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22-35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사역의 6개월을 남겨 놓은 지점인 누가복음 9:51에서 갈릴리 사 역을 마감하고 예루살렘 을 향하여 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 살렘을 향하여 걸어가셨습니다. 누가복음 9:51에서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십자가 에 달려 죽으려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누가복음 9:51에서 시작하신 예루 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에 여리고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 비유 말씀도 하시고 예루살렘에 가까운 동네인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 가셔서 그들의 식사대접을 받았 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하실 때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본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심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에서 피신해서 베레아 지역의 베다니에서 지내시는 중에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 때에 유대 베다니에서 예수님께 전갈이 왔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니 속히 오셔서 나사로를 낫게 해줍시사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이틀이 지난 후에야 유대 베다니를 향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내심으로 인해 온 예루살렘이 소동을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유대인 당국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더욱 긴장을 하며 죽이기로 결의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 죽을 정확한 때가 아니므로 그 때를 위해 유대를 떠나 갈릴리 에 브라임 지역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걸으시게 됩니다. 이 유월절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유월절인 것입니다. 유월절에 는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어린 수양을 잡아 가족들이 먹게 되는데 유월절에 잡혀 죽 는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지구 상의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려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 53-55,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 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 로 올라갔더니’ 했는데 이 시점의 유월절은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됩니다. 갈릴리 에브라임에 피신해 있던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십니다.
그것은 누가복음에 의하면 누가복음13:22에 해당합니다.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누가복음13:22의 이 말씀은 누가복음 9:51의 예루살렘을 향해 가기로 결심하겠다는 이 말씀과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9:51에서 시작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간다는 말이 누가복음에서 계속적으로 연결되어 나옵니다. 누가복음 9:51에서 예루살 렘 십자가까지의 징금다리와 같이 연결되는 것을 차례로 먼저 추적해 보고 그 징금다리 들을 중심으로 주님의 여정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 누가복음 9;51,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 누가복음 13:22,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 누가복음 17:11,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로 지나가시다’
- 누가복음18:31,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 누가복음 18:35,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 누가복음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 누가복음 19:11,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 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 누가복음 19: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 누가복음 19:41,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지금까지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정을 따라 왔는데 누가복음19:11절부터는 예루살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예수님을 묘사했습니다. 마가복음 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 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등 마태복 음 20:18, 21:1-11, 마가복음11:1-11, 요한복음12:12-19등 모든 사복음서가 모두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사복음서가 가리키는 것은 예루살렘 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 9:51에서 누가복음 13:22에 이르렀는데 다시 누가복음13: 22서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에서 가르치시고 행하 시는 여정에 참여하겠습니다.
첫째로 누가복음 13 :22에서의 예루살렘 여정
누가복음 13:22,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 하시더니’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면서 각 성과 각 촌에서 병자도 고치고 가르치신 내용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13:22-30에서 가르친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이 질 문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려 가시는 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 구원입니다. 구원받았는가 받지 않았느냐 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구원받을 사람이 적다 많다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궁극적인 문 제인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적다 많다가 이 질문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구원받을 사람이 많더라도 이 사람이 구 원을 받지 못한다며 구원받을 사람이 많은 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구원받 을 사람이 많으냐 적으냐를 질문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인가를 물었 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인가 에 대해 네 가지로 말씀 하십니다.
구원받기 위해 첫째로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들어 가는 문은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회개와 성결의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십 니다. 넓은 문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입니다. 세상의 향락과 세상을 사랑하는 삶 을 살면서 천국에 들어 가고 싶어 합니다. 넓은 길, 넓은 문은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 좁은 길은 외로운 길이요 핍박과 박해와 고통과 희생과 고난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라고 했는데 여기 힘쓰라는 말은 전력을 기울인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향락의 유혹, 죄와 싸우고 사탄과 싸우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죄와 악과 타협하고 악한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큰 물고기라고 할지라도 물에 떠내려 가는 것은 죽은 물고기요 아무리 작은 물고기라 할지라도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는 살은 물고기 입니다. 이 세상의 풍조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을 오로지 하나님께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적당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했는데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는 이 말씀에서 무엇을 구한다는 말입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 기를 구한다는 말입니까? 두 개 다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것이 천국가는 길입니 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를 원하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 다. 천국에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을 자가 많냐 적냐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았는가 아닌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둘째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언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항상 갖추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자만이 들림 받습니다. 열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처녀는 등불을 켜서 신랑을 맞이 했지만 기름이 다 떨어져 등불을 밝히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기름은 성령충만입 니다. 등불을 켠다는 것은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많으냐 적으냐 하는 질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 닙니다. 불신자들은 구원에 대해, 천국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많으 냐 적으냐는 교회 다니는 교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종말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5절 말씀은 마치 창세기의 노아 홍수 때에 방주뚜껑이 닫힌 후에 비가 쏟아져 산 위에 까지 차 올랐을 때에야 사람들이 몰려 와서 방주를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던 사람들을 연상시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도 마찬 가집니다.
구원받기 위한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생각과 같이 외적인 요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참된 회개와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26,27절에,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 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했습니다 어린양 혼인잔치는 정기적으로 교회 출석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혼인잔치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진실한 회개와 믿음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도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라는 말을 듣는 자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신앙생활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넷째로, 천국은 혈연이나, 민족, 신분, 인종 등에 관계가 없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28,절에,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하고 주님께서 말씀하 셨는데 유대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무조 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 간다는 잘못된 구원관을 가진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모태신앙인이요, 온 가족이 교회다니며 자신의 아버 지, 할아버기가 목사였고 장로요 권사였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가롯 유다는 한때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도 복음을 들고 전도하려 나가서 귀신도 쫓고 병자에게 손을 얹어 병도 고치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실 때에 떡을 떼어 나누어 준 사도였습니다. 믿음은 죽는 그날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29절에,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했습 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하 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지구 상 동서남북에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 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30절에서 예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선지자도 보내고 주인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보냈지만 이들이 끝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먼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과 바울이 그렇게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려 애썼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제시했지만 이들은 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배 척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원정을 가서 복음을 방해했습니다.
이제 누가복음13장의 마지막 부분인 31-35말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헤롯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기에 이 지역을 빨리 떠나라고 권고합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지역을 다스리는 헤롯 안디바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직 갈릴리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 망을 예언합니다.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 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33 그러나 오늘 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 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했는데 여기 오늘은 현재를 말하고 내일은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제 삼일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므로 이 땅에 오신 사역을 완성 하실 때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 삼일은 또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완전하게 이루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선지 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은 법이 없다고 하시면서 계속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아 들을 보내어 천국의 복된 소식을 전하였건만 끝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입니다.
‘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 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이 예고에 따라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지 40년 만인 주후 70년에 로마장군 디토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됩 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것이나 언젠가 그 백성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라고 할 때가 올 것인데 그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 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재촉하는 두 가지 요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첫째가 마태복음 24:14 인,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 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하는 말씀과 누가복음 13:35절의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할 때에 오신 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4은 선교사역의 완성을 말하고 누가복음 13:35은 유대인들의 회심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것을 회개하고 그들의 메시야로 진정 인정하고 믿게 될 때가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주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두 가지 예언 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교전락 상으로 자신들의 언어로 복음을 갖지 못한 그룹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배척했던 유대인들이 예수가 메시야이시다고 주장하면서 예수 믿는 유대인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9:51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십자가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도 누가복음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걷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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