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 새하늘과 새 땅 계시록 22:1-5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 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시록 21:1).

계시록 4:2의 하나님 보좌로부터 시작하여 계시록 20:11의 대 백보좌 심판으로 끝난 악에 대한 심판은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발진하여 인을 떼기에 합당하 신 그리스도에 의해 일곱 인의 떼심과 천사들에 의한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이라는 최종적인 대 종말의 재앙들이 집행 되어지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악의 세력을 제압하신 뒤, 모든 인류를 부활시키시사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악을 진멸하시 어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의 대역사는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의 심판에서 건져내시고 구원을 입게 하사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받은 자들이 들어갈 하늘 나라와 그 하늘 나라에서의 축복된 삶에 관한 묘사 뿐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21:1절부터 계시록 22:5절까지에서 그것에 관해 적절하게 잘 묘사해 놓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제 가장 아름답고 최종적인 장면과 주제를 담고 있는 계시의 절정 부분에 도달했습니다. 더욱이 본서의 기록 목적이 지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 받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격려를 주는 것인 만큼 악의 궁극적 멸망과 함께 성도가 누릴 영원한 복락이 찬란하게 펼쳐지는 이 부분은 모든 계시의 정점이요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시의 백미요 절정인 영원한 안식 세계의 특징들을 보여줍니다. 그 특징 중의 첫째는 그 세계가 비록 현 세계를 개조한 것이지만 현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마치 부부의 삶이 그렇듯이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특징은 옛 세상에 있던 모든 고통과 눈물과 슬픔이 완전히 없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히 이 세상을 고쳐서 살기 좋게 만든 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을 갱신한 것으로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장차 유업으로 받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질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내용적 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 깨어지고 변질되기 쉬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현재의 물질 세계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저주가 완전히 소멸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완전한 새 세계인 것입니다.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은 대개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게 생각하는데 엄밀하게 따지고 든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나라와 동격이 아닙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사단과 그의 세력이 멸망당하고(19:20; 20: 10), 현 우주와 역사가 붕괴된 뒤(20:11), 최후의 대 심판 이후에 조성되는 천국과 지옥을 다 포함하는 새로운 우주요, 새로운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 면 하나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있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을 다 포함하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전혀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라 옛 세계를 재료로 하여 새롭게 개량된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옛 하늘과 옛 땅, 옛 우주와 옛 지구를 재료로 하여 새롭게 조성한 새로운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옛 것을 단순히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개량하되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개조한 것으로 옛 것과는 그 구조에 있어서나 본질에 있어서나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인 것입니다.

마치 부활체, 부활한 성도의 몸을 생각해 볼 때에 부활한 몸이 현재 우리 몸의 원소를 사용해서 전혀 새로운 부활의 몸, 부활체, 신령체가 되듯이, 혹은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장에서 설명하 듯이 15:37,38에서,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리 라’ 에서 밀 알갱이를 땅에 심었는데 밀 알갱이와는 전혀 다른 형체의 밀이란 식물개체가 땅속에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옛 땅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바다도 없더라는 말씀입니다. 현재 지구는 물이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이 있으므로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들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기후 조절을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 신체 구성의 70%가 물입니다. 그래서 물을 마셔야 살수 있습니다. 천년왕국 때에는 바다가 존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성도들은 신령체이므로 물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물을 절대 필요로 하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었기에 바다가 필요 했습니다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육체를 가진 자들은 전혀 없으므로 바다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점으로 봐서도 새 땅은 옛 땅과 다릅니다.

우주 상에서 질량을 가진 존재로써 아무리 빨리 달려도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가 무엇입니까? 빛의 속도는 일초 당 30만 km로 달립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빛 은 일 초 동안에 지구를 7바뀌 반을 돈다고 합니다. 우리가 밤하늘에 우리 눈에 별 빛이 반짝하 는데 그 반짝한 빛은 몇 십억 광년 혹은 몇 백억 광년을 달려와서 우리 눈에 반짝 하는 것입니 다. 십억 광년이란 그 별빛이 별에서 출발해서 우리 눈에 반짝한 것은 빛의 속도인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려서 10 억년을 달려와서 우리 눈에 반짝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광의 속도란 반짝하는 순간에 한국에서 미국, 지구에서 금성, 혹은 지상에서 천국까지 오락 가락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로스 엔젤레스에서 서울에 가겠다 하면 그 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만약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천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아와서 우리에게 전달한다고 했는 데 오늘 우리가 우리 아이의 병을 낫게 해주 시옵소서 기도했다면 천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 기도 응답을 가져온 때는 우리가 죽고 난 후 10 억년이 지난 후 일 것 입니다.

지금 천사들은 영광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우리들도 부활체가 되면 영광의 속도로 움직이게 됩 니다. 그런데 부활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그렇게 움직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8:39-40에서 이미 그런 일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빌립이 유대광야에서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재무장관인 내시 를 만나 복음을 전 한 후에 물에서 세례를 주고 난 다음에 성령님께서 그를 순식간에 움직여 아소도란 곳으로 이끌어 가셨는데 그곳은 북쪽 갈리리 지역인 것입니다. 유대광야는 남부 주이 고 아소도는 북부 주인 갈리리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은 계시록의 마지막 장 일뿐만 아니라 총 1,189장으로 구성된 성경 전체의 마지막 장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계시록 22장은 자연히 요한계시록의 끝 맺는 말로써뿐만 아니라 성경 계시 전체를 끝맺는 말로써 전 구속사적 지평에서도 심대한 의의를 갖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본 장은 그 내용 자체도 태초부터 종말까지의 전 구속사의 도정 중에 오고 올 만세대의 성도 모두에게 구원의 원리 곧 예수 구속의 원리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직접 주신 절대 무오한 계시의 책인 성경 자체의 신적 권위와 가치 및 그러한 성경말씀의 핵심 중의 핵심 내용인 파루시아 (Parousia)와 마라나타(Maranatha)사상, 즉 예수님의 재림과 재림 대망 사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 성경의 마지막 장인 계시록 22장은 그 위치상으로도 성경의 대미일 뿐 아니라 그 내용도 성경 자체의 신적 권위와 절대적 가치를 최종 확립하는 동시에 구속사의 전 지평과 그 근본 원리를 총체적으로 응축한 것으로서 성경의 핵심 진리라 할 수 있는 재림 사상을 최종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께서 최종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은 잃어버린 에덴 동산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을 배경으로 합니다. 창세기 기사를 보면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하기 이전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으며(창2:9), 동산을 비옥하게 하는 강이 있었습니다(창2:10-14). 그리고 인간은 그곳에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았습니다(창1:26 ; 2:15). 그러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따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결과 인간은 저주를 받게 되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 22장은 그처럼 인류가 상실했던 에덴 동산의 모습을 다시 그려주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이 흐르고(계 22:1), 그 강물로 말미암아 생명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매달마다 열 두 가지 과실을 맺으며,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것으로 영생을 누립니다. 그런가 하면 천국에서는 또 다시 천국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한이 천국 백성들에게 돌려집니다. 창세기 2장에서의 아담은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에덴 동산의 모든 것들만 다스리는 권한이 있었지만 계시록 22장에서는 부활체를 가진 성도들은 온 우주를 다스립니다. 천사보다 높은 지위인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에덴 동산에서 잃었던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단순히 에덴 동산에서 잃은 것에 대한 회복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을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하십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있었던 타락에의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 니다. 왜냐하면 죄의 원흉인 사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다시는 저주도 죄악도 어두움도 유혹도 없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모든 피조물이 말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복된 삶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음으로(계시록 22;3)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성도들과 영원토록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또한 24절에서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는(임마누엘)이 축복은 성도가 천국(영원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구)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 중 가장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이 축복이야 말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요 가장 큰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어찌할 줄 모르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스바냐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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