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2-31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은 영원토록 몸을 가지신 분이시다는 사실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본 문에서는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 장차 성령을 보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주님 자신이 비록 제자들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가신다 할지라도 삼위 중 또 다른 하나님이신 보 혜사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어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데 예수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표현한 것은 성도들 곁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찰하시면 서 마땅히 성도들의 말할 바와 행할 바를 가르치고 도와 주시는 위로자, 대언자, 상담자로서의 성 령의 사역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첫째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도의 능력 (요14:11-15)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 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제 2위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성육신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해 놀라운 비밀들을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온 이후로 인간들은 하나님을 거의 망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 에게로 다가 오실 것을 예언하시다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 님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석 상에서 다락방 강화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최후의 교훈을 하십니다.
먼저 제자들에게 삼위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자신과 그리고 성령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돌아 가시면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약 속하십니다. 그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했습니다.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했는데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으로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 라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 은 성도들의 복음전파 사역에 있어서 예수님의 선교보다 더 확대되고 큰 능력으로 일하게 될 것 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2절에서 이 보다 더 큰 것을 행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더불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예수님과 교통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수단인 것입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 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 일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4:29-31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 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빌기 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기도에 대한 두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우리는 다만 그의 하시는 일의 대행자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둘째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본문에서는 예수님께도 기도하며 예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 금 아들로 말미 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내가 행하리라 했습니 다. 주님이 행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도 틀린 것이 아니라 맞습니다.
이 사실이 14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에서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대상이 성부와 더불어 성자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 7 장에서 스데반이 돌 맞아 죽어갈 때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래서 13절과 14절에서 예수님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해 세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첫째는 기도의 대상이요(내게) 둘째는 기도의 중보자(내 이름으로) 셋째는 기도의 응답 시행자 (내가 시행하리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한 것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 랑해야 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이웃을,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 므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기도해야 하고(13절, 14절), 둘째로 성령 을 받아야 하며(16-17절), 셋째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 수님의 새 계명인 이웃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 (요14:16-31)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성령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으며, 바울사도도 성령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의 성령론, 요 한의 성령론, 그리고 바울사도의 성령론이라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누가복음 24:49, ‘ 49볼지 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 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시는 동 안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라 했고 성령이란 말을 처음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 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 이지 않게 하더라.’에서 성령이 임하실 것을 마지막으로 언급하신 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 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서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열흘 후에 드디어 성령님이 임하 셔서 제자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 의 사역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마리아 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사실을 알리고, 9장에서는 바울사도의 회심과 더불어 바울사도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사실을 알리고 10장에서는 이방인 로마 백부장 가족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고,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사건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천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언한대로 성령님이 임하셔서 예 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면서 교회사를 통해 지금까지 그리고 우리에게도 성령님이 임하셨으며 세상 끝날까지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성령론은 로마서 8장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고 선포하시므로 성령론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로마서 8장은 로마서의 성령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2, 13, 14장에서 성령의 9가지 은사와 갈라디아 5:22,23에서 성령님의9가지 열매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요한의 성령의 언급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시작됩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신 다락방 강화 때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몇 시간 전에 하신 유언입니다, 여기에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 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 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 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 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곁에서 돕는 자란 뜻으로서의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세상 끝날 예수님이 재 림하실 때까지 지상에서 교회를 세워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함으로써 이 땅 위에 천국을 확장해 나가며 궁극적으로 구속사의 최절정인 천국의 완전한 실체를 도래케 하는 사역을 감당할 성도들을 보호, 위로 인도하시는 역할을 담당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성령님은 창조주요 전 우주의 주권자이신 삼위 하나님 중 제 3위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 구 속의 법을 수립하시고 이를 제 2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취하시도록 작정, 섭리하셨습 니다.
한편 제 2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하시어 구속사역을 일단 성취하신 후 그 구 속사의 최종 실현인 세상 끝 날의 재림의 약속을 남기시고 일단 세상을 떠나 승천하시면서 이처 럼 제 3위 하나님이신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이후 세상 끝 날까지의 구속사는 제 3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역에 성부 하나님이 총괄하시 고 ,성자 하나님은 그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고 성령님은 성자 하나님이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확장, 적용시키시며 구속사를 주도적으로 전개해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구속사의 각 단계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께서 각각 주도적 역할 을 나누어 수행하신 동시에 각 단계에서도 다른 두 위의 하나님도 함께 역사하심은 물론 전체적 입장에서는 삼위 하나님이 함께 연속성을 가지고 태초부터 종말까지 구속사를 진행시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4장 당시 예수님의 사도들이 십자가 수난을 목전에 두고 절 망할 필요가 없었듯이 우리 성도들도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좌절의 위험은 없다는 것을 믿으 시기 바랍니다.
보혜사란 뜻은 변호자, 보호자,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란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변호하시고, 도와 주시고 위로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담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다 른 보헤사를 보내 주신다 했습니다. 다른 보혜사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이신데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란 뜻입니다. 이제 성령님께서 어떻게 구속사역을 수행하시는 가를 본문을 통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령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함께 하시느냐 하면 16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메르 휘몬), 함께있다는 것은 같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시지 않고 함께,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합니다. 하나님 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은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among us입니다. 17절 에서 우리 옆에 계시며(파르 휘몬), 옆에 있다는 것은 좀더 밀착한 관계를 보여 줍니다. 좀 더 개 인적으로 느껴집니다. 내 옆에 계십니다. 나와 함께 길을 가고 나와 이야기를 나눌 만큼 가깝게 느껴 집니다. 영어로는 beside me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신다(엔 휘몬)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In me입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16절). 유대에서 랍비들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스승이 죽었을 때에 ‘고아’라고 불 리워졌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의 경우 그가 죽었을 때에 그 제자들을 고아라고 불렀다 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에서 예수님이 떠나 하나님나라로 간다고 했을 때에 제자 들이 근심하고 불안해 하기에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임재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17절). 우리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은 바다 물속과 같습니다. 무한한 비밀이 한 단어 한 말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인간이 그런 비밀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창세기 1: 1 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지구를 창조하시니라 에서 그 태초가 어느 정도 먼 시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떻게 조성되고 구성되었는지 모릅니다. 성령님께 알려 주셔야만 인간의 능력수준에서 조금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셋째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 닫게 하십니다.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 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다락방강화에서 하신 말씀뿐만 아니라 공생애 삼 년 반 동안 하신 모든 교훈들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3천 5백년 전에 쓰여진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2천년 된 신약성경의 모든 말씀도 깨달아지고 생각나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예수님의 평안(27절).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1에서 예수님께서 떠나실 것과 제자들 가운데서 배반자가 있을 것을 말씀하실 때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제자들은 아마도 아직도 그 두려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 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셔서 위로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성도들이 누릴 평안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성도들이 누릴 이 평안은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의 결과로 말미암은 평안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사역으로 인한 평안을 약속하시면서 다시 한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 라고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은 비록 자신이 떠나실 지라도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질적으로 다른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예수 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은 그 무엇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으로 인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평안을 소유한 초대교회 성도 들은 어떤 핍박 박해 가난, 고통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 때에 성도들이 잡혀서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되도록 콜로세움 광장에 끌려 나왔 습니다. 이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집결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성도들 중에 어린아이가 두려워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무서워’. 그 때에 엄마가 아이에게 위로하기를 조금만 더 참아라 그리하면 천국에서 그리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교회사를 통해 수억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순교를 당할 수 있었던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 님으로 말미암는 예수님의 평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평안이란 단어는 헬라어 에이레네입니다. 이 에이레네는 구약시대에 문안이나 작별인사 를 할 때 사용하는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가장 근원적이요 항구적인 평안입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므로써 얻어지는 영혼육의 축복을 가리킵니다. 행복이란 평안한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몸이 건강하고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권력과 명예를 가졌다 해도 평안이 없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 중에 이것들이 세상이 주는 평안이라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돈, 권력, 명예에서 오는 것인데 이것들은 일시적인 것이요 오히려 세상이 주는 평안 때문에 잘못될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 는 평안은 부요해도 평안, 가난해도 평안, 위험해도 평안, 핍박, 박해 받아도 평안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요14:21-24, 28)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5절에서는 성도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 중에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21절에서는 성령의 임재와 종말론적 부활에 참여할 자의 자격이 제시됩 니다. 15절에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킨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 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계명은 이웃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요13:34).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요 이런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마태복음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
이웃을 사랑하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과 같이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낼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몸으로 실제로 나타나셨듯이 그리고 성육신 하셔서 우리 인간에게 몸으로 오셨듯이 지금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몸으로 나타나기 도 하시며 환상이나 꿈속에서 형상으로 나타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최후의 만찬 석상 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유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과 23절 말씀을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 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 라.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 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16절과 17절에서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리라고 했는데 23절에서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했습니다. 23절에서는 성령님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그 사람 속에 내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4절에,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 니라.’ 오늘날 교인들을 보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봉사 활동 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다 지키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물론 교회에 출석만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싸움을 하고 시비를 걸고 사 람을 미워하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은 부모, 형제, 자 매, 교회 성도, 친척, 친구, 동네 이웃 사람들, 가난한 자, 감옥에 갇힌 자, 병든 자, 불구자들과 복음을 듣지 못한 자,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31마지막에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고 말씀하셨는데 최후 만찬 석상에서 다락방 강화를 마치시고 이제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여 가시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실 시간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결론으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예수님이 떠나실 것과 제자들 중에 배반자가 있다는 것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리라는 말을 들은 제자들이 근심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떠나면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들과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고 곁에 계시고 우리 속에 내주하 셔서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하시며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평안 을 주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사역에 있어 예수님이 하신 일도 할 것이요 예수님 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인데 그것은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예수님과 교통하며 성령충만을 받으며 예수 님을 사랑할 때에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예수님의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말세를 살아 가는 성도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 여 착한 일을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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