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이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에 대해서
(창세기 4:14절의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한 말에 대한 문제) 창세기 4:1-25

우리 성경은 1600년 동안에 40 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책입니다. 창세기의 경우는 한 장 혹은 한 절 사이에 몇 천년 몇 만년이 압축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풍경화를 볼 때에 그림의 배경에 산들이 첩첩 놓인 것을 볼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제일 가까운 산은 좀 밝게 보이고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산들은 흐릿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제일 가까이 있는 산과 그 다음 산과의 거리가 몇 십리에서 몇 백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산 봉우리와 그 뒷산 봉우리 사이에 큰 호수가 있는 지, 큰 강이 흐르는지, 큰 도시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 두 산 봉우리 사이에 수만 혹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앞에 있는 산봉우리와 그 뒷산 봉우리 사이에 큰 호수가 있을 수도 있고, 큰 도시가 있을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성경을 볼 때에 단어와 단어 사이, 한절과 한절 사이, 또한 한 장과 그 뒷장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적, 공간적 흐름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풍경화를 볼 때에 그 한 장의 그림 속에서 많은 시간이 압축되었고 많은 공간이 압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마찬 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한 장과 또 한 장 사이에 혹은 한 절과 또 그 다음 절 사이에 많은 시간과 많은 공간이 압축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가인이 하나님께 말한 것 즉,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 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한 말을 생각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가인의 이 말에 대해 무척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을 삼습니다. 성경에는 가인과 아벨 두 사람만 등장하고 있는데 가인이 아벨 마져 죽이고 천하 지상에 유아독존인 가인을 누가 죽인단 말이냐고 문제를 삼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명쾌하게 풀리게 될 것입니다.

묵상이란 성경의 압축된 부분들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I.  먼저 가인 당시의 인물들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놓쳐서는 안될 인물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창세기 5:3절 말씀에,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아벨 대신에 셋을 낳았다고 함으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아담 나이 130세 이전이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5:4에,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 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에서 보면 이 말씀 속에서 아담이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는 동안에 자녀를 낳았다고 하였으므로 아담이 가인과 아벨과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는지 모릅니다. 적게는 수명, 혹은 수십명 많게는 수백 명을 낳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담이 셋 후에 낳은 자녀들이 자녀들을 낳고 그 자녀들이 자녀들을 낳고 또 그 자녀가 자녀를 낳아 아담이 향수한 800년 동안에 얼마나 인구가 번창했겠습니까? 또 아담이 130세에 낳은 셋이 그의 나이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셋의 장남이 에노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에노스가 셋의 장남이 아니라면 에노스 전 셋의 나이 105세 이 전에도 자녀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에노스가 장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장남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셋은 912세를 향수하고 죽었는데 적어도 셋이 에노스를 105세에 낳고 807년을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다고 했으니 셋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았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II.  가인과 아벨의 아내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올 때를 생각해 보면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나오자 마자 자녀들을 생산했을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아내들은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면 딸들도 분명히 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가인과 아벨만 소개하고 그들의 아내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느냐고 묻습니다. 성경은 구약 성경, 신약성경에서 특별히 구속사에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여자들을 내세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츨애급기에서 가나안에서 애급으로 이주한 야곱가의 사람들을 70명으로 계산하는데 남자만을 계수했고, 민수기에서 출애급한 숫자를 언급할 때에 계수에 포함된 사람은 그 당시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만한 남자 장정만 계산에 넣어 60여만이라고 했으며,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였다 할 때도 남자들 만을 계산했습니다. 창세기 4장, 5장에서는 남자들만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의 계열 중 악명 높은 라멕의 경우 두 아내 라멕과 씰라를 소개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 4, 5장에서 여자가 언제 태어났다고는 하지 않지만 누가 얼마나 향수하면서 자녀(아들과 딸)들을 낳았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도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자 마자 연달아 딸들을 낳았고 이들이 자라서 가인과 아벨의 아내가 되었을 것입니다.

III. 가인이 아벨을 죽인 때가 언제 였을가 하는 문제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때는 아담의 나이 130세 이전인 것은 확실 합니다. 아담의 130세는 아벨 대신에 셋을 낳은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가인을 낳은 것은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그 해 즉 세상 나이 1살 때였을 런지도 모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그 때는 아담이 성년이었을 때입니다. 아담은 성년으로 창조되었고 에댄 동산에서 쫓겨나기까지 에댄동산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모릅니다. 1만년을 살았는지 10만년을 살았는지 혹은 1억년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어쨌던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올 때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 밤에 가인을 잉태케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아벨을 낳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일 무렵에 가인의 나이는 130세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때에는 가인과 아벨의 자녀들이 생산됐었을 지도 모릅니다. 창세기 4:3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에서 가인과 아벨의 연세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가인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비록 가인이 아벨을 죽인 때는 가인의 나이가 130세 이전이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으신 때가 가인의 나이 300세 혹은 400세 아니면 500세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창세기 4:10에,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 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후 가인이 땅에서 살다보니 하나님의 가인에게 창세기 4:10-13절에서 내린 저주가 너무 커서 가인이 너무 힘들므로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가인이 하나님께 나와 호소합니다.

창세기 4:14에,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 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말하는 때는 가인의 나이가 300세 혹은 400세, 혹은 5-6백세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인의 나이를 성경 몇 구절에서 비약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여러분들이 창세기 4장에서 시간적 착각을 많이 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절과 절 사이에 혹은 몇 절 사이에 굉장한 시간적 흐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12장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죄를 깨닫게 한 사건이 시간적으로 다윗이 범죄한 직후라고 생각합니다(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기는 하겠지만).

그런데 나단이 다윗에게 찾아온 때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지 1년 후입니다. 사무엘하 11:27절 말씀에 보면 다윗이 우리아가 죽은 것을 확인한 후에 밧세바를 자기 궁으로 데려왔는데 사무엘하 11:27절 안에서 밧세바가 다윗의 아들을 벌써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무엘하 12:15절에 나단이 다윗을 만나고 나가는 구절인 15절에서 하나님께서 밧세바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단이 다윗을 만나려 온 때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지 1년 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한 절에서 1년 혹은 10년, 100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것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우리는 놓치고 맙니다.

그리고 창세기 4:14절에서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란 말을 한 가인은 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4:16에,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 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에서 창세기 4:16말씀에 가인이 성을 쌓았다는 것은 자신을 적들에게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인이 성을 쌓을 당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을 쌓을 정도면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입니다. 가인이 성을 쌓을 당시에 성을 쌓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자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기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자기 편의 사람들이란 자기 후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 볼 때에 가인의 나이가 상당히 많았을 것이요 가인의 후손들이 많아 성을 쌓을 정도였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쌓은 성 안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 밖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가인이 생각하기를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만약 가인의 나이가 200세 혹은 300, 400세가 되었다면 그 당시에 아담도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의 나이는 가인보다 많아도 100세 정도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낳은 가인 외의 다른 자녀들에게서 생산된 후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셋에게서 난 후손들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인이 하나님께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말했을 때는 지면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수천만명, 수 억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사람들마다 900세 가까이 살수 있을 정도로 기후나 환경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 때보다 2천년이 훨씬 지난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대를 보면 히브리인들이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이민을 갈 때에 70여명 되던 사람들이 400년이 지난 후에는 남자 장정들만 60만 정도 즉 총인구가 2-3백만명 정도였으니 가인의 연세 400세-500세가 되던 시대에는 인구가 더 많이 팽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란 이 말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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