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로스 엔젤레스에서 큰 교회 부목사님들 중에 한 사람으로 사역을 하던 중에 아들 딸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에 둘이 살다가 넷이 살게 되었습니다. 방이 세개가 필요한데 세개 되는 아파트를 찾기 힘듭니다.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셋 값이 우리 살림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아파트를 찾는 중에 딸 아이가 차라리 집을 사자는 것입니다. 2008-2013년 때에 정부가 서둘러 저소득 층에게 집을 마련해 주자고 해서 돈을 마구 풀어 생긴 서브모게지 파동 때였습니다.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을 때였습니다. 신문에 제로 이자 금리, 무 다운페이로 집을 살 수 있다고 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단돈 일푼도 없는 주제에 집을 사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었습니다. 담대함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론 오피서에게 찾아가 집을 사는데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년 연봉과 수입 보증서를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을 내 밀었다가는 집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인 론 오피서에게 찾아가저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게 년 수입이 얼마냐고 묻지도 말고 당신이 알아서 내가 은행에서 모게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가 그런 때였습니다. 그랬더니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엘에이 외곽이지만 10분 이내로 엘에이 교회에 올 수 있는 거리에 방 세칸, 화장실 3개, 집 값은 30만불 이내로 살 수 있는 집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이전터가 보여 준 첫째 동네의 첫 집은 교통편, 집 모양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본 집이 마음에 들고 하나님께 기도한 조건에 맞는 집이라 사겠다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사려면 만불이 든다는 것을 그 때야 알았습니다. 셀러와 바이어 에이전트들에게 수수료와 론 오피서에게 지불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돈이 없어 처형에게 만불을 빌릴 수 있었고 집값의 20%를 다운페이해야 하는데 그 다운페이 하는 돈 대신에 2차 모게지를 설정하여 일차 모게지 보다 높은 이자를 내어 그것으로 모게지 보험을 들게 했습니댜. 20% 다운페이 하지 않는 위험에 대한 보험을 들게 했습니다. 나는 돈 한푼도 없이 집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집을 주시기 위해 서브 모게지 사태를 일으켰다고 믿습니다. 그 때에 집을 산 많은 사람들이 집은 사 놓고 페이먼트를 하지 못해 미국에서 수백만의 가정들이 집에서 쫓겨 나와 밖에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텐트 촌이 형성될 때였습니다. 그 때에 서브 모게지 파동이 있지 않았다면 내 수입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 집은 Gardena, CA 였습니다. 방 세개 1600스케어 피트, 화장실 두개와 샤워룸 없는 화장실 한 개.
저는 목사가 안 되겠다고 10년 동안 도망치다가 목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항복할 때에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목사가 되게 되었으니 평생에 집에서 사는 것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목사이기 때문에 집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엘파소에서 사역할 때에 첫째 사택이 집이었는데 교회에서 어떤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집을 전세내어 사택으로 살게 되었는데 그 선교단체에서 세낸 그 집을 팔겠다고 하면서 빨리 집을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우리 부부는 일주일 내내 심방, 전도, 구역예배, 주님 영접시키기 위해 성경을 가르치느라 시간이 없을 때였습니다. 이웃 교회 권사님이 리얼터 에이전트였는데 사택을 물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조건은 교회에서 가깝고, 학교 가깝고, 빨리 이사 할 수 있는 셋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권사님이 연락해 오기를 아직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은 물건이 하나 나왔다는 것입니다. 군인 가족인데 급히 전근 발령이 나서 외국으로 떠나야 하겠기에 빨리 집을 팔고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지역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사려면 신용이 성립 되어야 하고 교회 재정도 많지 않았기에 집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분들이 자신들이 내고 있던 모게지를 자신들 대신 우리(교회)가 모게지를 내는 조건으로 팔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건축 준비금으로 3천불 있었는데 그것을 집 주인에게 주는 조건으로 그 집을 내 이름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떠나야 하는 군인가족들이기에 내 이름으로 집을 매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방 네게, 집에서 교회까지 60m, 아이들 학교는 교회 바로 앞이었습니다.
아내의 미국 간호사 자격증 획득
Los Angeles에서 사역할 때입니다. 가디나 집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교회에서 2천불을 받고, 그리고 의료계통의 사업하시는 분이 아내가 와서 자신의 사업을 도와 달라고 하기에 그 분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가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입도 있게 되어 집 모게지를 잘 낼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내가 일을 하던 중에 2년 차에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앞이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짜로 집을 주셨는데 이집에서 우리를 길거리로 몰아내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한 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여신다고 믿고 결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이 참에 아내가 미국 간호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습니다. 공부 기간은 6개월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업수당으로 아내가 직장에서 받은 수입의 75%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개월이 지나면 실업수당이 끊어집니다. 그 안에 공부해서 RN자격증을 따야 했습니다. 두꺼운 영어 책들이 다섯, 여섯 권을 공부해야 합니다. 아내가 의료계를 떠난지 30여년에 50세가 넘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 밖에 없었기에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내가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건강 상태였습니다. 마치 LA간호사 협회에서 미국간호사 자격시험 반이 있어 간호사 시험 족보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공부한 것만 시험에 나오게 해주세요, 하나님, 아는 것만 시험에 나오게 해주세요 했습니다. 6개월이 되었습니다. 시험을 치러 시험장에 갔는데 최초로 시행되는 콤퓨터 화면을 통해서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 75문제를 주고 75문제를 다룬 후에 콤퓨터가 꺼져 버립니다. 왜나하면 75문제 푸는 것 보니 너는 싹수가 노랗다 더 이상 시험치지 말라고 해서 꺼져 버리는 경우요 두번째는 경우는 75문제 푸는 것 보니 더 이상 물어 볼 것도 없이 합격이다 해서 콤퓨터가 꺼지는데 제 아내가 생각하기를 자신은 90% 정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물론 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간호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한 달 만에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집을 유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13년을 살면서 그 집을 담보로 빚을 내어 아들 장가도 보냈습니 다. 265,000달라로 그 집을 샀는데13 년 살다가 보니39만불에 팔게 되어 남은 모게지 값을 지불하고 남은 돈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돈을 좀 더 보태어 현금20만불로 manufactured home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 3개, 화장실 2개 1600스케어 피트 집입니다. 가디나 집에서 2마일 되는 동네 카슨시입니다. 아주 교통 바른 곳입니다. 하이웨이 110, 405, 91이 집 앞을 지나가는 곳입니다.
칼슨시 집 살 때의 이야기
칼슨 시에 있는 집은 우리의 은퇴 삶의 보금자리르로 구입한 집입니다. 1975년까지는 모바일 홈 이라 했습니다. 집 공장에서 만들어 한 자리에 세우는 집들인데 좀 허름한 집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집을 사려는 때만 해도 700스케어 피트 되는 집도 7만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75 년 도 이후에는 메뉴펙처드 홈이라 하여 집의 재료도 보통 집들과 같이 괜찮은 재료들이 사용되고 따라서 집값도 조금 비싸지고 면적도 크게되었습니다. 우리 집은 2002년도 집인데 방 3개 화 장실 2개의 1600스케어 피트 짜리 집입니다. 천정도 높고 선룹도 있어 집안이 매우 밝습니다. 첫눈에 반해 그 집을 십구만 불에 구입하고 만불로 집을 수리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집을 사기 전에 그 집이 1년 동안 비어있었습니다. 늙은 부모들이 살다가 연세들어 죽고 자녀들은 해외에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 선지 1년 동안 비어두었었는데 우리가 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게 하시 위해 보관하셨던 것입니다. 오래 살았던 가디나 옛집을 팔고 칼슨 새집으로 이사 가는 날이 토요일입니다. 이사짐을 싣기 위해 이삿짐 트럭이 집 앞 길 가에 파킹해야 하는데 토요일이기에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트럭을 우리집 앞에 댈 수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사 가는 날 집 앞 길에 이삿짐 트럭을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가디나 집 동네는 후진 골목길 가의 집들입니다. 13년 동안 살았지만 가디나 시청에서 길거리 청소를 한다고 한 번도 길을 비워달라는 요청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오후 4시쯤 몇 가지 일 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앞 길의 전봇대에 포스터가 붙어있었습니다. 금요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길거리의 모든 차들은 비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 시간 사이에 길가에 있는 차들은 토잉할 것인데 그런 차들은 이 전화 번호로 연락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길가의 차들을 왜 비워야 하는 이유도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길거리 청소를 하려는 가 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즉각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이사를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것이다고 깨닫고 행동개시를 했습니다. 기다렸 다가 5시 반 쯤에 우리 집 차와 이웃집 차로 하여금 우리집 앞길에 파킹 시켰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 이사를 무사히, 감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날 길거리 청소도 없었고 누가 그런 지시를 했는지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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