을 멀리서나마 보기로 했습니다. 삭개오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 아래에 이르런 예수님이 서셔서 삭개오를 쳐다 보시면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아시다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하십니다. 삭개오가 적극적인 방법으 로 예수님을 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의 개인적인 만남을 미리 준비한 사람은 예수 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초대를 받지 않았는데 손님으로서 그 집을 찾아 가시겠다고 한 것은 삭개오가 유일한 경우입니다. 삭개오는 즐거워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 하였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자기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에 대해서는 사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이런 결정을 한 것 이 아니라 스스로 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의 젊은 관원은 예수님의 권고를 받고도 거절하 고 돌아 갔는데 그들이 죄인시 하던 세리 삭개오는 스스로 자기 재산을 포기 했습니다. 예수님 은 삭개오가 구원을 받았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 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에 집착하는 청년 관원에게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지만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삭개오에게는 그의 재산을 다 포기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므나 비유(눅19:11-27)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 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2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14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 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 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그 첫째가 나 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 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주 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 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 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 비유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교훈하신 종말론적 비유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좇던 무리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메시야는 정치적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 이 오게 되자 하나님의 나라가 금방 임할 것으로 기대하여 모두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 로 이 비유는 잘못된 메시야관과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가를 교훈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 한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갔다고 했는데 이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으신 후에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 가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고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재림하여 오실 것을 말합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신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먼 나라로 가시는 중이 었습니다.  그때에는 예수님을 반대했던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요 한편 예수님을 사모하고 재 림을 기다리는 충성된 자들에게 상급을 주실 것을 예언하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건을 사용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비유의 실제적 의미를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당시 헤롯 대왕은 유대왕국을 세 아들 안디바와 빌립과 아켈라오에 분할해서 넘겨 주었는데,

그 가운데 아켈라오는 헤롯대왕의 왕위를 계승하기위해 로마 황제의 인준을 받을 목적으로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포악한 성격을 가진 아켈라오가 자신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0명의 사절단을 구성하여 로마로 파송하였는데 그 일로 로마황제는 아켈라오에게 왕의 권한을 주지 않고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 권한을 줌으로 유대인들의 시도가 실패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분봉왕이 되어 돌아온 아켈라오가 그 보복 조치로 모의에 가담한 유대인 8천명을 잔인하게 학살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자신을 모함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종 열명을 불러 한 므나씩 나누어 주어 자기가 돌아 오기까지 장사하여 이문을 남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인이 왕위를 받아 오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 므나는 그 당시 노동 자의 3개월치 품삯인데 데나니온으로는 100데나리온입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한편 이 주인이 예수님이신데 종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제자는 그 당시 예수님을 좇 았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이 종들에 게 주어진 므나는 단순한 개인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말씀 순종의 충성된 삶을 말합니다.

이 귀인이 왕위를 받아와 종들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영광의 재림을 하실 것을 나 타냅니다. 재림하셔서 왕 중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돌아온 주인이 종들을 불러 주어진 므나를 회계하는 것은 맡겨진 사명에 대한 종들의 생활을 살펴 보는 것입니다.  첫째 종이 주인에게 와서 고하기를 주의 한 므나로 열므나를 남겼나이다 했습니다. 주의 한 므나라고 한 것은 비록 자기가 열 므나의 이익을 남기기는 했지만 주인이 맡기신 한 므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자기의 노력을 숨기는 종의 겸손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종에게서 우리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이 지녀야 할 바른 모습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종에게 주님은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했습니다.  충성스럽게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한 종에게 주인은 칭찬과 더불어 노력한 것에 합당한 보상을 하십니다.  열 므마를 남긴 종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둘째가 와서 주인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다고 했을 때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둘째가 첫째에 비해 이익을 적게 남겼는데도 첫째와 동일한 보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두 종은 서로 다르게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므나 비유에서는 두번째 종이 첫번째 종에 비해 보상이 적은 것은 두 종에 대한 주인의 보상은 그들의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두 종은 처음부터 똑같이 한 므나를 받았습니다.  한편 둘째 종은 첫번째 종에 비해 이익을 적게 남겼지만 주인은 두번째 종을 책망하지 않고 그에게 칭찬과 그것에 합당한 보상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결과에 따라서만 주어집 니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보상은 우리의 노력에 달렸습니다.

세번째 종이 주인에게 와서 고하기를 ,’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 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했습니다. 이 종은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가식적인 말  로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있습니다. 자기가 한 므나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주인의 성 품을 잘 알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자기의 게으름을 뉘우치기 보다는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첫째 둘째 종들은 주인에게 겸손한 자세로 그 결과만을 이야기 하는데 셋째는 주인에게 갖은 핑계와 변명으로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주인은 한 므나 가진 악한 종에게서 빼앗아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했습니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감사함으로 성실하게 수행하여 많은 열매를 맺은 성도는 상급심판 때에 반드시 그 수고에 합당한 보상과 기쁨을 누릴 것이지만 마음이 강퍅하여 맡겨진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안일한 삶만을 추구했던 사람은 당연히 열매를 맺지 못한 대가로 그에게 약속되 었던 축복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므나 비유의 결론으로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 이라 했습니다.  형벌의 결과는 용서의 여지가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이 원수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비판하던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요 전반적으로 복음의 역사를 거부하고 훼방하던 모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일어날 궁극적인 일들을 암시하는 것을 통해 지금까지 예수님의 사역이 죄에 속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사역이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고 복음의 사역을 방해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마지막 때에는 예수님이 최고의 심판자로서 가장 무서운 영원토록 불못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 므나비유는 마태복음 25:4-30의 달란트 비유와 비교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의 재능의 분량을 달리해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입니다. 한 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한 노동자가 하루 품삯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므나비유에서는 주인이 각 종들에게 똑같이 한 므나를 주었습니다.

둘째로 상급에 있어서는 달란트 비유는 주인의 뜻을 잘 이행한 종들에게 같은 보상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더 번 종과 두 달란트 더 번 종에게 똑 같은 보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섯 달란 트라는 재능을 더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달란트 더 벌고 두 달 란트 받은 사람이 세 달란트 더 벌었다면 다섯 달란트 받는 사람은 게으른 종일 것입니다. 반 면에 므나비유에서는 보상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똑 같은 므나를 주었는데 어떤 사람은 한 므 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또한 사람은 두 므나를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더 번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셋째는 달란트비유에서는 주인의 명을 거역한 종을 무서운 형벌로 다스렸고, 므나비유에서는 단지 주어진 므나를 빼앗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반역자에 대해서는 주인의 진노가 강렬했 습니다.

넷째로 달란트비유에서는 주인이 단순히 얼마 동안 여행했으나 므나비유에서는 왕위를 얻기 위해 오랫 동안 기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므나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세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수난과 죽음을 당할 것이나 부활, 승천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셔서 충성한 성도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주실 것이요 예수님을 배척하 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배척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시지는 않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므로 장차 완성된 주님의 나라에서 보상과 영광과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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