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5

마태복음 24:42-51, 누가복음 12:35-48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시간의 흐름의 순서대로 진행했습니다. 반면에 마태는  주제별로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는 산상수훈을 5장에서 7장까지 모았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내용들이 누가복음 전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종말과 세상 종말을 마태복음 24장에 모아놓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태는 마태복음 24장의 예수님의 종말복음을 1절에서 42절까지 기록한 후 42-51절은 특별히 주의 종, 목사님들에게 주신 교훈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결론부분인 42-51절이 누가복음에서는 12:35-48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4:42-51을 본문으로 하되 누가복음 12:35-48과 엮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을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42-44에서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일어날 징조를 말씀하신 후에 주님이 언제 오실 지 모르기에 언제든지 주님 맞을 준비하기 위해 깨어있으라고 주의 종들에게 경고합니다. 둘째 부분은 주인이 멀리 출타한 동안에 집안 사람들에게 때를 따른 양식을 나눠 줄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에 대한 말씀이요, 셋째 부분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여 술 취하고 다른 종들을 때리는 악한 종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주는 내용입니다.

첫째로 주님은 예기치 않게 오신다(마24;42-44)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 세 구절에서 깨어있으라는 말이 두번 나옵니다. 준비하라는 말이 한번이고 주님 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말이 세번 나옵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경고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언제 주님이 오실지 라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절과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 12:35-41입니다.

‘35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주인이 와서 깨 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 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누가복음의 이 구절은 집 주인이 혼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출타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밤에 거행됩니다. 그러므로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오는 시간은 우리 시간으로 밤 12시나 1 시일 수도 있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언제 돌아 올지 모르므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했습니다. ‘35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과연 오늘날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이런 마음과 태도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12:39-40에, ‘39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앞의 구절은 집주인과 종들의 관계에서 종의 신실성을 강조했고 이 구절은 집 주인 과 도둑과의 관계에서 주를 맞이할 성도들의 준비성을 강조합니다.  도적은 예기치 못한 사건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말로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돌연히 임할 것 을 강조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둑이 물건을 훔치려 예기치 않게 집에 침입 해 들어 오듯이 예수님의 재림이 예기치 않게 갑작스럽게 임할 것임을 미리 예고하 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주의 종들은 주님의 오심을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1절에서 베드로가 묻기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 인지 일반 무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청지기들 이라고 하십니다. 주의 종들 즉 목사님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참으로 절묘합니다. 목사님들이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준비한다면 그의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둘째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마24:45-47)

‘45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 눠 줄 자가 누구냐 46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 으리로다. 4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 라.’

누가복음 12:42-44에,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 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구절들의 내용이 똑같습니다. 이 구절에서 청지기는 여러 종들 가운데 주인의 신임을 받아 선택되어 주인을 대신하여 집의 가사를 책임지고 주인의 재산과 다른 종들을 관리하는 종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예를 들면 창세기 15:2과 22장에서 나오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청지기는 주인에게 충성과 지혜와 진실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집을 떠나 멀리가 있는 주인은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청지기 는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요즘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들과 복음전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의 집은 교회를 말하고 집안 사람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인 이 집을 떠나면서 청지기들에게 맡긴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집안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잘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이 일을 진실하고 충성되고 지혜롭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준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 겠습니까?

  1. 때를 따른 양식

우리가 하루 세끼 식사를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각 때마다 먹는 음식이 다릅니다. 아침은 좀 가볍게 먹고, 점심은 잘 차려먹고, 저녁은 가볍게 먹기로 합니다. 아침, 점식, 저녁 똑같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영의 양식인 말씀도 때를 따른 말씀이 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기독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하는 문제였습니다. 교부시대는 삼위일체 등의 신론의 논쟁시대라고 볼 수 있으며, 종교개혁 시대에는 구원론에 관한 논쟁시대였으며, 1900년대부터는 성령론 논쟁시대였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른 영의 양식인 것입니다. 현재시대는 종말론의 논쟁시대입니다. 교회사를 볼 때에 때에 따른 적절한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때는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행 23:6, 24:15, 21,26:6-8,28: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이 세상에 임하시면서 교회가 시작되고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이 주요 제목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 때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말틴 루터는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천주교가 제시하는 인간노력을 통한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하다가 마음 속에 섬광같이 떠오른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1:17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을 깨닫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 때부터 천주교의 구원교리가 잘 못되었음을 선포하고 종교개혁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1906년의 로스엔젤레스 아주사 스트리트의 부흥에 방언의 은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부흥운동이 전 미국과 온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그 부흥의 불길이 한국에도 튀어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회개부흥운동을 계기로 한국 전역으로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로부터 성령론이 말씀의 주제였습니다.

물론 한국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운동이 거의 2천년이 지난 후에야 전해졌기 때문에 한꺼번에 기독론, 신론, 구원론을 거치는 작업을 해야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성령론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종말론이 말씀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보여 주는 종말 현상이 너무나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찌기 예수님께서 때에 대한 말씀을 하신 즉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3말씀에,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초림하셔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의 표적은 예수님의 초림의 표적, 즉 죽으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9:44에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오시는 초림의 때를 너희가 알지 못했다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이 세대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오늘날의 이 시대의 표적은 예수님의 재림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왔다는 표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같이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들인 목사님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끝날에 일어날 주님의 계시록입니다. 사도요한의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 계시를 바탕으로 요한사도에게 주어진 계시록입니다. 우리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 일어날 표적들에 대해 말씀하신 후 결론부분으로 특별히 주의 종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42절에서 우리 세대가 종말시대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아란 말입니다. 어떤 시대인지를 깨어 어느 날에 주님이 오실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라’고 청지기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때를 따른 양식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제 때에 시간을 맞추어 음식을 제공한다는 말도 될 것이요, 각 끼마다 적절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첫번째는 아침이면 아침, 점심 때는 점심, 저녁이면 저녁에 시간적으로 적절하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음식의 메뉴를 때에 따라 잘 공급한다는 말입니다. 아침인데 냉면을 내놓는 것은 때에 맞지 않은 음식일 것입니다. 무더운 점심 때는 냉면이 제격일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는 냉면보다는 뜨거운 곰탕이 적절한 음식일 것입니다. 이렇게 제 시간에 제격에 맞는 음식을 잘 공급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종들이 영의 양식을 제공할 때에 시기적으로 그리고 적절한 영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종말이기에 종말의 말씀을 주어야 충성되고 지혜로운 설교자가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과 누가복음 12장에서 청지기의 덕목 세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충성과 지혜와 진실입니다. 청지기는 집안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공급할 때에 종말의 때를 알리는 일에 충성되게 전해야 하며 지혜롭게 전해야 합니다. 계시록에 대해 지혜롭게 깨닫고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말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실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성도들이 초신자들이나 기존 교인들 모두에게 영의 양식을 장만하여 공급해야 할 것입니다. 초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자들에게는 단단한 음식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공부도 시키고 제자훈련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과 함께 종말이 가까왔다는 설교도 충실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 계시 즉 요한계시록 강해나 설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전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1. 때를 따른 양식을 충성되게 공급하는 청지기에게 주시는 보상

누가복음12:37-38에서, ‘37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 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 아와 수종들리라. 38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 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이 말씀에서 주님은 충성된 청지기에게 두 번이나 복이 있을 것이라 하셨으며, 충성된 청지기들에게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 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종말을 외 치는 주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42-44절에서,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 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주인이 이를 때 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내가 참으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때를 따라 양식을 잘 공급하 는 자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하였으며,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오시기 까지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종말의 때를 충 성되이 준비시키는 청지기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긴 것과 같이 충성스런 청지기들에게 하늘나라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라 했습니다.

셋째로 주님의 때를 알지 못하는 악하고 게으른 청지기(눅 12:45-48)

‘45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 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 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 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알지 못하고 맞 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24:48-51,  ‘48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주님의 재림 시기를 분별하고 때에 맞는 적절한 영의 양식, 종말에 관한 말씀을 성도들에게 주어 성도들로 하여금 종말의 때를 준비하게 하지 않고 교인들이 다 졸고 자고 있을 때에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시면 이들은 들림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일이 일어나면 주의 종들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지 않는 자를 두고 악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48절에서, ‘만약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했는데 여기 악한 종은 때를 따라 양식을 잘 공급하지 않는 목사나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왜 이들이 때를 따라 그 집 사람들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양식을 공급하지 못했습니까? 왜냐하면 이들이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돌아 오실 때가 되었는데도 그 시간을 분별하지 못하고 영적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동무들을 때린다고 했습니다. 48절 말씀에,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이라 했습니다. 이 악한 종이 왜 다른 동무들을 때립니까? 이 악한 청지기 종은 주인이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는데 다른 동무 종들은 아니라고, 주인이 오실 때가 되었으니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에 때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말을 외치는 주의 종들을 향하여 대다수의 주의 종들은 때를 깨닫지 못하고 종말론을 말하고 요한계시록을 말하면 이단이라고 때리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단이나 사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려고 요한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은 자기들의 그룹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말하는 주의 종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요주의 인물로 취급합니다. 급기야는 이단으로 몰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오심에 대해 무관심한 주의 종들이 종말을 외치는 종들을 때리는 것입니다. 여기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한 것은 향락에 젖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종말의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마냥 세상의 맛과 세속에 젖은 상태를 보여 줍니다.  교회가 너무나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교인수가 많아, 그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물권과 교권에 취해 있으며, 그래서 세상이 좋은데 주위에서 자꾸만 종말, 종말이 가깝다고 하니까 귀찮은 것입니다. 세상이 좋은데 왜 종말이 온다고 떠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무 종들을 때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7말씀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했는데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향해 이단이라고 말하는 자들 중에 종말인 줄을 알고도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때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은 많이 때릴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고 무턱대고 남들이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때리니까 자기도 덩달아 때리는 자는 적게 맞으리라 했는데 몰랐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문책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때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율에 처할 것이며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습니다.엄히 때린다를 직역하면 톱과 같은 것으로 몸을 두 조각을 낸다는 뜻입니다. 이 악한 종들이 받는 형벌은 상상 외로 큰 것임을 주님이 경고하십니다. 외식하는 자의 율에 처한다는 말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운명과 악한 종의 운명이 같을 것이 될 것임을 알려 주는 주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말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나타낼 때 종종 사용하는 마태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써 악한 자에게 임할 형벌의 가공할 만큼 경악스러운 것임을 암시해 줍니다.

누가복음 9:51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종말의 멸망에 대해서 수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우리 주위의 수 많은 징조들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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