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른 양식

마태복음 24:42-50, 누가복음 12:35-48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때를 따른 양식’이란 제목입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 식사를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각 때마다 먹는 음식이 다릅니다. 아침은 좀 가볍게 먹고, 점심은 잘 차려먹고, 저녁은 가볍게 먹기로 합니다. 아침, 점식, 저녁 똑같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영의 양식인 말씀도 때를 따른 말씀이 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기독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하는 문제였습니다. 교부시대는 삼위일체 등의 신론의 논쟁시대라고 볼 수 있으며, 종교개혁 시대에는 구원론에 관한 논쟁시대였으며, 1900년대부터는 성령론 논쟁시대였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른 양식인 것입니다. 현재시대는 종말론의 논쟁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사를 볼 때에  때에 따른 적절한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초대교회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도들이 증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이 세상에 임하시면서 교회가 시작되고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이 주요 제목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 때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말틴 루터는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천주교가 제시하는 인간노력을 통한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하다가 마음 속에 섬광같이 떠오른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1:17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을 깨닫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 때부터 천주교가 잘 못되었음을 선포하고 종교개혁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1906년의 로스 엔젤레스 아주사 스트리트의 부흥에 방언의 은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부흥운동이 전 미국과 온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그 부흥의 불똥이 한국에도 튀어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회개부흥운동을 계기로 한국 전역으로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로부터 성령론이 말씀의 주제였습니다.

물론 한국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운동이 거의 2천년이 지난 후에야 전해졌기 때문에 한꺼번에 기독론, 신론, 구원론을 거치는 작업을 해야 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성령론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종말론이 말씀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보여 주는 종말 현상이 너무나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찌기 예수님께서 때에 대한 말씀을 하신 즉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3말씀에,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의 표적은 예수님의 초림의 표적, 즉 죽으심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의 표적은 예수님의 재림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왔다는 표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같이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끝날에 일어날 주님의 계시록입니다. 사도요한의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 계시를 바탕으로 요한사도에게 주어진 계시록입니다. 우리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 일어날 표적들에 대해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42절에서 우리 세대가 종말시대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아란 말입니다. 어떤 시대인지를 깨어 어느날에 주님이 오실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종말 예언을 마치면서 종말시대에 말씀사역을 하는 주의 종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45절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했습니다. 여기의 종은 청지기를 말합니다. 종이지만 집안의 모든 일을 맡은 청지기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준다’고 말씀하셨는데 때를 따른 양식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 때에 시간을 맞추어 음식을 제공한다는 말도 될 것이요, 각 끼마다 적절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첫번째는 아침이면 아침, 점심 때는 점심, 저녁이면 저녁에 시간을 맞추어 음식을 제 때에 잘 공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적으로 적절하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음식의 종류를 때를 따라 잘 공급한다는 말입니다. 아침인데 냉면을 내놓는 것은 때에 맞지 않은 음식일 것입니다. 무더운 점심 때는 냉면이 제격일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는 냉면보다는 뜨거운 곰탕이 적절한 음식일 것입니다. 이렇게 제 시간에 제격에 맞는 음식을 잘 공급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종들이 영의 양식을 제공할 때에 시기적으로 그리고 적절한 영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종말이기에 종말의 말씀을 주어야 충성되고 지혜로운 설교자, 주의 종, 목사가 될 것이란 말입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성도들이 초신자들이나 기존 교인들 모두에게 영의 양식을 장만하여 공급해야 할 것입니다. 초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자들에게는 단단한 음식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공부도 시키고 제자훈련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과 함께 종말이 가까왔다는 설교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론 즉 요한계시록 강해나 설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식하는 자들이 갇히는 곳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전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분별하고 때에 맞는 적절한 영의 양식, 종말에 관한 말씀을 성도들에게 주어 성도들로 하여금 종말의 때를 준비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인들이 다 졸고 자고 있을 때에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시면 이들은 들림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일이 일어나면 주의 종들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지 않는 자를 두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48절에서, ‘만약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했는데 여기 악한 종은 때를 따라 양식을 잘 공급하지 않은 목사나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왜 이들이 때를 따라 그 집 사람들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양식을 공급하지 못했습니까? 왜냐하면 이들이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돌아 오실 때까 되었는데도 그 시간을 분별하지 못하고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동무들을 때린다고 했습니다. 48절 말씀에,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이라 했습니다. 이 악한 종이 왜 다른 동무들을 때립니까? 이 악한 청지기 종은 주인이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동무 종들은 아니라고, 주인이 오실 때가 되었으니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에 때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말을 외치는 주의 종들을 향하여 대다수의 주의 종들은 때를 깨닫지 못하고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향하여 종말론을 말하고 요한계시록을 말하면 이단이라고 때리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단이나 사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려고 요한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은 자기들의 그룹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기에 요한계시록을 말하는 주의 종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요주의 인물로 취급합니다. 급기야는 이단으로 몰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오심에 대해 무관심한 주의 종들이 종말을 외치는 종들을 때리는 것입니다. 여기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한 것은 향락에 젖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종말의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마냥 세상의 맛과 세속에 젖은 상태를 보여 줍니다.  교회가 너무나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교인수가 많아, 그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물권과 교권에 취해 있으며, 그래서 세상이 좋은데 주위에서 자꾸만 종말, 종말이 가깝다고 하니까 귀찮은 것입니다. 세상이 좋은데 왜 종말이 온다고 떠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무 종들을 때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7말씀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했는데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향해 이단이라고 말하는 자들 중에 종말인 줄을 알고도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때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은 많이 때릴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고 무턱대고 남들이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때리니까 자기도 덩달아 때리는 자는 적게 맞으리라 했는데 몰랐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때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종말을 외치는 자들을 때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하십니다.

그러나 때를 따라 양식을 잘 공급하는 자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하였으며, 복있는 자라 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마태복음 24:47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2:37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했습니다. 세상에 주인이 종들을 앉히고 수종들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이런 종들을 하나님은 충성되고 지헤로운 종들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말에 대해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게 주님이 띠를 띠고 주의 종들을 섬기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종말을 외치는 주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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