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왜 반석을 쳤는가? (I)

모세는 왜 반석을 쳤는가? (I)

신명기 34: 1-12

 

오늘 저는 신명기 34장 1-12절 말씀으로 시작하여 민수기 20장과 사도행전 7장으로 나아가면서 여러분과 제가 말씀으로 은혜받고저 합니다. 신명기 34장은 신명기의 마지막 장으로서 신명기 전체에서 가장 슬픈 장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좋고 정다운 두 친구가 동반자로서 여행을 시작했는데, 지난 40년 동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서 이제 그 땅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동반여행이 끝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두 친구 동반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군지는 추측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 두 동반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상세히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는 것을 봅니다만 아마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모세야, 저기 보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땅을 보여 주시면서 북쪽으로는 단에서부터 남쪽으로는 브엘세바까지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모세가 꿈에도 그리던 그 땅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너무나 슬픈 이야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여기 약속의 땅을 보라. 그러나 너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너 시대는 끝났다” 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아니 끝나 다니요. 40년 동안 희생적인 봉사를 드렸는데 그 땅에 못 들어간다고요” “모세야, 너는 들어갈 수 없느니라. 네 일은 끝났어, 네 사명은 끝났느니라” 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항상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 의문스러워합니다. 모 세가 40년 동안 백성들을 인도할 때 얼마나 헌신적이었고, 얼마나 힘쓰고 애썼으며,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아니, 반석을 두 번 쳤다고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마음이 옹졸하시고 변덕이 심하시고, 실컷 부려먹고서는 무슨 조그만 트집을 잡아 헌신짝 내버리듯이 던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40년 동안 그렇게 고생하고 수고했는데, 이제 나이 120세가 되었으니 정년퇴직해서 그 땅에 들어가 편안히 쉬어야 할 때인데, 그 땅에 못 들어 간다니. 그런데 그 땅에 못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더욱 슬픈 장면입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120세이지만 아직 죽을 때는 아니였다는 말입니다. 육체적으로 쇠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눈의 시력이 20/20 이었고, 그리고 그의 몸은 청년과 같이 건장하고 그의 뼈에는 불이 일어날 정도로 강하였는데, 그가 그렇게 빨리 죽다니.

그리고 왜 그는 엉뚱한 장소에 묻혀야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 가운데 8번이나 모세와 하나님께 반역을 행하였는데 민수기 20장은 마지막 8번째 반역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물 공급이 끊어졌습니다. 백성들이 돌을 들어 모세를 치려고 합니다. 그 때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팡이를 가지고 그리고 회중들을 모아 그 반석 앞에 서서 명령하여 물을 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론과 백성들을 모아 그 반석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려쳤습니다. 그 때 갑자기 그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잔치를 가졌습니다. 영광스런 물 공급에 대해 큰 축하를 했습니다. 백성들이 정신없이 물 잔치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과 모세는 저 쪽으로 옮겨가서 진지한 대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민수기 20장 12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백성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 일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순식간에 모세의 경력이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모세가 실수한 것이란 겨우 바위를 두 번 친 것입니다. 아니, 그런 실수 때문에 그 약속의 땅에 못 들어 간다고요. 그렇게 수고했고 그렇게 오랫동안 일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세히 봅시다.

첫째로 그는 백성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둘째로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했습니다. 셋째로 그는 그 반석을 친 것은, 반석에서 물을 내라 명령한 대신에 반석을 두 번 침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향하신 구원에 관한 메시지 즉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손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오늘 제목 말씀과 같이 “왜 모세는 그 반석을 쳤는가?” 의 해답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시편 106편 32,33절에서 나타납니다.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벌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왜 반석을 쳤습니까? 그것은 백성들에게 화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백성들의 반역행위에 지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화가 극도로 폭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세와 같은 사람이 어찌 그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 했을까요?

성경에서 모세가 얼마나 온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낳은 자 중에 모세만큼 온유한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그는 연세가 120세니 젊은 사람들보다 화를 더 잘 통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는 비교할 자가 없을 만큼 깊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그는 하나님과 대화를 할 때도 친구와 이야기하듯 얼굴과 얼굴로 대하여 하나님과 이야기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위대한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반석으로부터 두 번이나 물을 내게 하였습니다. 이런 모세와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분노를 터뜨렸을까요?

왜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터뜨렸습니까?

왜 모세는 반석을 내려쳤을까요?

왜 모세는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을까요?

하바드 대학 심리학교수 Steven Bugles 라는 사람이 최근에 책 한 권을 발행했는데, 그 책이름은 ‘Success Syndrome’ 즉 ‘성공 병 증세’ 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하기를, 모세와 같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들이 안고 있는 깊은 상처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무도 그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더 많은 성공을 하면 그 상처는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더 큰 성공을 하면 그 만큼 더 외로워질 것이요, 자신들이 더 큰 성공을 하기 위해 자신들을 밀어 부치면, 그만큼 더 자신들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성공을 한 사람들의 중심 깊은 곳에 깊은 상처가 있는데, 그들의 전 생애가 더 성공하면 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성공했는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할 것인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줄까? 사람들에 의해 내가 사랑받겠는가?”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스티브 브걸레스의 말이 옳습니다. 그런데 내가 믿기로는 이런 사실이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이 상처가 여러분들의 전 삶을 통해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연세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분의 존재의 깊은 곳에 깊은 상처들을 더 많이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깊은 감정의 상처들로부터 해방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처들이 크면 클수록 강한 힘으로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그 반석을 내리친 큰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예배에 참석하여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가졌고 그래서 피가 주위에 낭자한 그런 사람을 상상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목사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상처가 커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마도 가벼운 상처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단지 긁혔거나, 멍들었거나, 조금 찢길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상처의 정도가 심해서 피가 철철 흘러내릴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가 큰 상처로 인해 적거나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모세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20절 말씀으로 갑시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서서 재판을 받는 석상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 중에 모세의 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말씀 중에 모세의 생애를 40년씩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22절 말씀을 보면 모세의 유년기 시절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난지 석 달 밖에 안된 모세가 그 자신의 심중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때 받은 상처가 모세의 전 생애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상처를 받고 또 받으면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임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항상 개밥의 도토리였습니다.

모세는 사랑스런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거니와 모세가 난지 석 달 만에 그 어머니가 갈대 바구니에 그를 넣고 나일강 물에 빠뜨렸습니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죽도록 내버려진 바 되었습니다. 석 달 된 작은 어린애가 왜 그렇게 버림받아야 했을까요? 그것은 애급 왕 바로의 명령 때문입니다. 모든 히브리 사내아이들은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애급 나라 안에 히브리 노예들의 인구가 놀랍게도 급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난지 석 달 만에 강물에 버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 바로의 공주에 의해 발견되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딸은 모세를 양자로 삼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셔야 할 것은 바로의 딸은 인종적으로 모세와 다릅니다. 그녀는 애급인이요, 모세는 히브리인입니다. 모세의 얼굴 색깔은 흰 편이고 모세의 양모인 바로의 공주의 색깔은 갈색에 가깝습니다. 이 여인이 모세를 양자로 삼아, 모세를 애급 풍습 속으로 이끌어 드립니다. 그런데 그 문화는 다릅니다. 종교도 다릅니다. 모습도 다릅니다. 언어도 서로 다릅니다. 행동도 서로 다릅니다.

이렇게 모세는 그의 생애의 초기 40년 동안 외국인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했고 그 결과 그를 양자로 삼은 그 가정에 전혀 적응될 수가 없었습니다. 기저귀도 없었습니다. 아기들은 엄마들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때때로 엄마들은 아기들을 7살 때까지 젖을 먹인다 합니다. 모세는 자기 어머니에 의해 5년 동안 양육되었다 합니다. 바로가 모세의 어머니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유아기 시절에 모세의 친어머니가 모세를 그녀의 품안에 꼭 껴안고 모세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말하기를 “모세야, 넌 이 궁중에 속하지 않았어. 너는 애급 애가 아니야. 너는 히브리 애야. 결코 이 사실을 잊지 말아라. 너는 이 백성들과 같지 않아. 너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 한 사람이야. 너는 여기에 소속되지 않았어” 그래서 그는 40년 동안의 궁중생활 가운데 깨닫기를 자신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적응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는 그 당시 최고의 일류학교를 다녔습니다 모세를 양자로 삼은 어머니가 애급의 공주였으므로 왕좌를 위한 서열로 말하자면 양모에 의해서 모세 자신이 황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궁중 안팎에 아무것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데도 속할 수 없었고, 적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속삭이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말하기를 “모세야, 너는 애급사람이 아니란다. 너는 히브리 인이야”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애급 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애급 사람들과 맞지 않는 것을 알았고 그가 그 사람들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사람들로부터 받아 드려지지 않으며, 애급 사회에서 받아 드리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다른 면에서 보상 받으려 했습니다.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 말씀에, 모세가 태어났을 때 보통애가 아니라 했습니다. 아주 비상한 아이라 했습니다. 너무나 뛰어난 아이라 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아기였습니다. 그것이 그 아이의 중요한 보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생애의 불행 중의 하나는 내적 상처가 아름다운 외모에 의해 포장되는 것입니다. (덮어 버리다) 그래서 모세는 그의 멋진 외모가 보상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모세의 소년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는 키가 크고, 멋지고, 곱슬머리에다 잘 생긴 유대 소년일 것입니다. 근육이 발달되었고, 머리도 비상합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습니다. 모세가 걸어가면 아무도 보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돌아서서 속삭이기를 “저 애 좀 봐 참 불쌍하지”. 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 “모세가 애급 학문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굉장한 웅변가요, 무술에도 능통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속의 상처를 외적인 성공으로 보상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세에게 무엇이나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리고 겉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지만, 그러나 그는 그 사회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사회에 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모세의 아픔이요 상처였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또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여러분은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지 못 했습니까? 우리 모두는 그런 마음의 상처가 하나 이상씩 있습니다. 그 상처가 크게 헐어 피가 쏟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아주 적은 상처요 단지 긁힌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상처가 여러분 생애에 큰 부분이 아니고 적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마음 속에 숨겨진 상처 부분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존재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요, 소속될 수 없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모세에게 일어난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에게서 이 상처를 찾아내야 합니다.

사도행전 7장 23절에 “모세가 나이 40이 되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모세의 생애가 40세 된 그 때에 모세의 마음의 상처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를 원합니다. 모세가 그의 백성들을 방문하기로 작정합니다. 그가 가서 어떤 사람들에게 소속되기를 원하며 어떤 사람들의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하며, 그의 숨은 상처를 가져가 사람들에게 내 보이기를 원했으며, 그의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원했던 것입니다. 진정 자기 자신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도 모세와 똑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그 상처를 안으로 죽을 때까지 간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공을 물 속에 감추려는 것과 같습니다. 물속에 붙들고 오래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그 공은 밖으로 튀어 나오고야 맙니다. 이 현상이 바로 모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의 나이 40세가 되었을 때, 모세의 내적 상처가 사람들의 주의를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난 이제 이런 생활은 지겨워. 싫증나. 이제부터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거야. 이젠 난 밖으로 솟아오를 거야. 나의 이 사랑받지 못하는 나의 부분을 사랑해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설 거야. 이제부터 내 동족 어떤 사람들과 관계성을 가질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제부터 모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 형제들을 찾아 나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모세가 동족형제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 주시도록 원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5절에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 하였다” 고 했는데 이것은 모세 자신이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내적 상처가 다른 사람과의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처음으로 시도합니다만 오히려 일을 더 나쁘게 만들고 맙니다.

40년 동안 모세 속에 잠재되었던 이 상처들을 더 이상 붙들 수 없었습니다. 이것들이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을 살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내적 상처가 밖으로 한 번 표출해 버리면 한 번 시도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또 다른 시도를 합니다. 그는 그 다음날 밖으로 나가 다른 접속을 가지려고 시도했습니다. 모세는 두 히브리 인들이 싸우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들을 말리려고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너가 지금 뭘 하려고 하느냐 어제 애급 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나도 죽이려고 하느냐”. 고 대들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모세는 어제 자기가 행한 일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을 알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사도행전 7장 29절에 “그는 그 곳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나그네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아무 사람에게도 받아 드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자기 동족에게서도 배척당했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들어갔고 그래서 그 곳에서 그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삶은 어디 가나 누구에게나 상처받는 일만 생깁니다.

여기에서 사도행전 7장 30절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부터는 모세의 생애의 두 번째 40년 기가 시작됩니다.

모세는 전혀 관계성을 갖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살며,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산지 40년이 지난 후 이제 그의 연세가 80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미디안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그들 사이에 아들 둘을 낳습니다만 아들들 역시 그 곳 사람들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모세는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를 발견하고 그것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모세야 나는 너가 이 곳에서 나그네 임을 아노라. 내가 너로 내 백성의 위대한 인도자가 되게 하마. 내가 너의 상처를 치료하마. 너의 상처 난 구멍에 내 위대한 능력으로 채워 주마. 내가 너를 위대한 능력 행하는 자로 삼겠다”.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깨달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상처, 여러분들이 가진 장애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여러분의 내적 상처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상처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부으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연약함을 보완하시는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주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의 실상입니다.

사도행전 7장 35절에, 상처투성이의 사람이 위대한 전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거절하고 소외시킨 모세가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버린 자를 택하시고 상처 받은 자를 택하셔서 위대한 용사가 되게 하시고,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그들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상처 많은 이 모세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땅에 남겨두지 않으시려고 모세를 하늘나라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가나안 보다 더 좋은 곳 하늘나라 안식처로 인도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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