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섭리

 

요한삼서 2 , 창세기 2: 7

사람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참으로 괴롭습니다. 병들고, 깨어지고 다치고, 괴롭고 슬퍼고 답답합니다.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천사와 같이 영으로 만들지 않고 육체를 만드셨겠습니까?. 사람을 만드실 때 먼저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다 영 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육체를 가진 시공안에 제한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흙으로 빚지 않았으면 시공에 제한된 존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진 몸을 가졌기에 깨어지기 쉽고, 다치기 쉽고 병들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몸에 하나님의 섭리를 두셨습니다.

어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왜 자기에게는 이런 어려움이 닥치는지 모르겠답니다. 왜 어려움이 계속 겹치는지, 왜 자기는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모르겠답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고생이 떠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 몸 안에서 영이 성숙해 가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흙으로 몸을 지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동물도 흙으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 제한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다른 것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 받는 시간 안에서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생일이 두개입니다. 몸이 태어난 나이와 내 영이 태어난 영적 나이입니다. 어떤 사람의 영의 나이가 스물다섯살이라고 합시다. 이것은 내가 거듭나서 영적 나이답게 성숙한 것을 말합니다. 거듭난지가 십년이 되었어도 코흘리고 똥싸고 하는 영적아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 안에서 어린아이라 육에 속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쟁하니 어찌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가  아니겠습니까, 육에 속한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시공간에 제한된 존재지만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해 갈 수가 있습니다. 그 성장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빚어 몸을 만드신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렸을 때에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더 많이 받게 되고 반드시 부모의 도움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어른같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자라게 되면 이웃동네에 까지 가게 됩니다. 점점 공간이 넓어지면 부모가 다스리기가 어려워지고 키우기가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십대를 가진 부모님들은 알 것입니다. 차라리 손목잡고 다니거나 어린아이여서 업고 다닐 때가 나은 것입 니다.

만약 아이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 사람을 보호할 수도 없고  훈련이나 교육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인간을 일시 적으로나 시공간에 제한시키므로써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영적으로 훈련시 키기 위해서 육체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난 후에 천국으로 데려가서 자녀에게 영광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애급에서 400종살이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율법을 주시고 40동안 광야를 통과케 하시면서 하나님의 장자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입니다.

 사람을 흙으로 지어서 약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8편 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 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잠깐 못하게 하시고(이 말은 잠간동안 못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천사는 몸이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몸이 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사보다 잠간동안 조금 못하게 하신 것입니 다.

그 다음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사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만드실 때는 처음부터 부리는 종으로 만드셨지만 사람은 만드실 때에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앞에 불순종할 때 고통이 오게 됩니다. 그런데 육신이 없으면 고통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는 육신의 고통때문에,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통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만드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아직 튼튼하게 무쇠같이 만들어서 절대 병도 나지 않고 사고가 나도 다치지 않게 했다면 사람은 죄를 떡먹듯이 짓고도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동물처럼 살게되면 자신과 남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다가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천사처럼 육이 없이 영체로만 만든다면 한번 하나님을 신하므로 단번에 흑암 속에 빠져버리고 용서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 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한참 살다보면 그저 그런 것이 되고 맙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의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하리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인가 우리 오래전 세대도 이미 있었느니라” 우리는 이와같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제한받는 몸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봐야 다 제한된 삶이지 하나 좋을 것이 없습니다.

iii.  육신을 통해서 대속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얼마나 물질의 손해를 보았습니까? 친구를 대신하여 죽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친구의 사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육신의 몸을 주셔서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만일 예수가 몸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대속(표현)했겠습니까?  육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가 몸이 없으면 자식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밤잠을 자지 않고 수고하는 몸, 기저귀를 빠는 피곤한 몸,  그 무거운 아이를 등에 업고 무겁다고 하지 않는 그 수고, 육신은 대속입니다. 만약에 완전한 영의 세계라면 누구를 위해서 대신 고통을 받겠습니까?  죽을 수도 없고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 육신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육신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육신을 볼 때에 이것이 선하게 쓰임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몸으로 사람을 패고,  도둑질 하고, 죄 짓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개 돼지보다 못한 것입니다. 이 몸을 선하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몸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몸으로 그리고 회개할 줄 아는 도구로 쓰여져야 합니다. 이 몸을 선한 일을 하는 것으로 쓰고 이 몸을 가지고 천국을 바라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몸을 주신 것입니다.

iii. 천국을 소망하게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천국의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몸을 벗어나면 천국에 가면 됩니다. 그래서 천사는 타락하면 용서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완전히 타락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타락해도 구원을 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이유는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몸이 있을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썩기 전에 살아 있을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의 죄악 때문에 죄인들이 회개하고 죄를 이상 수가 없을 의인들이 세상의 것으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완전한 하늘나라를 쳐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2-23절에 피조물이 이제까지 다 함 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만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 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우리 몸의 구속 을 기다리느니라 했습니다.

우리 몸의 구속이 무엇입니까? 땅을 떠나서 공중에 들림받아서 썩지도 않고 지도 않는 그런 몸으로 변화되어서 예수와 영원히 같이 살게 날을 기다린 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침에 깰때마다 하루가 지나가구나 내 목숨이 짧아지구나 그래서 앞으로 살길 보다도 이제는 천국가서 지날날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세상의 허망을 깨닫고 세상의 욕심을 버리게 되고 정직하게 깨끗하게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떠날 준비를 해서 이제 관제가 다 되어서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켜서 내게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제약 때문에 죄인들이 회개 하게 되고 죄를 이상 지을 없게 되고 의인들이 세상의 것으로 만족을 얻지 못하고 하늘나라를 쳐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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