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2) 요한복음 14:9-11
우리는 지난 주일 삼위일체의 구약에서 보여 주는 삼위일체 하나님, 신약에서 보여 주는 삼위일 체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형체를 가지시며 구약에서 사람에게 나타내실 때에 꿈으 로나 환상 가운데서나 현실세계에 나타나실 때에 항상 형체를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은 잘못된 삼위일체론을 살펴 본 후에 내적 삼위일체 혹은 원래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 일체 혹은 역할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잘못된 삼위일체론
- 양태론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제 역시 목사로 서 목회를 하면서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가 르쳤습니다. 삼위일체에서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 양태론입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 던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이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목회자 들도 이러한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양태 론이 무엇인지, 그 정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양태론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나타 나지만, 기본적인 양태론을 쉽게 설명하자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한 인격으로 간주하 는 것입니다.
그 동안 삼위일체론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오랫동안 삼위일체에 대해서 좀 쉽게 설명하고 이해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한 물방울이 셋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하여지는 것이 삼위일체를 보여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삼위적인 양태를 물과 수증기와 얼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물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에 액체 상태의 물에 서 수증기가 되고 고체인 얼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양태론적인 자들은 그들이 즐겨 사용하던 물에 대한 비유 외에도, 수박과 수박조각과 수박 즙으로 비유하여 삼위일체를 동일한 수박의 다 른 형태로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나의 경우 교회에서는 목사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자녀들에게는 아빠인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혹은 한 삼각형이 세 면으로 되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유일무 이한 존재로서 세상의 어떤 물질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삼위일체를 아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위의 여러 가지 비유는 우리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에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바람직한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유는 한 실존적인 인격의 세가지 양태(Mode)를 보여줍니다. 이런 것을 단일 신 론적 양태론이라고 하는데, 일반 성도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된 주장이기도 합니다. 본인의 세 양태, 목사와 남편과 아빠라는 사역적인 직분은 상호간에 인격적 교류나 관계를 갖지 못하는데, 이것은 세 양태가 동일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인격이 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삼위라고 합니다. 삼위의 ‘위’를 영어로는 persons즉 인격으로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 인격의 하나님이 사역 면에서 구약에서는 성부로, 신약 에서는 성자로, 십자가 이후로는 성령의 세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양태론 입니다. 즉 어원적 으로 한 배우가 세 가지의 배역을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세 사람의 가면을 쓰고 다른 역을 맡을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인격의 하나님이 세 역할, 즉 창조자로서, 구속자로서, 성 화자로서의 삼중적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서 언급되 는 삼위 간의 인격적인 교통에 대해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음으로 비 성경적입니다. 또 십 자가에서 죽은 분이 성부하나님 자신이 됨으로 성부 수난설이라고 불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느 때라도 기독교의 성부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성부 하나님이 돌아가신 적이 있거나, 돌아가실 가능성이 있다면, 하나님 은 생명의 근본이시며 전능하신 영원불멸의 하나님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됩 니다. 정통교회의 목회자 중에도 종종 이단의 가르침과 유사하게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사에서 이런 양태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벨리우스, 노예투스, 파락세아스등이 있었습니다
- 군주신론(Monarchianism) :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일신론
신약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으나, 유대교의 오랜 뿌리에서 나온 일신론적 사고 방식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어로 독재군주정치체제를 의미하는 이러한 군주신 론은 2세기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3세기에 많은 추종자를 얻었습니다. 군주신론은 로마 제국의 황제 체제를 강화하고 유지시키도록 제공된 신론입니다. 한 일신론 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필요에 따라 그리스도의 신성, 또는 인성의 본질을 변형시켰습니다.
이런 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므로, 신약에 나타난 그리 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착한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신적인 능력을 부여하신 것으로 보았 습니다. 또 어떤 자는 예수는 보통 인간이었는데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양자로 선택하 시고 신적인 능력을 부어주셔서 그리스도로 삼았다고 합니다. 예수는 처음에는 보통 인간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머묾으로 말미암아 점차 그리스도의 위치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부활 후에는 하나님과 거의 비슷한 경지에 이르러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오늘날 이와 관련된 이단들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또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를 다른 자녀들 보다 먼저 창조된 피조물로 보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영적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 합니다.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며, 성령은 여호와 신의 단순한 활동력으로 이해합니다. 또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자 그리스도의 모양과 형태(양태)로 세상에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10:30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14:9의 “나를 본 자는 아버 지를 본 것이다”라는 말씀을 풀어서 성부가 성자로 오셔서 수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성 부와 성자의 구별을 무시하고, 성자의 신성만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성을 철저히 무시 하는 입장입니다. 노에투스(Noetus)는 성부께서 육신을 취하셨고, 성부와 성자는 한 하나님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신 것에 불과하므로 성자가 수난 받은 것은 성부가 수난 받은 것으로 봅 니다.
사벨리우스(Sabelius)의 양태론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 언급한 다른 양태론과는 달리 성령을 포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만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혹은 계시가 발전함에 따라서 하나님 은 포장(가면, 양태)을 달리하여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주시는 성부 하 나님으로, 복음서 시대에는 성육하신 성자 하나님으로,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성령으로 나타나 셨다고 합니다. 태양으로 비유컨대 성부는 태양이며, 성자는 태양 빛이며, 성령은, 태양 열이고 인간으로 비유한다면 육, 혼, 영이다. 사벨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한 하나님이 일시 적으로 모습(가면, 양태)을 바꾸신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가르치는 자들이 레마선교회입니다. 위트니스리의 지방교회입니다.
- 종속론(Subordinationism)
이들은 삼위를 인정하나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 또는 성령이 성자에 종속된 것으로 봅니다. 2세기에 들끓었던 영지주의의 유출설은 종속론적 경향을 지녔습니다. 종속론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들은 서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영원한 성부이신 한 분의 위대한 하나님 이 있으며, 성자와 성령은 뛰어난 피조물이거나 성부보다는 열등 한 신들입니다. 종속론은 4세 기 초의 아리우스주의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우스 종속론 이단의 주장은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시작이 있 다(성부 하나님만이 영원 전부터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점에 아들을 창 조하셨기에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따라서 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완전한 하나님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 삼신론
삼신론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고 하는 본질과 인격이 다른 세분의 하나님이 각각 분리되어 계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삼신론은 인격뿐 아니라 본질도 셋으로 분리시키는 주장입니다. 삼신론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세 분의 개별적이고 분리된 신들을 지칭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구약성경에서 명하고 예수께서 가르친 그 명령, 곧 하나이며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삼위일체론은 결코 ‘세 하나님들’(three gods)을 말 하는 삼신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명확하게 비 기독교적인 삼신론에 대항했습니다. 만약 고대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과 내용은 삼신론으로 전락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적 영웅으로 숭배했든지, 아니면 열등한 제 2의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에 관한 논의를 우리의 실천적 신앙과 는 상관없는, 쓸모 없는 논쟁거리쯤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 교회는 지난 2천년 동안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예배의 축도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 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와 무관한 신학자의 사변 적 놀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삼위일체의 교리를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알아도 잘못 알아서 이단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 인격의 하나님이 ‘하나’ 즉, ‘일체’를 이루 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인격의 하나님이 어떻게 ‘일체’가 되십니까?
둘째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도 아니고, 양태론적인 관계도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떤 관계로 이해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일체성 가운데에 있는 세 인격과 세 인격 가운데에 있는 일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일신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세 인격의 일체성을 말할 수 있고, 삼신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일체성 속에 있는 세 인격을 말할 수 있습니까? 이를 점유(appropriatio)와 순환 (perichorese)의 개념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 점유(appropriatio)
점유라는 개념은 신적인 세 인격들의 속성과 사역은 각 인격에게 점유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 인격의 사역인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각 인격이 서로 다른 인격들에게 참여하여 공동 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주체는 성부이지만 성자와 성령도 창조자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체는 성자이지만 성부와 성령도 구원자 하나님이요, 성화의 주체는 성령이지만 성부 와 성자도 성화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의 사역들은 각 인격에게 점유된다는 것입니다. 즉 창조는 성부의 사역이요, 구원은 성자의 사역이며, 성화는 성령의 사역으로 구분된다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점유의 개념은 일체성 속에 있는 세 인격들의 구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 순환(perichorese)
순환이라는 개념은 희랍어 ‘페리코레시스’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다마스커스의 성 요 한이 처음으로 말한 개념입니다. 신적인 세 인격들은 서로 구분되어 있으나 서로 다른 인격들에 참여하고 그들의 삶 속에 침투하여 하나의 순환운동을 형성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그들의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참여 하며 그 안에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의 힘으로 각 인격은 서로 다른 인격 안에서 살며 일체를 형성합니다. 이와 같이 순환의 개념은 서 로 구분되어 있는 세 인격들의 일체성을 표현합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요한복음 14: 10-11,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 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결국 점유의 개념은 삼위일체의 삼위성을 표현하는 반면에, 순환의 개념은 삼위일체의 일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적인 세 인격은 삼위성 가운데에서 일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며, 일체성 가운데에서 삼위성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일체성 때문에 삼위 성이 약화되지 않으며 삼위성 때문에 일체성이 약화되지 않습니다. 일체성은 삼위성 안에 있고 삼위성은 일체성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삶은 단 하나의 주체, 하나의 지배적 존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있고 상대방 속에서 살고 있는 세 인격들의 사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내재적 삼위일체(the immanent Trinity)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히 자기 자신 안에 계신 삼위 일체 하나님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얻기 위해 영원한 인류구속 계획을 설정하시고 그 사역을 위 해 사역을 각각 담당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온 우주를 창조하실 일을 담당 하실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그 일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성육신하시기 위해 인간 세 계로 오실 하나님은 형상을 가지셨기에 그 형상을 인간에게 주시고 인간 세계로 오실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라 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후에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인간 세상에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성화시키시고 보존하실 일을 담당하실 하나님을 성령하나님이라 하여 각각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내재적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 영원한 하나님 자신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삼위일체입니다.
- 경륜적 삼위일체(사역적 삼위일체)(the economic Trinity)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적 경륜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역은 성부의 창조, 성자 의 구원, 성령의 성화를 말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십니다. 본래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형성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영원 전부터 그의 내적인 삼위일체의 존재 속에서 결정하신 것입니 다. 그러나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는 서로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습니다. 창조의 행위는 성부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 창조의 행위에는 인간구원을 이루실 성자와 창조의 능력 으로서의 성령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성부의 사역인 동시에 삼위의 공동사역 이며,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속합니다.
성자의 구원의 행위는 성자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 행위에는 성부와 성령이 관련되어 있습니 다. 그러므로 구원은 성자의 사역인 동시에 삼위의 공동사역이며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속합니다. 성령의 성화의 사역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 사역에는 성부와 성자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성령의 사역인 동시에 삼위의 공동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속합니다.
인류구속사의 사역은 성자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사역인데 이것에는 성자 하나님의 인간구속을 위한 성육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과 재림과 죄인들의 심판이 포함됩니다. 요한복음 5:22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 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7절,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 셨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심판권세를 위임 받으신 때는 마태복음 28:18의 부활하신 후부터입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24에 의하면 심판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친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라.’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했는데 여기의 모든 통치와 권 세와 능력이란 온 세계를 통일해 전 지구 단일국가를 형성해서 다스리던 권세를 가진 적 그리스 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 산채로 불못에 빠뜨린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천년왕국이 끝나면 서 있게 될 곡과 마곡전쟁에서 사탄을 잡아 불못에 던지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일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위임 받았던 심판권세를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 드리게 됩 니다. 삼위 하나님의 성자로서의 인류구속사역을 다 끝내시고 영원세계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세계에 계셨습니다. 영원세계는 시간과 공간도 없고 물질 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삼위 하나님께서 한가지 목적을 가지시고 시간세계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지구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것은 지구를 창조 하기 위함이요 지구를 창조하신 것은 그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단지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그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 를 골라서 그들을 영원세계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그분의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영원한 인류 구속역사 즉 하나님의 참 아들들을 골라내는 과정 가운데는 사탄의 타락, 우주창조, 인간창조, 인간의 타락,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천년왕국, 사탄과 그 졸개들의 심판과 불신자들의 백보좌 심판이 있습니다.
그 후에 선택하신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영원세계로의 귀환합니다. 참 아들들을 얻기 위해 경륜적 삼위일체로 각각의 사역을 담당하신 후에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영원세계에 들어가시면 경륜적 삼위일체로서 삼위 하나님의 서로의 사역을 끝낸 신 후에 영원세계로 들어가시면서 다시 내재적 삼위일체로 되돌아 가셔서 영원히 사십니다.
셋째로 삼위의 일체의 현실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를 인격적인 면으로 설명하기 위해 점유라는 개념과 순환의 개념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점유론은 신적인 세 인격들의 속성과 사역은 각 인격에게 점유된다는 것입 니다. 세 인격의 사역인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각 인격이 서로 다른 인격들에게 참여하여 공동으 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주체는 성부이지만 성자와 성령도 창조자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체는 성자이지만 성부와 성령도 구원자 하나님이요, 성화의 주체는 성령이지만 성부 와 성자도 성화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의 사역들은 각 인격에게 점유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유의 개념은 일체성 속에 있는 세 인격들의 구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순환이라는 개념은 신적인 세 인격들은 서로 구분되어 있으나 서로 다른 인격들에 참여하고 그들의 삶 속에 침투하여 하나의 순환운동을 형성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그들의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참여하며 그 안에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의 힘으로 각 인격은 서로 다른 인격 안에서 살며 일체를 형성합니다. 이와 같이 순환의 개념은 서로 구분되어 있는 세 인격들의 일체성을 표현합니다
결국 점유의 개념은 삼위일체의 삼위성을 표현하는 반면에, 순환의 개념은 삼위일체의 일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적인 세 인격은 삼위성 가운데에서 일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며, 일체성 가운데에서 삼위성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일체성 때문에 삼위 성이 약화되지 않으며 삼위성 때문에 일체성이 약화되지 않습니다. 일체성은 삼위성 안에 있고 삼위성은 일체성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의 인격적 일체성뿐만 아니라 실체적으로 삼위 하나님께서 한 몸을 공유한다는 사실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성자 하나님이 몸을 가지신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본체라는 말은 근본적인 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하나님은 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하나님은 몸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이 모두 몸을 가졌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만 몸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 사람과 같이 형체, 즉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이십니다. 이 말은 삼위께서 한 몸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령 하나님도 영이십니다. 몸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몸은 성부 하나님의 몸도 되고 성령 하나님의 몸도 되고 물론 성자 하나님의 몸도 됩니다. 성자 하나님의 몸을 삼위께서 공유하십니다.
창세기 1:26, 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시는데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신데 어떻게 ‘우리’라고 말씀하십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의 몸을 공유하 신다는 말씀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이 성자 하나님, 예수님의 모양, 예수님의 형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창세기 1:26, 27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했습니다. 26절에서는 복수대명사 ‘우리’라고 했는데, 27절에서는 단수대명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대신 ‘자기 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표현되었 습니다. 27절의 ‘자기의 형상’ 혹은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의 형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시기를 영원 전부터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서 같은 형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라고 표현한 구절들을 찾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 고린도후서 4: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라.’했습니다. 성부와 성령은 형상이 없지만 그리스도는 형상을 가지시며 하나님의 형상이시라는 말입니다.
-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골로새서 1:15,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은 보이는 형상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란 뜻입니다.
-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에서 예수님은 형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성육신하셔서 우리에게 보이셨고 부활하실 때도 몸을 가지셨고 승천하실 때도 몸을 가지시면서 승천하셨고, 스데반이 순교 직전에 천상의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서서 계신 것을 보았고 계시록 19장에서 몸을 가지시고 백마를 타고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넷째로 삼위일체론의 의의
삼위일체론은 하나의 신학적 사변이 아닙니다. 고대의 종교적인 세계에 있어서 기독교가 외친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은 기독교를 다신론, 범신론, 일신론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론이었 습니다. 과거 양태론이나 종속론과 같은 일신론적 교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한 황제, 한 제국을 보장하는 단일군주론적 체계의 종교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교주에 의해 유지되는 이단들이 왜 그렇게 군주신론에 집착하고 있는 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결국 이단들이 삼위일체론을 거부하는 것은 삼위일체 사상이 그들의 교주 중심의 단일군주 체제 의 근본을 흔들어 놓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단일군주론적 지배체제를 종교적으로 보장하여 주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의 사귐 속에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탐욕과 불의로 무너져가는 우리의 공동체를 바로 세우고, 정의, 평화, 생명의 공동체로 부활시키도록 영감을 줍니다. 기독교인의 사회윤리는 이러한 삼위일체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든 전체주의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하고 모든 종류의 폐쇄주의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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